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 재감정 참여한 이정빈 가천의대 교수
"나였다면 고통 끝내게 숨지게 해달라 빌었을 것"
정인이의 사인을 재감정한 이정빈 가천의대 교수가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자신의 소견을 밝히고 있다. 이 교수는 <뉴스1>과의 인터뷰에서 “내가 정인이였다면 고통을 끝낼 수 있게 차라리 숨지게 해달라고 빌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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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승환 기자,정혜민 기자 = 이정빈 가천의대 석좌교수(75)는 반론의 여지가 없는 국내 최고 법의학자다. 197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시신 1000구 이상을 부검했다. 전남 나주 드들강 살인사건을 비롯해 그의 재감정에 힘입어 단서를 찾고 해결한 장기미제 사건이 많다.
이 교수는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정인이의 사인도 재감정했다. 생후 16개월 된 영아가 죽음에 이른 과정을 진단하면서 어떤 감정을 마주했을까. 산전수전 다 겪은 원로 법의학자인 이 교수는 <뉴스1>과의 전화인터뷰에서 감정이 요동쳤던 순간을 들려줬다.
◇북받친 '감정' 감정서에 기록했다가 삭제
"제가 만약 정인이었다면, 그러니까 피해자였다면, 가해자에게 그렇게 괴롭히지 말고 차라리 나를 숨지게 해달라고 빌었을 겁니다. 그리고 제가 하늘나라로 갔다면 '더는 고통 받지 않게 해줘서 고맙다'고 가해자에게 말했을 것입니다."
이 교수는 정인이 부검 감정서에 이런 내용을 실제로 적었다가 삭제했다고 한다. 감정서에서 지우기는 했지만 자신의 감정을 감정서에 남기려 한 것은 정인이 사건이 처음이었다.
이 교수는 여대생 박상은양 피살 사건(1981년), 연세대 이한열 열사 사망 사건(1987년), 듀스 멤버 김성재 의문사 사건(1995년), 김도룡 드들강 살인사건(2001년), 강호순 연쇄 살인 사건(2009년) 등 초대형 강력 사건을 맡아 왔다.
"법의학자는 어떤 면에서 의학적 판사이기 때문에 감정을 철저히 배제한 채 감정서를 기술해야 합니다. 정인이 감정서에 붙이려다 삭제한 그 소견은 저의 컴퓨터에 저장해 두었습니다."
13일 오후 경기 양평군 하이패밀리 안데르센 공원묘원에 양부모의 학대로 숨진 16개월 영아 정인(가명)양의 사진이 놓여 있다. 2021.1.13/뉴스1 © News1 송원영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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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월 입양된 정인이는 같은 해 10월 서울 양천구 병원의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던 중 숨졌다. 췌장 절단, 복강 내 출혈 등 심각한 복부손상을 입은 상태였다. 쇄골과 늑골 등에 골절 흔적도 있었다.
검찰은 양모 장씨가 강한 둔력을 가해 췌장이 절단됐고 이 충격으로 600㎖ 상당의 복강 내 출혈이 이어져 정인이가 사망한 것으로 봤다.
◇"안 죽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이 교수는 검찰 요청으로 정인이 사건의 재감정에 참여했다. 검찰은 이 교수의 사인 분석 등을 근거로 지난 13일 양부모 첫 재판에서 살인죄를 추가 적용했다.
쟁점은 고의성 여부다. 양부모 측은 공소 사실을 일부 인정하면서도 "고의는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사망 당일 정인이의 복부를 수차례 때리고 밟았다는 검찰의 공소 요지에 "밟은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법조계는 이를 살인죄 적용을 모면하려는 전략으로 해석하고 있다.
이 교수는 "고의성 여부는 판사가 판단하기 때문에 나의 영역이 아니다"면서도 의학적 소견을 바탕으로 사건 당시 정황을 분석해 설명했다.
"16개월 영아가 이틀 동안 아무 것도 먹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사망 당일에도 먹지 않고 그 전날에도 먹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비실비실한 아이를 밟았을 때 안 죽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저는 정인이 학대 혐의를 받는 양부모 얘기를 하는 게 아니라 그냥 일반적인 사람의 생각을 말하는 것입니다."
◇"울어도 아프고, 웃어도 아픈 고통"
이 교수는 양모가 정인이의 급소 부위를 가격했을 것이라는 소견도 냈다. 정인이 겨드랑이 왼쪽 부위에서 상흔이 세 군데나 발견됐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정인이의 늑골 골절도 언급한 다음 "지속적으로 학대를 받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지난해 5월부터 늑골 골절이 일곱 차례에 걸쳐 지속적으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늑골 골절이 제대로 치유되는데 4~5개월 걸립니다. 나을만하면 부서지고 나을만하면 부서지는 일이 반복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정인이 학대 신고가 세 차례나 있었다죠?"
© News1 이은현 디자이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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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신고 당시 정인이가 늑골 부상을 입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정인이는 어떤 고통을 느꼈을까.
"양모가 '정인이는 잘 울지 않는다'고 얘기했다죠? 왜 안 울었을까요?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에서 큰소리를 내려면 숨을 크게 내쉬어야 하는데 이때 고통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울어도 아프고 웃어도 아픕니다. 의자에서 일어나려고 책상을 짚어도 '으악' 소리가 납니다. 다시 말하면 정인이는 꼼짝 할 수 없는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경찰은 학대 신고를 세 차례나 접수하고도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사건을 내사 종결하고 검찰에 불기소 의견으로 송치한 바 있다.
mrlee@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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