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정치의 요체는 삼권분립을 바탕으로 하는 견제와 균형의 원리다. 민주화 수준은 대체로 그 원리가 작동되는 수준과 비례한다. 권력구조가 의원내각제일 경우는 명실상부하게 의회가 정치의 중심이다. 그러나 대통령중심제일 경우엔 조금 다르다. 대통령 권력의 과잉으로 인해 의회권력은 정치의 중심은커녕 견제기능도 제대로 수행 못하기 일쑤다. 한국의 경우가 딱 그렇다. 반면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어처구니없는 좌충우돌에도 불구하고 대통령 선거를 통해 더 큰 재앙 없이 ‘비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질 수 있었던 것도 강력한 미국 의회가 있었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견제의 힘’을 보여준 사례라 하겠다.
민주주의가 발전된 나라 중에 대통령중심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다양성이 위축되고 독재의 유혹도 상존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경우 미국 민주주의 제도와 많이 닮았지만 의회의 위상과 파워는 미국과 비교조차 하기 어렵다. 실체를 잘 들여다보면 한국의 국회가 행정부를 비롯해 사법부를 제대로 견제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럴만한 힘도, 역량도, 제도도 미흡하다. 게다가 국민적 신뢰도 아주 낮다. 겉으로는 삼권분립이니 민의의 전당이니 하지만 한국 국회의 위상은 생각보다 낮고 무력하다. 한국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서는 반드시 보완하고 개선해야 할 과제라 하겠다.
최근 법관 탄핵 문제가 다시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민주당을 비롯해 정의당, 열린민주당, 기본소득당 소속 의원들이 ‘사법 농단’ 연루 혐의를 받는 임성근·이동근 판사에 대해 탄핵소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까지 의원 107명이 탄핵소추 제안에 동의했다는 소식이다. 우리 헌법은 국회의 법관 탄핵을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다(헌법 65조). 따라서 탄핵소추가 국회의 당연한 헌법적 권한인 만큼 새삼 문제가 되거나 논란이 될 이유가 없다. 헌법과 법률에 근거해서 탄핵소추를 발의하고 찬반 여부를 결의하면 될 일이다.
하지만 논란이 되고 있다는 것 자체가 국회에 대한 강한 불신과 무력함을 방증하고 있다는 뜻이다. 과연 이번 탄핵소추의 근거가 적합한 것인지 그리고 여야가 과연 그것을 논의하고 결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구심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우리 헌정사상 국회의 법관 탄핵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1985년 유태흥 전 대법원장, 2009년 신영철 전 대법관에 대한 탄핵안이 발의됐지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런 현실에서 국회 권한을 강화시켜 한국 민주주의의 지평을 더 넓혀야 한다는 ‘당연한’ 주장이 힘을 얻을 리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국회의 권한을 더 넓히고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을 포기할 수는 없다. 국회야 말로 민주주의의 동력이요, 국민의 목소리가 직접적으로 반영될 수 있는 선출된 대표 기관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두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 논의가 국회에서 활발하게 이뤄지길 바라는 것이다. 탄핵소추 근거가 무엇인지, 그 근거를 놓고 본회의에서 토론하고 결정을 내리는 엄중한 모습을 보여 달라는 것이다. 탄핵안이 결의될지 또는 부결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국회가 헌법적 권한을 활발하게 행사함으로써 한국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되고 있으며, 나아가 국회의 권한 강화를 통해 한국 민주주의의 지평을 더 넓혀가야 한다는 당연한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이번 만큼은 국회가 더 앞장서 달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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