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가르침 ‘딤마’ 무너진 것에 분노
범법자 석방·장갑차 투입이 부채질
17일 미얀마 양곤에서 시민들이 쿠데타 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양곤/AFP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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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미얀마에서 군사쿠데타가 발생했습니다. 빛바랜 역사책에서 볼 법한 상황이 21세기에 연출되자 세계가 다시 미얀마를 주목했습니다. 미얀마인들도 많이 당황해하고 분노하고 있습니다.
미얀마인들은 1962년 군사쿠데타 이후 계속된 군부독재에 맞서 1988년과 2007년 피와 눈물의 저항을 했습니다. 저는 19년간 미얀마에 살면서 미얀마인들이 2015년 군부의 그늘에서 벗어나 문민정부를 쟁취하는 과정을 지켜봤습니다. 당시 군에 국회 의석의 25%를 할당한다는 내용 등 2008년 군사정부가 만든 ‘기초헌법’을 계승한다는 조건이 있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군사쿠데타로 이어지는 ‘복선’이 되리라고는 저도 미얀마인들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문민정부의 지지율 고공행진은 군사쿠데타의 직접적 계기가 된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해 11월8일 총선에서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이 이끄는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이 83%의 지지로 압승했습니다. 게다가 올해 초부터 코로나19 사태가 억제되면서 문민정부 지지도는 최고조로 상승했습니다. 군부를 중심으로 한 야당은 부정선거 의혹을 제기하며 공식 재검표를 요구하는 등 트집잡기에 들어갔습니다. 문민정부는 군의 재검표 요구를 번번이 거절했습니다. 결국 지난 1일 새벽 미얀마 군사령관 민 아웅 흘라잉은 수치 고문과 윈 민 대통령 등을 가택 구금하고 수도 네피도를 장악한 뒤 1년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했습니다.
다시 쿠데타였습니다. 시민들은 집권 여당이 무기력하게 정권을 빼앗기는 모습을 보면서 허탈해했고,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것에 대해 공포스러워했습니다. 군에 대한 공포감으로 쉽게 확산하지 않을 것 같던 온라인 시민불복종운동(CDM) 시위는 지난 6일 대규모 거리시위로 폭발했습니다. 시민들은 총칼을 앞세운 군부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18일 현재까지 열흘 넘게 시위를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두려움보다 분노가 더 커 보입니다.
16일 미얀마 양곤의 한 노점상 등 뒤에 쿠데타 반대 벽보들이 붙어 있다. 양곤/로이터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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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얀마 시민들의 분노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요? 미얀마는 불교국가입니다. 국민의 86%가 불교신자입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부처의 가르침을 숙명처럼 여기고 삽니다. 부처의 가르침을 뜻하는 ‘담마’(Dhamma)는 우리말로 선과 정의를 지키는 것인데, 군사정부는 국민들이 선택한 수치 고문과 집권 여당을 부정, 불의, 악이라는 ‘아담마’(A-Dhamma)를 행한 조직으로 규정했습니다.
한국 시민들이 2016~2017년 한계를 넘어선 ‘불공정’에 분노해 촛불을 들었다면, 이곳 시민들은 평생 신념인 ‘담마’가 또다시 철저히 부정당하고 무너진 것에 분노해 거리로 나서고 있습니다.
군사정부의 대규모 범죄자 가석방도 시민들의 분노를 부채질하고 있습니다. 군부는 지난 12일 과도정부 탄생을 기념한다며 중범죄자 2만3000여명을 가석방했습니다. 그러고는 이틀 뒤 치안 유지를 해야 한다며 주요 도시에 장갑차와 탱크, 군 병력을 대거 투입했습니다. 석방된 범죄자들은 여러 도시에서 많은 범죄와 혼란을 일으켰습니다.
중장년층은 이런 상황이 1988년 민주화 투쟁 당시와 비슷하다고 말합니다. 당시 군은 치안 유지를 명분으로 군 병력을 투입했고, 군인들은 치안을 불안하게 하는 자가 아니라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대를 향해 총을 쐈습니다.
젊은이들은 최근 제가 거주하는 아파트 단지 안에서 자체 경비대를 조직해 곳곳에서 밤을 새우고 있습니다. 인위적인 혼란을 줄여 군부에 쓸데없는 빌미를 주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아파트 단지 주민들뿐만 아니라 전국의 시민들이 저녁 8시만 되면 시민불복종을 상징하는 ‘냄비 두드리기’에 동참해 어제보다 더 큰 목소리로 구호를 외치고 더 큰 목소리로 저항가를 부릅니다. “군부는 물러가고 권력을 다시 국민에게 돌려달라”고.
양곤/천기홍 부산외국어대 미얀마어과 특임교수
16일 미얀마 양곤에서 승려들이 쿠데타 반대 팻말을 들고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양곤/EPA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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