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기부 장관 교체는 박 장관이 4월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위해 어제 오전 사의를 표명한데 따른 것이다.
하지만 이번 개각을 놓고 진보진영에서조차 "특정인을 위한 보궐선거용 개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호진 정의당 수석대변인은 논평에서 "유례가 드문 정부의 찔끔 개각으로, 어디를 보나 박영선 출마용 개각"이라며 "장관의 직이 집권당의 선거용 명함으로 잦아지는 것은 국민 눈높이로 볼 때 보기 좋은 모습은 아니다"고 힐난했다.
정 대변인은 박영선 중기부장관, 강경화 외교부장관의 후임으로 각각 남성이 발탁돼 내각의 여성 비율이 낮아졌다며 "문재인 대통령의 약속이 주저앉았다"고 꼬집기도 했다.
실제로 전체 부처 장관 18명 중 여성장관 숫자가 5명에서 3명으로 줄면서 여성 장관 비율은 27.7%에서 16.6%로 떨어졌다.
4월 서울·부산 시장 보궐선거는 집권여당 소속인 고 박원순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 파문 때문에 치러지는 선거다.
하지만 '원죄' 당사자인 민주당은 2015년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 당 소속 공직자 비위로 실시되는 재보궐선거에 공천을 못하게 한 당헌까지 바꿔 후보 출마의 길을 텄다.
후보를 공천해 선택을 받는 것이 책임정치에 더 부합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성 인지 감수성'을 강조해온 문 대통령도 18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박 시장의 성추행의혹 사건의 피해자에 대해 안타깝게 생각한다"면서도 "당헌은 고정불변이 아니다"며 여당의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에 사실상 동의했다.
박 전 시장의 성범죄 피해자와 가족이 여당과 서울시를 향해 "우리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피폐해졌다. 2차 가해를 멈춰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여당은 오불관언이다.
여당이 권력 재창출을 위해 당초 국민과의 약속을 뒤집고 시장선거 출마라는 꼼수를 쓰는 것은 책임있는 공당의 자세로 보기 어렵다.
더구나 그동안 장관 업무를 잘 수행해 온 여성 정치인을 선거를 이유로 전격 교체한 것 역시 문제가 많다.
여당 원내대표 출신인 박영선 중기부 장관은 2019년4월 취임 후 강원 산불피해 현장, 코로나19 버팀목자금 집행점검을 위한 전통시장 방문, 백신 주사기 스마트 공장화 등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자영업자의 고충과 애로를 해소하는데 진력을 쏟았다.
특히 박 장관은 벤처기업 정규직 근로자 80만시대를 여는 등 중기·벤처분야 주무부처 수장으로서 일자리 부문에서 눈에 띄는 성적표를 남기기도 했다.
박 장관이 19일 저녁까지 서울시장 출마 여부에 철저히 함구한 것도 중기부 장관직을 계속 수행하고 싶은 솔직한 속내가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박 장관이 고별사에서 "이제 모든 것을 내려놓고 광야로 떠난다"고 표현한 것도 이런 아쉬운 심정과 맞닿아 있다.
그런데도 여당이 그런 박 장관을 끝내 서울시장 후보로 차출한 것은 그만큼 인물난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박 장관의 당내 경선 출마가 여당에 정치적 도움을 줄지는 몰라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 입장에선 장관 교체로 정책과 자금집행이 늦어질 경우 상당한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여당이 4월 보궐선거의 정치적 맥락과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선거는 여야 인물 대결보다는 '국정 안정론'과 '정권 심판론'이 팽팽하게 맞붙은 구도다.
따라서 여당으로선 백신 도입과 치료제 개발 등을 통해 코로나19 감염 확산을 막고, 위기에 빠진 민생과 경제부터 챙기는 것이 급선무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고 경제가 회복되면 정권심판론이 잦아들게 되고, 결국 작년 4월 총선처럼 표심이 여당으로 몰릴 개연성이 크다.
그런데도 여당이 중요한 국정 현안은 제껴둔 채 후보 찾는데만 물불을 가리지 않는 것은 격화소양이나 다름없다.
"위기에 빠진 나라와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인사"라는 지적이 야권에서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개각의 목적은 무엇보다 국정 쇄신과 민생 안정이 돼야 한다.
그렇지 않고 개각이 집권 연장을 위한 정략적 수단으로 전락하면 국민에 감동을 주기 어렵고 개각 효과도 떨어지기 마련이다.
이번 선거출마용 개각이 4월 선거에서 여당에 호재가 될지, 악재가 될지 결과를 지켜볼 일이다.
[박정철 논설위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