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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30 (화)

[현장에서]튤립 버블과 비트코인...서로 닮아가는 '진짜'와 '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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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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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그림은 1609년 미하일 미에르펠트가 그린 '튤립,구근,껍질과 부부의 초상'이라는 작품입니다.

그림이 그려진 1609년은 네덜란드 경제의 중심이 남쪽 안트워프에서 암스테르담으로 옮겨졌고, 증권거래소가 문을 연 해입니다.

금융업을 중심으로 네덜란드에 돈이 밀려들며 유동성이 풍부해지기 시작한 때였습니다.

네덜란드는 신교도로 이뤄졌고 귀족이 아닌 신흥 부유층 이른바 부르조아가 국가의 중심 세력이었습니다.

새로운 종교, 새로운 지배계층, 새로운 경제 체계 네덜란드는 새로움을 찾는 에너지가 넘쳤습니다.

그 때 그들의 관심을 끄는 새로운 물건이 들어왔습니다.

중앙아시아를 원산지로 오스만투르크(터키)를 거쳐 1590년대 말 '튤립'이 네덜란드로 전파된 겁니다.

신비감의 대상이던 오스만투르크제국 술탄 정원에서 '천국의 꽃'이란 각광을 받던 존재. 그리고 다양한 변이를 일으키는 종의 특성.

튤립은 빠르게 성장하며 새로운 에너지가 충만하던 네덜란드에서 그야말로 대인기를 끕니다.

유동성이 넘치는 경제 그리고 청빈을 기본으로 하는 프로테스탄티즘이 바탕을 이룬 정신세계.

돈은 있지만 이탈리아나 스페인 귀족처럼 화려한 낭비를 할 수 없던 네덜란드 부호들 입장에서는 희귀한 튤립에 더 관심을 가졌을거란 생각이 듭니다.

◆ 인기가 투기로

특이한 튤립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일확천금을 누릴 수 있는 상황. 이제 네덜란드 일반인들도 튤립 뿌리(구근)을 구하기 위해 매수에 뛰어듭니다.

튤립 구근 자체가 희귀품이 되었고, 족보가 확실한 알뿌리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여기에 피기 전까지 어떤 품종이 나올 지 알 수 없는 '도박성'까지 겹치면서 튤립은 최고의 투기 상품으로 변질됩니다.

이사람에서 저사람으로 튤립 어음이 넘어가며 하루에 몇 배씩 가격이 뛰었고, 한달에 수백배 가격이 오른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너도나도 튤립 구근을 사서 재배에 뛰어들어 공급이 수요를 넘어섰고, 사람들 사이에서 먹지도 못하고 피었다 시드는 꽃일 뿐이라는 생각이 서서히 퍼지며 튤립 가격은 폭락하기 시작합니다.

넉달 만에 95%나 폭락했고, 비싼 가격에 튤립을 사겠다고 약속했던 어음이 휴지가 되어버리자 정부는 튤립 어음에 적힌 금액의 10%만 내면 된다는 긴급 조치를 내리기도 했습니다.

주식회사를 처음 만들어낸 네덜란드는 나라의 대표 꽃 '튤립'을 통해 자본주의 사회의 고질병인 버블 경제의 첫 사례도 만들었습니다.

◆ 가상화폐와 튤립
요즘 가상화폐와 튤립 버블을 비교하는 이야기를 자주 듣습니다.

어짜피 컴퓨터 프로그램일 뿐인데, 가상화폐로 바로 물건 살 수도 없는데, 그저 일부의 투기 세력이 끌어올렸을 뿐인데 등등

그래서인지 가상화폐 시장은 이런 우려에 민감하게 반응합니다.

재닛 옐런 FRB 의장이 "많은 암호화폐가 주로 불법 금융에 사용되는 것으로 생각한다. 그런 사용을 축소시키고 돈세탁이 안 이뤄지도록 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라고 말하자 비트코인은 16%나 폭락했습니다.

정부가 본격적으로 규제하면 튤립 버블처럼 비트코인은 신기루처럼 사라질 것이란 전망도 심심치 않게 나옵니다.

◆ 서로 닮아가는 진짜와 가상

하지만, 가상 화폐는 이제 17세기 튤립보다 점점 진짜 화폐와 닮아가고 있습니다.

아니 진짜 화폐가 가상 화폐와 닮은 꼴이 됐다는 말이 더 어울리겠네요.

옛날에 돈은 진짜 금이나 은 등 그 자체가 가치를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언제라도 은행에 가면 약속한 만큼의 금이나 은으로 바꿔주는 모습으로 바뀌었죠.

하지만 1971년 미국 닉슨 대통령이 발행하는 화폐만큼 금을 창고에 쌓아놓는 금본위제를 폐지한 후 지금 지폐와 가상화폐는 본질적으로 다를 것은 없습니다.

정부가 보증하겠다는 이름의 지폐를 시장에 참여한 사람들이 교환, 결제, 가치측정의 수단으로 믿고 사용할 뿐입니다.

진짜 화폐는 정부가 종이와 잉크 값만 쓰면 얼마든지 찍어낼 수 있습니다. 나라가 망하거나 베네수엘라나 짐바브웨처럼 수퍼 인플레이션이 닥치면 화폐로서 가치를 잃게 됩니다.

오히려 장시간 컴퓨터를 돌려야 얻을 수 있는 비트코인이 상대적으로 희귀성에서는 앞설 수 있습니다.

다만, 숙제는 가상화폐가 교환.결제.가치측정 수단으로 인정 받는 것이 핵심 변수일 겁니다.

가상화폐가 이 지위를 차지하려고 시도하겠지만, 기존 경제 체제가 가만히 이를 받아들이지는 않을겁니다.

앞으로도 가상화폐가 그 범위를 넓히려고 할 때마다 재닛 옐런의 경고처럼 기존 경제 시스템의 거친 공격이 진행될 겁니다.

과연 그 공격을 이겨내고 새로운 지위를 가상화폐가 차지할 수 있을 것인지 궁금합니다.

튤립은 '버블' 충격을 딛고 지금은 네덜란드 나라꽃으로 떳떳하게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김성철 기자/fola5@mb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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