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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9 (목)

美민주 ‘큰 정부’, 공화 ‘작은 정부’?... 150년 출발은 정반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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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미 공화당은 ‘작은 정부’, 민주당은 ‘큰 정부’를 원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조 바이든 민주당 행정부에서 재무장관이 될 재닛 옐런은 19일 코로나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나라 빚 걱정 없이 “크게 움직이고(act big), 돈 푸는” 정부를 약속했다. 또 공화당은 친(親)기업적이고, 시장의 역할·개인의 책임을 강조하지만, 민주당은 소수 인권의 강화와 복지 확대를 꾀한다는 게 통념(通念)이다. 이런 정책적 성향 역시 ‘작은 정부’ ‘큰 정부’와 같은 맥락이다.

그러나 시작은 정반대였다. 민주당은 흑인 노예에 기초한 남부의 대규모 농장(플랜테이션) 경제가 근간이었고, 에이브러햄 링컨과 공화당의 노예제 폐지에 반대했다. 11개 주가 연방을 탈퇴하고 내전을 벌일 정도로 연방정부의 개입에 맞섰다. 반대로, 1854년 결성된 공화당은 노예제 폐지와 흑인 인권 강화, 기간 산업의 육성을 위해 강력한 연방정부를 주창했다.

조선일보

에릭 라우치웨이 교수


지금 시점에서 보면, 두 정당의 철학과 정책은 150여년 사이에 완전히 뒤바뀐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미 역사학자인 캘리포니아대(UC 샌디에이고)의 에릭 라우치웨이 교수 설명은 “이를 이해하려면, 우선 남북전쟁(1861~1865)과 1936년 대선(프랭클린 D 루스벨트의 재선) 두 시기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공화, 서부(西部)로 노예제 확대하려는 민주당과 싸워

공화당은 처음부터 미 서부 변경지역까지 노예제를 확대하려는 민주당에 맞서 설립됐다. 또 대륙횡단철도를 놓고 일반인에게 혜택이 돌아갈 주립(州立)대학 체계를 확립하고 서부에서 토지를 무상으로 받은 소(小)자영농들을 보호하기 위해, 연방정부의 권한 확대를 꾀했다. 공화당은 또 보호관세를 채택하고, 주 단위의 통화(通貨)를 폐지해 달러화로 통화 체계를 확립(1863년 미 국립은행법 제정)하기 위해선 강력한 정부가 필요했다

남북 전쟁 후 ‘재건(Reconstruction) 시대’에 접어들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두드러졌다. 공화당은 1866~1871년 흑인들에게 공민권을 부여하고 백인우월단체 KKK를 배척하는 민권법안들을 계속 통과시켰다. 노예제 폐지를 명문화한 수정헌법 13조가 의회를 통과한 것(1865년)도, 법무부를 창설(1870년)한 것도 모두 공화당이었다. 이 모든 움직임에 민주당은 반대했다. 1870년대 두 당의 노선은 분명히 구분됐다.

◇1936년 재선한 FDR, 뉴딜 정책을 위한 ‘큰 정부’ 주창

민주당의 프랭클린 D 루스벨트(FDR) 대통령은 대공황을 겪으면서, 실업자 구제·노인 연금·자연 보존·노조(勞組) 보장뿐 아니라, 도로 건설과 전력 인프라 구축과 같은 대규모 뉴딜 정책을 벌이기 위해 강력한 연방정부가 필요했다. 공화당은 FDR의 정부 권한 강화에 거세게 반대했다. 결국 남북전쟁과1936년 사이에 두 당의 정책이 뒤바뀐 것이다.

◇공화·민주 정책, 19세기말~20세초는 모두 ‘큰 정부’

라우치웨이 교수는 민주당이 변한 시점으로 ’1896년 대선'을 꼽는다. 보수적인 그로버 클리블랜드 대통령이 이끌던 민주당은 이후 정책에서 ‘사회 정의’를 최우선시하는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1860~1925)으로 바뀌었다. 브라이언은 이후 3차례 민주당 대선 후보로 나서면서 당의 변화를 이끌었다. 민주당은 이후 1913년 우드로 윌슨 행정부와 민주당 의회에서 브라이언이 주창했던 소득세법과 연방준비제도법을 통과시켰고, 그 뒤 민주당에서 다시 대통령이 된 사람이 FDR이었다. 민주당은 이후 지금과 같은 ‘큰 정부’로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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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당의 링컨 대통령은 노예제를 폐지하는 수정헌법 13조를 강력하게 밀어붙여 의회 통과를 성사시켰다. 1870년대 공화당은 흑인 공민권 부여, 법무부 창설, 달러화의 정착, 대륙횡단 철도-전신 사업을 위해 '큰 정부'를 주창했다. 1936년 재선에 성공한 민주당의 루스벨트 역시 강력한 뉴딜 정책의 시행을 위해선, '큰 정부'가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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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롭게도, 브라이언의 민주당이 ‘큰 정부’를 주창한다고, 공화당이 ‘작은 정부’로 바로 바뀐 것은 아니다. 두 당은 30년 가까이 모두 ‘사회 정의’에 기여하는 ‘큰 정부’에 동의했다. 공화당은 1920년대 캘빈 쿨리지 대통령(1923~1929 재임)에 가서야 지금과 같이 ‘작은 정부’를 지향한다. 그리고 곧 FDR의 ‘큰 정부’에 반대하게 된다.

◇민주당, 왜 ‘큰 정부’로 바꾸었나?

가장 간단한 답은 ‘미국 서부’다. 남북 전쟁 이후에만 모두 14개 주가 연방에 편입되면서, 정치적 셈법이 달라졌다. 서부 주민들은 갈수록 공화당 정책이 은행·철도회사·제조업체에 유리하고 가난한 자영농들에게 덜 호의적이라고 생각했다. 민주당의 브라이언은 바로 이 서부 유권자를 잡으려 했다. 그래서 1896년 대선에서 그때까지 미 북동부 공업지역에 치중했던 연방정부의 재정 지원을 이들에게 약속했다. 그 결과, 두 당은 19세기말~20세초 비슷한 정책을 놓고 다퉜다.

라우치웨이 교수는 “그런데 왜 공화당이 ‘작은 정부’로 돌아섰는지가 애매하다”고 말했다. 그는 “1920년쯤 가면 이미 많은 ‘큰 정부’ 정책이 통과됐고, 서부 주민들 반발도 가라앉았고, 반대로 대량 유입되는 이민자들에 대한 불만이 높아졌다”며 “이 모든 것이 합쳐지고 추가 요인이 합쳐져, 공화당은 더 이상 ‘큰 정부’ 공약을 남발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 것 같다”고 했다.

이후 민주당은 인종·민족적 소수계의 인권과 남녀 평등을 넘어, 임신중절 지지, 성(性)소수자들과 불법이민자 보호, 종교적 다양성 강화 등의 정책으로 나아갔다. 전통적인 남부 백인들은 이러한 정책들이 전통적·기독교적 가치관을 벗어나 갈수록 급진적으로 흐른다고 보고 위협을 느꼈다. 닉슨의 공화당 정부는 이렇게 민주당에서 이탈된 남부 백인들을 규합하기 위해 ‘남부 전략(Southern Strategy)’을 수립했다. 애초 흑인 노예제의 폐지에 강렬히 반대했던 미국 남부가 공화당의 텃밭으로 바뀐 것이다.

두 당이 한세기 반에 걸쳐 정책을 맞바꿔도, 공화당 핵심 지지층은 변하지 않았다. 바로 ‘대기업’이다. 미 대기업들은 서부개척 시대엔 대규모 철도·전신 사업을 벌이기 위해 정부의 강력한 지원과 보호가 필요해서, 이제는 규제 완화를 원하는 ‘작은 정부’를 원해 공화당을 지지한다.

[이철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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