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측 협상 과정서 불만 제기… 억류된 선원들 안전 우선 고려
최영함 300km 떨어진 곳 이동
이란 외교부, 조기 석방설 일축
“근거없는 얘기… 사법부가 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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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교부가 이란 정부에 한국 선박 ‘한국케미’호의 조속한 석방을 요구하는 과정에서 우리 군에 나포 사건이 발생한 뒤 호르무즈 해협 인근으로 급파된 청해부대(최영함·4400t급)를 철수시켜 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최영함은 최근 호르무즈 해협에서 약 300km 떨어진 기항지인 오만 무스카트항 북쪽 인근으로 이동했다. 이란 측이 청해부대의 호르무즈 해협 인근 활동에 반발하자 선원들의 안전에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해 취한 조치로 보인다. 이란 측은 선박에 대한 “사법적 절차”를 강조하고 있지만 정부는 이란이 나포 이유로 주장한 ‘환경오염’ 근거를 확보하지 못했을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있다.
17일 복수의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외교부는 최근 군에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작전을 수행 중인 청해부대 33진 최영함의 철수를 요청했다. 청해부대는 나포 사건이 발생한 다음 날인 5일(현지 시간) 호르무즈 해협에 도착했다. 이후 한국케미호가 정박해 있는 반다르아바스 항구에서 동남쪽으로 150∼200km 떨어진 해상 일대에서 선박 호송 임무를 수행해 왔다. 정부 소식통은 “정부의 군사적 조치가 부각되는 게 석방 협상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국방부에 철수를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이란 측은 외교부와 협상 과정에서 청해부대 급파에 대해 불만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지난해부터 이란 정부가 청해부대의 호르무즈 해협 활동에 강한 불쾌감을 드러낸 것을 고려해 나포 사건 초기 최영함의 급파 자체를 반대했다고 소식통은 전했다. 청해부대가 호르무즈 해협 인근에서 물러난 데는 협상 과정에서 선원들이 안전하다는 사실이 확인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란은 우리 선박의 조기 석방 가능성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태도를 이어가고 있다. 사이드 하티브자데 이란 외교부 대변인은 16일 한국케미호의 조기 석방 가능성을 묻는 현지 기자단 질문에 “선박 억류와 관련한 결정과 발표 권한은 사법부에만 있고 관련 없는 이들의 발언은 어떤 근거도 없다”고 밝혔다. 이어 “한국 선박은 페르시아만에서 저지른 환경오염 혐의에 따라 사법부가 현재 조사 중”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이날 호세인 탄하이 이란-한국 상공회의소 회장이 이란 메르통신에 “선박 석방과 관련된 긍정적인 소식을 들었다. 2주 정도 기다려야 할 것”이라고 한 뒤 조기 석방 가능성이 제기되자 이를 일축한 것이다. 이란 정부는 조기 석방 가능성이 “소문(gossip)”이라고 했다.
정부는 이란 측이 우리 선박의 해양 오염 증거를 갖고 있다면 이를 제시한 뒤 약식 재판을 통해 벌금을 물리는 등의 방식으로 석방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이란은 선박 나포 2주가 다 되도록 증거를 내놓지 않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이란 정부에 환경오염 증거가 없는 것으로 보인다”며 “선박 나포가 사법적, 기술적 문제라는 이란 측의 주장을 믿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선박 나포 문제는) 이미 이란 정부의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고차방정식의 정치적 사안이 됐다”고 했다. 선박 나포 사건이 한-이란 간 동결 대금 갈등, 이와 연결된 미국의 이란 제재, 제재를 풀기 위한 미-이란 간 핵합의(JCPOA)까지 한꺼번에 엮인 이슈가 됐다는 것.
외교부는 미국과 협의해 우선 동결 대금에 대한 외교적 해법을 찾는다는 방침이지만 이란 측의 강경한 태도 때문에 난항이 예상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구매를 위한 국제 협의체인 코백스(COVAX) 퍼실리티에 동결 자금 4000만∼5000만 달러를 대납하는 애초의 구상은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신규진 newjin@donga.com·최지선 기자 / 카이로=임현석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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