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지난 2016년 서울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회관에서 연 기자간담회에서 저서 '제국의 위안부' 일본어판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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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천예선 기자] 위안부 문제를 다룬 저서 ‘제국의 위안부’로 소송에 휘말린 일문학자 박유하 세종대 교수가 최근 “일본 위안부는 매춘부”라고 주장한 존 마크 램지어 미국 하버드대 교수를 옹호하는 글을 올려 파문이 일고 있다.
박 교수는 지난 2일 페이스북을 통해 “하버드 교수의 글을 아직 읽어 보지 못해서 정확한 건 말할 수 없지만, 무조건 망언이니 심지어 전범기업교수니 할 이야기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며 “보도만 보자면 이 교수의 주장은 역사적 디테일에선 크게 틀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그렇다고 하더라도 ‘위안부=매춘부’라는 주장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라며 “매춘부와 성노예 담론 모두, 양쪽 다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박 교수는 그러면서 중국 무한에 있는 위안부 공양비(碑)를 언급하며 위안부가 일방적으로 압박받는 존재가 아니었다는 자신의 관점을 뒷받침했다.
그는 “위안부의 공양비는 말하자면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비”라며 “일본군이 위안부를 왜 위로했을까. 이 공양비가 의미하는 건 위안부와 군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압박받는 존재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라고 주장했다.
이는 일본군이 피해 여성들을 성노예화한 전쟁범죄로 위안부를 규정하는 국제사회 인식과 크게 동떨어진 주장이다.
박유하 페이스북 게시글 전문 [페이스북 캡처] |
박 교수는 그러면서도 “물론 위로를 받았다고 해서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니다”며 “징용이나 징병처럼 동원당한 건 사실이지만 남성피해자에 비해 여성피해자들은 ‘법’이라는 강제틀 바깥에서 동원되었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이를 바탕으로 “매춘부와 성노예 담론 모두, 양쪽 다 문제가 있다”며 “30년이나 양쪽 극단의 주장에 휘둘려 왔지만 이제는 그 대립을 지양할 때가 됐다”고 강조했다. 그는 “'성노예'설을 유포/확산/정착 시켜 온학자들은 아마도 당혹스러울 것이고 또 다시 토론이 아니라 비난과 규탄에 나서겠지만. 상기해야 할 건 미국 학자까지 이 싸움에 등판하도록 만든 건 바로 그들 자신이라는 점”이라고 주장했다.
이 외에도 박 교수는 미쓰비시 중공업을 전범 기업으로 보기는 어렵다고도 했다. 그는 “미쓰비시를 전범기업이라고 하는 것도 문제지만 기업의 연구비가 역사·정치적 목적으로 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미쓰비시 교수’로 불린 램지어 교수를 감쌌다.
한편 박 교수는 2013년 7월 출간한 저서 ‘제국의 위안부’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매춘’ 등으로 표현해 명예훼손 혐의로 2015년 11월 불구속 기소됐다.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지만 2심에서 패소했다. 2017년 10월 상고한 뒤 아직 대법원에서 소송이 진행 중이다. 〈박유하 세종대 교수의 페이스북 글 전문〉위안부를 '매춘부'라고 주장했다는 하버드 교수의 글을 아직 읽어 보지 못해서 정확한 건 말할 수 없지만, 무조건 망언이니 심지어 전범기업교수니 할 이야기는 아닐 것으로 보인다(미츠비시를 전범기업이라고 하는 것도 문제지만 기업의 연구비가 역사정치적 목적으로 주어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하지만 즉각 이런 단순반응을 하는 언론의 잘못은 크지 않다. 이렇게 반응하도록 만든 확신=상식을 만든 지원단체와 관계학자들이 문제다.
보도만 보자면 이 교수의 주장은 역사적 디테일에선 크게 틀리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위안부=매춘부"라는 주장에 문제가 없는 건 아니다.
사진은 중국 武漢무한이라는 곳에 있었다는 위안부의 공양비 사진이다. 말하자면 영혼을 위로하기 위해 세워진 비.
일본군이 위안부를 왜 위로했을까. 물론 강제로 끌어와 강제노동을 시킨 노예를 위로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이 공양비가 의미하는 건 위안부와 군의 관계가 일방적으로 압박받는 존재만은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언젠가 DVD를 빌려서 모임에서 상영했던 〈오키나와의 할머니〉에도 비슷한 이야기가 나온다. 또 조선인군속이 고작 남의 물건을 훔쳤다는 이유로 그 자리에서 즉각 '처단'까지 했던 일본군인이, 다른 한편으로는 폭격으로 죽은 조선인 위안부를 수습했다는 이야기도. 조선인의 생명에 대한 이 군인의 양가적 태도는, 오로지 규율을 위반했는지 여부에 있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들에게 너무나 가벼웠던 조선인의 생명의 무게를 생각하면 아득해지는 일이다.) 이들이 위안부의 시신을 수습하고 위로했던 이유는, 위안부가 '준군속'같은 존재 였기 때문이다. 물론 장소와 시기에 따라 군의 관여도와 종속도는 달랐다.
물론 위로를 받았다고 해서 피해자가 아니라는 이야기가 되는 건 아니다. 징용이나 징병처럼 동원당한 건 사실이지만 전자—남성피해자에 비해 여성피해자들은 '법'이라는 강제(죽거나 부상 당했을 때 보호망으로 기능하기도 했던)틀 바깥에서 동원되었던 것이니까.
그런 의미에서 매춘부와 성노예 담론 모두, 양쪽 다 문제가 있다. 30년이나 양쪽 극단의 주장에 휘둘려 왔지만 이제는 그 대립을 지양할 때가 됐다. '성노예'설을 유포/확산/정착 시켜 온(물론 신체를 착취당했다는 의미에서의 '성노예'를 나는 책에서도 부정하지 않았다)학자들은 아마도 당혹스러울 것이고 또다시 토론이 아니라 비난과 규탄에 나서겠지만. 상기해야 할 건 미국 학자까지 이 싸움에 등판하도록 만든 건 바로 그들 자신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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