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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7 (수)

이슈 [연재] 연합뉴스 '특파원 시선'

[특파원 시선] 국제보건 비상사태 1년…WHO, 위상 되찾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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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코로나19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 선포 (PG)
[장현경 제작] 일러스트



(제네바=연합뉴스) 임은진 특파원 = 오는 30일(현지시간)이면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대해 최고 수준의 경보인 국제적 공중보건 비상사태(PHEIC)를 선언한 지 꼭 1년이 된다.

그간 전 세계 확진자 수는 1억 명을 돌파했고, 누적 사망자만 200만 명을 훌쩍 넘어섰다.

이처럼 코로나19가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번진 데에는 늑장 대응을 한 WHO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정작 WHO는 여전히 단호하고 빠르게 대응했다고 항변한다.

수장인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은 지난해 1월 PHEIC를 선언했을 때 중국 외 지역에서 보고된 확진자는 100명이 채 안 됐고 사망자도 없었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당시는 중국 우한(武漢)에서 처음 보고된 코로나19가 태국과 일본, 한국 등 인접국으로 퍼지며 이미 '국제적인 상황'으로 번진 상태였다.

심지어 WHO는 PHEIC 선언 자체도 미적거렸다.

자문 기구인 긴급위원회가 지난해 1월 22∼23일 처음 소집됐지만 PHEIC는 두 번째 회의가 열린 같은 달 30일에서야 선언됐다.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은 첫 번째 긴급위 회의 때 선언 여부에 대해 전문가 의견이 50대 50으로 나뉘었으며 긴급위의 권고가 없었다고 해명했지만, PHEIC 선언 권한은 긴급위가 아닌 사무총장에게 있다.

이에 대해 '팬데믹 준비 및 대응을 위한 독립적 패널'(IPPR)은 지난 18일 발표한 중간 보고서에서 WHO가 코로나19 발생 초기 더 빨리 조처했어야 했다고 꼬집었다.

"긴급위가 왜 1월 셋째 주까지 소집되지 않았고, 왜 1차 긴급위 회의에서 PHEIC 선포에 대한 합의를 끌어낼 수 없었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이 같은 지적에 대한 WHO나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의 답변은 10여 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들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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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기원 밝혀질까' 중국 우한 도착한 WHO 조사팀
[AP=연합뉴스]



WHO의 늑장 대응은 이뿐만이 아니다.

코로나19 기원 조사를 위한 국제 전문가팀의 중국 파견도 늦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벌써 발생 보고 이후 1년이나 지난 시점이라 명확한 해답을 얻기 위한 자료 수집이 쉽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앞서 WHO는 지난해 2월과 7월에도 조사팀을 중국에 보냈지만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WHO에서 사무차장을 지낸 켄지 후쿠다 홍콩대 교수는 AP 통신에 "(코로나19가) 시작하고 1년이 지났고 많은 물리적 증거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라면서 확고한 결론이 나올 때까지 수년이 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마스크 착용에 대한 권고도 늦었다.

지금은 '상식'이 돼 버린 마스크 착용의 필요성을 WHO가 인정한 것은 이미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한 차례 휩쓸고 간 이후인 지난해 6월이었다.

이전까지 WHO는 증상이 없는 사람이 마스크를 착용하는 것이 코로나19의 전파를 막는 데 유용하다는 어떠한 증거도 없다는 주장을 폈다.

오히려 올바르지 않은 방법으로 마스크를 쓰거나 벗으면 손이 오염될 수 있으며, 마스크 착용 시 얼굴에 손을 갖다 대는 경향이 더 많다고 했다.

최근에는 변이 바이러스 출현으로 독일과 오스트리아 등 일부 국가에서 방역 효과가 좀 더 큰 것으로 알려진 의료용 FFP2 착용을 의무화하고 있지만, WHO는 비의료용 및 천 마스크가 60세 이하 건강한 사람들에게 여전히 유효하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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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WHO 사무총장
[AFP=연합뉴스 자료사진]



늑장 대응과 함께 국제 공조를 끌어낼 역량 및 리더십 부족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백신의 공평한 공급에 있어 WHO가 지닌 이러한 문제는 여실히 드러났다.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쏟아지는 확진자 수에 다급해진 일부 선진국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 제약사와 양자 계약을 통해 코로나19 백신을 입도선매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WHO는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중재에 나서기보다 뒤늦게 사재기를 비판하고 백신을 기부하라고 촉구하는 등 부유한 국가의 '선의'에 기대고 있다.

WHO는 다자 기구이기 때문에 개별 회원국이나 제약사 의사에 반해 백신을 확보하고 배분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세계 보건 정책을 관장하는 기구로서 이렇다 할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하는 점은 아쉽다.

여기에 WHO는 PHEIC 선언 이후 1년 동안 매일 같이 진행하는 언론 브리핑을 주목해야 할 성과로 꼽고 있지만, 브리핑 시작 시간을 제대로 지킨 적 없는 데다 내용도 부실하다는 비판이 많다.

코로나19 기원 조사나 도쿄 올림픽 개최에 따른 위험 관리 등에 대한 취재진의 질문이 이어지고 있지만, 명쾌한 답변을 내놓지 않고 있다.

말의 양은 많지만 실속 있는 답변은 없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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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취임 후 첫 업무를 보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AFP=연합뉴스]



이러한 늑장 및 부실 대응은 WHO에 대한 회의로 이어져 급기야 미국은 지난해 탈퇴를 통보했다.

한 해 4억∼5억 달러(약 4천402억∼5천502억원)의 기여금을 주는 '큰 손'이 절연을 선언하면서 WHO 입장에서는 자금 확보 계획에 비상이 걸린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코로나19 대응 실패에 대한 자국 내 비난의 화살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WHO를 타깃으로 삼았다는 분석도 있지만, WHO가 빌미를 제공했다는 지적 역시 제기됐다.

당시 독일과 프랑스가 국제 연대를 강조하며 WHO에 수천억 원 규모의 자금 지원을 약속하고, 지난 20일 취임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탈퇴 절차의 중단을 지시하면서 WHO는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는 WHO가 팬데믹 대응을 잘해서라기보다는 테워드로스 사무총장이 언급한 대로 "100년에 한 번 나올 보건 위기"인 코로나19라는 '급한 불'부터 끄고 보자는 의미 아닐까.

WHO가 치열한 자기 반성과 개혁을 통해 코로나19 기간 잃어버린 위상을 되찾고 이름 그대로 세계 보건을 지키는 기구로 거듭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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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HO 로고
[연합뉴스TV 제공]



engine@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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