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사방’ 운영자 조주빈이 지난해 서울 종로경찰서를 나서고 있다. 이석우 기자 |
26일 오후 2시 서울고등법원 형사9부 법정.
재판이 끝나자 피고인들은 일제히 방청석을 향해 뒤로 고개를 돌렸다. 가족이 왔는지 확인하려는 듯 보였다. 피고인석 한 쪽 끝에 앉아있던 조주빈(26)도 누군가를 찾았다. 지난해 4월 구속된 후 이발을 하지 않았는지 머리카락이 목 뒤까지 길게 자라 단발머리가 됐다.
한규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이날 재판은 검찰과 피고인 모두가 항소를 제기해 열렸다. 텔레그램 대화방인 ‘박사방’에서 조직적으로 성착취물을 만들어 파는 범죄단체를 결성해 활동한 혐의 등을 받은 이들에 대한 첫 항소심 공판기일이었다. ‘박사’ 조주빈(1심 징역 40년), 주요 운영진으로 통한 ‘태평양’ 이모군(17·장기 10년, 단기 5년), 박사방 운영에 가담하고 과거 교사의 딸을 살해하려 모의한 혐의를 받은 사회복무요원 강모씨(24·징역 13년), 성착취물을 제작하고 성매매를 시도한 전 거제시 공무원 천모씨(30·징역 15년), 박사방 유료 회원인 임모씨(35·징역 8년)와 장모씨(22·징역 7년) 등 6명이다.
검찰은 주범인 조주빈에 대해 “무기징역을 구형했는데 징역 40년이 선고됐다”며 항소했다. 검찰은 이날 항소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박사방 조직이란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범죄단체다. (조주빈은) 장기간의 수형생활로도 교정될 가능성이 없다. 냉철한 이성으로 유료방 구성원을 모집해 성착취물을 판매했다. 교정되거나 개선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보인다. 수많은 피해자를 대상으로 아무런 죄의식 없이 저지른 성폭력 범죄다. 피해자는 사회적 지위가 불안정한 사회적 약자였다. 출소 후 마음만 먹으면 재범할 것이며 사실상 죄를 뉘우치지 않고 있다.”
검찰은 미성년자인 이군에 대해선 “곧 성인이 된다는 점을 고려해 달라”고 했고, 천씨에 대해 “자신의 면책만 바라고 범행을 반성하지 않는다”며 구형대로 1심 선고가 나왔지만 “원심의 형보다 가중돼야 한다”고 했다.
조주빈의 변호인은 범죄단체 결성 혐의에 대해 “박사방은 피고인(조주빈)이 주도적으로 방을 개설한 것이고, 다른 공동 피고인이나 유저(이용자)들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영상물의 기획 대가를 지급하거나 등급을 높이는 행동을 한 것”이라며 “소비자라는 인식을 넘어 (범죄단체로서) 조주빈과 역할을 분담해 범행을 한 것이 아니기에 법리 오해가 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변호인은 또한 1심에서 징역 40년이 선고된 것에 대해 “조주빈에게 유리한 양형 요소는 사실상 고려되지 않았다”며 “살인이나 다른 강력 범죄에 비해 지나치게 형평을 잃은 것으로 보이니 항소심에서 살펴봐 달라”고 했다. 조주빈 외에 다른 박사방 관련자들도 “고액방 이용자에 불과했다” “성착취 영상에 (돈이) 쓰였다는 인식이 없었다” “(박사방이) 형법이 규정하는 범죄집단에 이르지 않았다”는 취지로 해명했다. 범죄수익은닉 혐의 등 다른 사건으로도 기소돼 1심 선고가 예정된 조주빈 등은 선고 후 항소할테니 이 항소심에서 사건들을 병합해 다뤄달라고 요청했다.
“재판을 마치겠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재판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방청석을 돌아본 조주빈은 그의 아버지로 보이는 중년 남성과 눈을 마주쳤다. 둘은 고개를 끄덕이며 눈인사했다. 남성은 피고인석으로 가까이 다가갔다. 어수선한 틈을 타 조주빈은 이 남성에게 ‘이리 오라’는 듯 짧게 손짓했다. 남성이 가까이 다가가자 조주빈은 담담한 표정을 지으며 악수했다.
“그러시면 안 돼요.” 이송을 담당하는 교도관들은 그를 제지하며 소리쳤다.
다음 재판은 오는 3월9일 오전 10시다.
전현진 기자 jjin23@kyunghyang.com
▶ [인터랙티브] 그 법들은 어떻게 문턱을 넘지 못했나
▶ 경향신문 바로가기
▶ 경향신문 구독신청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