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임을 앞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1일 경북 포항시에 거주하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필근(94) 할머니를 찾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일본 정부의 위안부 피해자 배상 책임을 인정한 한국 법원 판결에 "솔직히 곤혹스럽다"고 말한 지 2주 만이다.
1일 경북 포항시 북구 죽장면에 있는 일제강점기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박필근 할머니 집에서 박 할머니(오른쪽)가 방문 후 돌아가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을 안으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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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장관은 이날 KTX 열차편으로 포항역에 도착해, 승용차로 포항 북구 죽장면에 있는 박 할머니 집을 방문해 박 할머니에게 준비해온 케이크와 분홍색 겨울 외투를 선물로 전했다.
강 장관은 취재진에게 "개인적으로 만나러 왔다"며 말하고 양해를 구한 뒤 비공개로 박 할머니와 대화했다. 30분쯤 대화를 한 강 장관은 박 할머니 손을 잡고 집 밖으로 나왔다. 박 할머니는 한참 동안 강 장관 손을 잡고 놓지 않다가 포옹을 했다. 강 장관도 박 할머니 등을 토닥이며 위로한 뒤 발걸음을 옮겨 차를 타고 떠났다.
박 할머니는 취재진에게 "전에 만난 적이 있는데 마지막이라며 인사하러 왔다고 했다"며 "다음에 또 보자고 했다"며 눈물을 훔쳤다. 강 장관은 과거부터 박 할머니와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도 지난 2019년 5월 박 할머니의 새 보금자리를 마련하는 데 도움이 된 이들에게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감사를 표했다. 다만 정부는 한일관계를 의식한 듯 이날 강 장관의 위안부 할머니 방문 일정을 사전에 언론에 알리지 않았다.
2017년 6월 7일 오전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조선DB |
강 장관은 재임 기간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많은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는 2017년 6월 7일 국회 인사청문회에 '위안부 배지'를 달고 참석했다. 이 배지를 어디서 구했는지 묻는 질문에 "지난 주 금요일(2017년 6월 2일) 나눔의 집을 방문했을 때 할머님이 달아주신 것"이라고 답했다.
당시 강 장관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에 대해 "유엔에서 인권분야를 6년 담당한 사람으로서, 한일 위안부 합의가 나왔을 때 의아하게 생각했다"며 "위안부 피해자 중심으로 접근해 도출한 것인지, 과거에 교훈으로 남은 부분을 잘 수용한 것인지 저도 의문점이 많았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취임 후 2017년 7월 31일 장관 직속으로 '한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검토 태스크포스(TF)'를 설치했다. TF는 그해 12월 27일 한국 정부가 소녀상 이전을 위해 노력한다는 등의 '비공개 합의'가 있었다는 내용을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이튿날 입장문에서 "2015년 한일 양국 정부간 위안부 협상은 절차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중대한 흠결이 있었음이 확인됐다"며 "저는 대통령으로서 국민과 함께 이 합의로 위안부 문제가 해결될 수 없다는 점을 다시금 분명히 밝힌다"고 했다. 사실상 합의를 백지화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달 8일 한국 법원이 위안부 피해자에게 배상할 책임이 일본 정부에 있다고 인정하는 판결을 하면서 상황이 변했다. 외교부는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내고 "정부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한다"면서도 "정부는 2015년 12월 한일 정부간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의 공식 합의라는 점을 상기한다"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열린 신년 기자회견에서 기자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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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 대통령도 지난달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위안부 판결'에 대한 질문을 받고 "한일간 현안을 외교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에 위안부 판결이 더해져 솔직히 조금 곤혹스럽다"면서 "한국 정부는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가 양국 정부간의 공식적인 합의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판결을 받은 피해자 할머니들도 동의할 수 있는 해법을 찾아 나갈 수 있도록 한일 간에 협의를 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정의용 외교부 장관 후보자가 오는 5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공식 임명되면 장관직에서 물러나게 된다.
손덕호 기자(hueyduck@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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