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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인택의 글로벌 줌업] ‘내 나라 먼저’…백신 민족주의에 흔들리는 코로나19 탈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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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확보·접종에 부익부 빈익빈

인도 22억, EU 14억, 미 10억 회분

아프리카·중동·동남아 몫 부족

백신 격차, 국제질서에 부정 영향

중앙일보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백신 격차’ 해소가 국제사회의 새로운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백신의 확보와 접종이 부자나라와 개발도상국 간에 상당한 격차를 보이면서다. 유럽연합(EU)은 공급 부족으로 백신 대란을 겪고 있고, 영국과 백신 수출 갈등도 빚고 있지만, 상당수 개도국은 접종은커녕 백신 구경도 못 한 처지다.

블룸버그 통신에 따르면 2일까지 전 세계 최소 62개국이 백신 접종에 들어갔다. 지난주에는 인도 물량을 지원받은 방글라데시·미얀마·네팔·부탄·몰디브·세이셸 등 6개 개도국도 접종에 들어갔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는 부유한 북미·유럽 외의 접종 국가는 많지 않다. 주요 지역연합 단위로 접종 현황을 살펴보면 백신 격차가 확연히 드러난다.

중동·북아프리카 22개 회원국에 총인구 4억 2300만인 아랍연맹(AL)은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아랍에미리트(UAE)·바레인·쿠웨이트·오만·이집트의 6개국만 접종 중이다. 이집트 외엔 모두 부유한 산유국이다. 아랍연맹은 언어·종교의 동질성이 강하지만 경제력과 백신에서 동등하지 않다. 아랍연맹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은 2020년 추정치로 4200달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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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북부도시 하이파에서 지난 11일 노인층을 상대로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접종이 이뤄지고 있다. 이스라엘은 2일 현재 전체 인구의 53.58%가 1회 이상 백신을 맞았다.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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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 2100만 인구에 55개 회원국으로 이뤄진 아프리카연합(AU)에서 접종국은 이집트·기니·세이셸이 고작이다. 이집트는 아랍연맹·아프리카연합에 동시 가맹국이다. 아프리카 첫 접종국인 기니는 러시아 가말레야(스푸트니크V) 백신을 55명에게 접종한 게 전부다. 세이셸은 인구 8만의 인도양 섬나라로 인도의 백신 지원을 받았다. 아프리카연합의 1인당 GDP는 1958달러다.

10개 회원국의 총인구가 6억 6100만인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에선 싱가포르·인도네시아에 이어 인도의 지원을 받은 미얀마가 지난주 접종을 시작했다. 말레이시아·필리핀도 준비 중이다. 아세안의 1인당 GDP는 5017달러다.

백신 계약 상황을 살펴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부자 나라나 큰 나라, 백신 생산국(위탁 포함)이 물량을 독점하다시피 하는 ‘백신 탐욕’이 도도한 흐름이 되고 있다. 일부 국가는 아직 긴급 사용 허가도 받지 못한 품목을 포함해 인구의 몇 배나 되는 물량을 확보하면서 백신 블랙홀로 자리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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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스트라제네카와 옥스퍼드대가 공동 개발한 코로나바이러스 백신 10회분이 담긴 용기. [AFP=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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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억 인구 대국 인도는 아스트라제네카·노바백스를 각 10억 회분, 가말레야 2억 회분 등 무려 22억 회분을 확보했다. 인도는 백신 위탁생산 공장을 운영하면서 자국에 일정량을 우선 충족한 뒤 수출하기로 했다. 4억 4600만 인구의 EU는 아스트라제네카·화이자·사노피GSK 백신 각 3억 회분 등 모두 14억 500만 회분을 확보했다.

인구 3억3100만의 미국도 아스트라제네카 3억 회분, 모더나·화이자 각 2억 회분 등 모두 10억1000만 회분을 들여오기로 했다. 6800만 인구의 영국은 자국에 공장에 있는 아스트라제네카 1억 회분을 비롯해 모두 7종류 3억6700만 회분을 확보했다. 인구 3760만의 캐나다도 7종류의 백신 2억3400만 회분을 도입할 계획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아랍연맹에선 이집트(인구 대비 백신 확보율 61%)·바레인(36%)·아랍에미리트(36%), 아세안에선 인도네시아(50%)·말레이시아(46%)·필리핀(36%)·베트남(21%), 아프리카연합에선 민주콩고공화국(10%)·남아프리카공화국(6%)이 고작이다. 나머지 회원국들은 5% 이하다.

심지어 세계보건기구(WHO) 등이 국제적인 백신 공평 분배를 위해 운영하는 ‘코백스 퍼실리티’는 아스트라제네카 3억 회분, UBI 2억 회분, 사노피·GSK 2억 회분 등 7억 회분을 확보했다. 올해 말까지 공급 목표인 20억 회분에는 한참 못 미친다. 대부분의 개도국이 코백스에 매달리지만, 현실은 차갑다. 백신 확보에는 경제력과 함께 정보력·외교력·행정력이 동시에 필요함을 보여준다.

블룸버그는 현재 전 세계에서 84억 9000만 회분에 해당하는 110건 이상의 백신 공급 계약이 이뤄졌다고 추정했다. 백신 대부분이 2회 접종이니 전 세계 78억 인구의 54%에 면역력을 제공할 수 있는 분량이다. 상당수 백신은 아직 긴급 사용허가를 받지 못하거나 임상시험 중이다. 백신 품목이 모두 허가를 받고 생산·접종되려면 2022년도 지나야 할 것으로 블룸버그는 전망했다.

이런 상황에서 일부 접종 선발국가는 조만간 집단면역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돼 희비가 엇갈린다. 집단면역 형성 기준으로 WHO는 인구의 60~70%, 앤서니 파우치 미 국립알레르기·감염병 연구소장은 70~90%를 제시했다. 70%를 기준으로 시기를 예상해보자. 블룸버그 집계에 따르면 미국은 3억 3100만 인구에 현재까지 3180만 명이 1회 이상 접종해 접종률이 9.75%다. 하루 135만 명의 현행 접종 속도를 유지하면 222일이면 전체에, 140일이면 전체 70% 인구에 접종이 가능하다. 이르면 앞으로 5개월 정도 뒤인 6월 말쯤 집단면역 형성을 기대할 수 있다.

영국은 6790만 인구에 지금까지 937만 명이 맞아 접종률이 14.2%다. 하루 38만 명의 속도로 맞고 있으니 남은 인구의 70%에 접종하려면 100일쯤 걸릴 전망이다. 접종 속도가 세계 최고인 이스라엘은 866만 인구의 53.58%인 485만 명이 1회 이상 접종을 받아 접종률이 53.6%에 이른다. 하루 17만 명이 맞으니 1주일 남짓이면 전 인구의 70%가 접종받을 수 있다. 이르면 영국은 5월 초, 이스라엘은 이달 중 집단면역 단계에 이를 수 있다.

EU는 4억 4600만 인구에 현재까지 1227만 명이 맞아 접종률이 2.76%이다. 하루 53만 명의 속도이니 70%가 접종받으려면 566일(1년 7개월)쯤 걸린다. 일부 회원국에서 관료주의 등으로 속도가 나지 않고, 아스트라제네카의 출고가 지연되면서 EU엔 비상이 걸렸다.

글로벌 백신 격차는 경제·디지털 격차에 못지않게 국제 질서에 부정적 영향으로 작용할 수 있다. 국가 간 격차와 갈등이 증폭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이를 해결할 국제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코로나19를 이기려면 개별 국가나 특정 지역이 아니라 전 세계가 함께 집단 면역을 확보해야 하기 때문이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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