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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4 (일)

이슈 '위안부 문제' 끝나지 않은 전쟁

램지어 '위안부=매춘부' 논문 결함 최소 29건…"연구 진실성 심각한 위반" 비판 봇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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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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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태평양 전쟁 당시 성매매 계약’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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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을 자발적인 매춘부로 규정한 마크 램지어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의 논문이 핵심 증거 부재, 자료의 오독과 선택적 인용 등 학술 논문으로서 심각한 결함을 안고 있다는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특히 램지어 교수는 문제의 8쪽짜리 논문 ‘태평양전쟁 당시 성매매 계약’에서 자료를 부정확하거나 틀리게 인용한 사례가 최소 29건에 달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램지어 교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자발적 매춘부라고 결론 내린 자신의 논문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학문의 자유’ 논리로 방어하고 있지만 연구의 불성실성 및 연구 윤리 위반으로 논란으로 확대되고 있다. 램지어 교수는 논문의 내용뿐 아니라 형식적 결함에 대한 쏟아지는 비판에도 불구하고 침묵을 지키고 있다.

■ ‘위안부는 자발적 계약에 따른 매춘부’라고 주장했지만 진짜 계약서는 제시 못해

에이미 스탠리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 한나 세퍼드 영국 케임브리지대 연구원, 사야카 카타니 싱가포르국립대 교수, 데이비드 앰바라스 노스캐롤라이나주립대 교수, 첼시 센디 샤이더 일본 아오야마 가쿠인대 교수 등 일본사 연구자 5명은 지난 18일(현지시간) 발표한 33쪽짜리 논문에서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조목조목 비판했다. 카터 에커트 하버드대 동아시아언어문화학과 교수와 앤드루 고든 역사학과 교수가 전날 3쪽짜리 성명에서 지적한 램지어 교수 논문의 핵심 문제점들을 장문의 논문으로 구체적으로 풀어낸 것이다. 스탠리 교수 등의 논문은 램지어 교수 논문을 둘러싼 논쟁이 불거진 이후 가장 포괄적이고 구체적으로 문제점을 분석한 논문이다. 스탠리 교수 등은 램지어 교수 논문의 문제점을 증거의 부재, 1차 자료 및 2차 자료에 대한 잘못된 묘사와 선택적 인용, 부정확하거나 부적절한 인용문 표기 등 4가지로 요약했다.(스탠리 교수 등의 논문 원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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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미 스탠리 미국 노스웨스턴대 교수 등 역사학자 5명이 18일(현지시간) 발표한 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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램지어 교수는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 위안부들이 금전적 이득을 얻으려는 자발적인 관심과 의지에 따라 공평한 입장에서 계약을 맺고 매춘에 나섰다면서 이른바 ‘게임이론’의 틀로 이를 설명했다. 이 계약에 따라 일본군 위안소 매춘부는 통상보다 짧은 1∼2년 단위의 계약을 맺고 고액의 선지급금을 받았으며, 수익을 충분히 올리면 계약 만료 이전에도 떠날 수 있었다는 게 램지어 교수의 핵심 논지다. 그런데 램지어 교수가 논문에서 핵심 근거로 인용한 공평한 계약 사례는 태평양전쟁 발발 전 중국 상하이 소재 ‘위안소’에 근무할 일본인 여성들을 모집하기 위한 표준 계약서였다. 그는 이 표준 계약서를 근거로 태평양전쟁 당시 동원된 일본군 위안부들도 같은 조건의 계약을 맺었을 것이란 일반화를 한 것이다. 이에 대해 스탠리 교수 등은 “램지어 교수는 일본인, 조선인, 그리고 어떤 다른 나라 여성들이 위안소 근무를 위해 실제로 서명한 계약에 대한 증거를 한 건도 제시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백번 양보해서 단편적이고 간접적인 증거를 근거로 일부 여성들이 계약 시스템을 통해 고용됐다고 결론 내일 수는 있다”면서 “그러나 이것이 모든 여성은 고사하고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도 그랬다고 볼 수는 없다”고 밝혔다.

계약서에 대한 증거 부재 문제는 전날 에커트·고든 교수가 발표한 성명의 핵심 문제제기이기도 하다. 에커드 교수 등은 “어떻게 읽지도 않은 계약에 대해 극히 강한 표현을 사용하며 믿을 만한 주장들을 만들어냈는지 알 수 없다”면서 “학문적 진실성을 해치는 지독히 폭력적인 부분이 있다”고 꼬집었다.(에커트 교수 등의 성명서 원문 보기)

■ 자료의 자의적 해석 및 오독, 선택적 인용 수두룩

핵심 증거 부재 외에 램지어 교수 논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자료에 대한 잘못된 해석 및 묘사, 그리고 선택적 인용으로 지적됐다. 스탠리 교수 등은 램지어 교수 논문이 저지른 1차·2차 자료의 오독 및 선택적 인용 사태를 10가지로 분류했는데 위안부 피해자 고 문옥주 할머니(1924~1996)의 증언과 ‘일본군 위안소 괸리인의 일기’ 인용 방식이 가장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램지어 교수는 문 할머니가 버마(미얀마) 랑군(양곤) 소재 일본군 위안소에서 일할 당시 팁으로 상당한 돈을 모을 수 있었고, 시내에 나가 귀금속을 쇼핑하는 등 비교적 자유롭게 생활했다고 증언한 것을 강압성 부재의 사례로 인용했다. 하지만 램지어 교수는 문 할머니의 증언집이 한국어는 물론 일본어로도 정식으로 출판돼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성자가 불분명한 인터넷 블로그 ‘한국역사연구소’(Korea Institue of History)의 요약·발췌본을 인용한 것으로 나타났다. 문 할머니는 증언집에서 16세 때 친구 집에 다녀오다가 일본군 헌병과 조선인 사복경찰에게 붙잡혀 헌병소에 구금된 다음 만주 소재 위안소로 보내졌다고 밝혔다. 문 할머니는 위안소가 무슨 곳인지도 모른채 이곳에 도착해 성노예 생활를 강요당했고, 어머니가 위독하다고 속인 다음 한 일본군 헌병의 도움을 받아 고향인 대구로 돌아왔다고 증언했다. 이후 문 할머니는 18살 때 돈을 많이 벌 수 있다는 업자의 말을 듣고 군함을 타고 미얀마로 갔지만 이 때도 도착하기 전까지는 성노예 생활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몰랐다고 증언했다. 문 할머니의 증언집에서는 사실상 납치당해 위안소로 끌려갔고, 임금을 받지 못했으며, 강압에 의해 성노예 생활을 했다는 증언을 다수 발견할 수 있지만 램지어 교수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한 일부만 선택적으로 인용한 것이다. 스탠리 교수 등은 “문옥주의 증언은 다양한 학술저작에서도 논의됐지만 램지어는 익명이 블로그에서 선택적으로 인용했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일본군 위안소 관리인의 일기’ 역시 같은 문제점이 발견됐다. 1943~44년 미얀마와 싱가포르 일본군 위안소에서 관리인으로 일했다는 박씨라는 인물이 쓴 이 일기는 안병직 서울대 교수가 2013년 현대어로 번역·출간했다. 램지어 교수는 이 자료 역시 원문보다는 익명의 인터넷 블로그 ‘한국역사연구소’(Korea Institue of History) 자료를 근거로 위안부들이 관리인을 통해 정기적으로 돈을 고국에 송금했고, 이를 수신했다는 전보를 받은 것처럼 묘사했다. 이에 대해 스탠리 교수 등은 “원칙적으로 익명의 블로그를 역사 연구에서 인용하는 것 자체는 문제가 없다”면서 “하지만 완전한 맥락을 읽고 이해할 수 있는 원문이 존재하는 상황에서 익명 블로그의 단편적인 내용을 인용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스탠리 교수 등이 마지막으로 지적한 문제점은 램지어 교수가 논문에서 밝힌 인용의 출처들이 부정확하거나 불분명한 사례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스탠리 교수 등은 전체 8쪽인 램지어 교수 논문이 핵심에 해당하는 한국의 성매매, 일본과 한국에서 위안부 모집, 위안소 운영, 결론 등이 담긴 4~7쪽에서 무려 29건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램지어 교수는 박유하 교수가 쓴 책 <제국의 위안부> 일본어판 451쪽에서 인용했다고 표기했지만 해당 책은 336쪽짜리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램지어 교수가 명시한 참고자료 출처를 찾아봤더니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거나 다른 자료에 수록돼 있는 경우, 정확한 쪽수를 명시하는 대신 자료의 제목만 명시한 경우도 많았다. 스탠리 교수 등은 “램지어 논문에서 발견된 다수의 인용 잘못은 부실한 학문의 질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역사학 연구 기준을 충족하지 못할 뿐더러 일반적인 학문적 기대에도 못미치는 것”이라고 밝혔다. 내용뿐 아니라 형식의 측면에서도 결함 투성이라는 것이다.

■ ‘학문 진실성 위반’ 명백, 학술지 게재 철회돼야

스탠리 교수 등은 짧은 시간 안에 찾아낸 오류가 이 정도이며 앞으로 좀 더 면밀한 검토를 통해 추가로 오류가 발견될 경우 목록을 갱신하겠다고 밝혔다. 스탠리 교수 등은 이 논문을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싣기로 한 ‘국제법경제리뷰’ 측에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스탠리 교수는 경향신문에 보낸 이메일에서 논문의 취지에 대해 “우리는 학문이 동료 검토를 통과함으로써 자료의 충실성을 다하고 학문 세계에서 널리 공유되는 기준을 지키기를 원한다”면서 “(램지어 교수의 논문을 싣기로 한) 국제법경제리뷰 편집위원회가 우리 보고서를 검토해 해당 논문 게재를 철회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램지어 교수 논문의 학문 진실성을 위반 문제는 다른 미국 역사학자들도 심각하게 지적하고 있는 사안이다. 토드 헨리 캘리포니아대 샌디에이고 캠퍼스 교수는 19일 하버드대 학국인 학생 모임이 주최한 화상 세미나에서 램지어 교수 논문에서 다수의 선택적 인용과 증거 부재 및 불충분 등 학문 진실성 문제가 드러낙고 있다면서 관련 역사학자들이 증거를 취합하고 있다고 밝혔다.

램지어 교수는 자신의 논문에 대한 비판이 언론의 비판이 쏟아져 나오던 초기 일부 언론에 “논문 그 자체로 말하겠다”면서 이 사안은 ‘학문적 연구 결과’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하버드대도 로런스 배카우 총장 명의 성명에서 램지어 교수에 대한 규탄을 요구하는 시민사회의 요구에 대해 ‘학문의 자유’에 속한다면서 거부한 상태다.

하지만 램지어 교수의 논문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자료를 일부러 오독하거나 맥락과 다르게 묘사하고 핵심 증거를 제시하지 못하는 등 연구 진실성을 위반했다면 이 문제는 ‘학문의 자유’의 범주를 넘어선다. 램지어 교수는 학문이 진실성 위반 논란에 대한 입장을 묻는 경향신문의 질의에 19일 “인터뷰에 응하지 않겠다”는 이메일 답변을 보내왔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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