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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8 (목)

[난민유입 20년] ② 제주 난민들 "한국이 우리 고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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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민 관심 부상·인프라 확충 절감…제주 예멘 난민사태가 남긴 것

난민 등 외국인 혐오 금지 방안 논의도 시작

(서울=연합뉴스) 이상서 기자 = "혼란스러운 분위기였죠. 휴대전화 번호를 알아내 '추방해야 하는 사람을 왜 도와주냐'고 협박한 전화가 여러 차례 걸려오기도 했지만, 반대로 식당을 찾아와 좋은 일 한다고 응원한 이도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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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적 체류 허가 받은 예멘인들
예멘인 난민신청자들이 2018년 9월 제주시 용담동 제주출입국·외국인청에서 1년간의 인도적 체류 허가를 받고 청사를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제주도 제주시에서 할랄 음식점 '아살람'을 운영하는 하민경(42) 씨는 2018년 봄 무렵 제주에 온 예멘 난민들을 위해 자신이 무용 연습실로 쓰던 100㎡ 규모의 공간을 흔쾌히 내줬다. 석 달 넘게 100여 명의 난민이 이곳에서 살았다.

하 씨는 여기서 알게 된 예멘인 모하메드 아민 알마마리(39) 씨를 식당 주방장으로 일할 수 있도록 했고, 2019년 4월에는 그와 결혼식을 올리며 화제를 낳기도 했다.

당시 경계심으로 가득 찼던 도내 분위기는 아직도 선연하다. 이제까지 무슬림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만나본 적도 없는 도민들에게 난민 유입이라는 현안은 낯설 수밖에 없었다.

하 씨는 25일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나도 난민을 만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도 많은 선입견을 지닌 채로 살았을 것"이라며 "초반에 두려움을 갖던 마을 주민도 이제는 이웃처럼 지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알게 된 난민 상당수가 일자리를 찾아 육지로 떠났지만 여전히 명절이나 휴가철이면 제주를 찾는다"며 "전쟁 중인 모국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이곳이 고향이나 다름없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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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속 예멘 식당
왼쪽부터 예멘 난민 출신인 주방장 아민 알마마리, 사장 하민경 씨, 종업원 사미 알바드니 [유엔난민기구 한국대표부 제공]



2018년 제주 난민 사태는 우리 사회가 본격적인 난민 문제에 주목하게 된 시발점이었다.

제주 출입국외국인청에 따르면 당시 예멘인 484명이 난민 인정 신청서를 냈고, 이 중 인정 2명과 인도적 체류허가 412명 등 85.4%에 해당하는 414명이 정식으로 제주에 살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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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심사 결과
2018년 제주 예멘 난민 심사 결과 [법무부 제공]



수백 명의 난민이 입국한다는 소식이 퍼지자 제주는 물론이고 전국적으로 불안감이 나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이들의 수용을 반대한다는 글이 올라왔고 70만 명 넘게 동의하며 당시 역대 최다 청원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난민법 폐지와 제주 예멘인 송환, 제주 무사증 제도 폐지 등을 촉구하는 집회가 전국 곳곳에서 열리기도 했다.

같은 해 6∼7월에만 출입국 항에서 난민 신청을 막거나 허위 서류 작성 시 처벌 강화 등 난민법 개정안이 무려 5건 발의됐다.

이민정책연구원은 '제주 예멘 난민 논쟁을 통해 본 한국 난민제도의 개선 쟁점' 보고서에서 "아시아 최초로 난민법 제정을 발표한 2012년에도 난민 문제가 이처럼 전국적으로 주목을 받지는 않았다"며 "2015년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대량 난민 사태가 지구촌 화두로 올랐던 때도 마찬가지"라고 분석했다.

당시 제주도 출입국외국인청장을 지냈던 김도균 한국이민재단 이사장은 "제주 난민 사태는 찬반 논쟁이나 대응 방식 평가를 떠나 전국민적인 관심을 모았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며 "이전까지 먼 나라 이야기였던 난민이 우리의 문제로 인식됐고, 이들을 어떻게 바라봐야 하는지 화두를 던졌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김 이사장은 "다만 후속 논의가 부족했고 관심이 빨리 식어버린 한계가 있었다"며 "난민협약국이자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우리나라이기에 앞으로도 난민은 무거운 숙제로 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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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서 예멘 난민 수용 반대집회
2018년 6월 30일 제주시청 앞에서 제주난민대책도민연대 등의 단체가 집회를 열어 난민수용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국내 난민 심사 인프라 보강이 시급하다는 사실을 절감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제주에 온 예멘 난민을 수용할 시설이 전무해 도내 관광호텔이나 가정집, 종교단체의 지원시설 등에 거주하면서 치안을 우려하는 인근 주민이 강하게 반발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제주에 상주하는 난민심사관은 단 1명에 불과했고 전국을 통틀어 난민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39명에 그쳤다.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2019년 난민 인정심사에 투입된 담당 공무원은 65명으로 과거보다 소폭 늘긴 했으나 여전히 부족한 상태다.

반면 난민 심사 대기자는 2018년부터 매년 약 2만 명을 기록 중이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휩쓴 지난해도 1만 명을 넘겼다. 담당자 1명당 300명이 넘는 난민을 심사해야 하는 셈이다.

내국인과 갈등을 줄이고 외국인 혐오를 금지하는 방안 등의 논의도 이때 본격적인 첫발을 뗐다.

정지원 제주이주민센터 사무국장은 '제주 예멘 난민 신청자를 둘러싼 갈등요인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서 "무분별한 이방인 혐오를 규제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입법을 모색해야 한다"며 "갈등 해소에 기여할 수 있는 정책수립 등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shlamazel@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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