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4.26 (금)

[아무튼, 줌마] 가짜 칼럼입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아무튼, 주말]

조선일보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이거, 직접 쓴 칼럼 맞나요?”

그제도 이런 메일을 받았습니다. 조금 뜸해졌나 싶더니, 다시 문의가 옵니다. 제가 쓴 칼럼이 맞는지 안 맞는지 내기 한 분도 있다며, 확인차 전화한 회사 선배도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제가 쓴 칼럼이 아닙니다.

‘문재인, 당신은…’으로 시작하는 이 칼럼이 제 사진과 조선일보 직함을 달고 소셜미디어에 등장한 건 재작년 2월입니다. 처음엔 단순 착오이겠거니 했고, 누가 이 글을 내가 썼다고 생각할까 했는데, 인터넷이 얼마나 무서운지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번지더군요. 서울 사는 지인들은 물론 시골 어머니로부터도 전화가 걸려오고요. 미국 출장길에, 머나먼 저 북구 스웨덴에서도 “이거 김 기자가 쓴 글 맞느냐”며 카톡이 날아왔습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고, 검찰까지 사건이 넘어갔는데 진범은 잡을 수 없고 초기에 이 글을 퍼날라 확산시킨 두 명의 네티즌을 찾아내는 데서 종결된 상태입니다.

그래도 여전히 가짜 칼럼은 ‘살아서’ 인터넷 공간을 활보합니다. 최근에도 어느 유명 유튜버가 자신의 방송에서 이 글을 낭독하면서 “세상에 이런 용감한 여기자가 있다”고 해서 실소가 터졌습니다. 한 번쯤 제게 확인이라도 해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요즘은 다음 커뮤니티에서 줄기차게 공유되는 모양입니다. 아무리 끊어내려 해도 좀비처럼 살아나서 퍼져나가는 가짜 뉴스가 왜 죄악인지 절감하고 있습니다.

가장 민망한 건, 저에게서 글쓰기 강의를 들은 ‘학생’들입니다. ‘맛있는 글쓰기’란 타이틀로 진행했던 조선일보 독자 대상 강의에서 제가 강권했던 글쓰기의 방식과는 전혀 반대의 글이라, 그분들이 얼마나 어리둥절했을까 생각하면 진땀이 납니다.

육사 예비역의 60~70대 남자분이 쓴 글로 추정되는 이 글을 탓하는 게 아닙니다. 저라면 같은 주제라도 이런 문체로 쓰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뻔뻔한' ’추악한’ ‘사탄’이란 단어들을 함부로 사용할 만큼 저는 단호하지 않습니다. 주장보다는 팩트가, 분노보다는 연민이 많은 글을 좋아합니다. 바로 옆에 있는 ‘봉달호의 오늘도 편의점’처럼요. 삶의 현장에 뚝뚝 떨어지는 땀과 눈물, 기쁨과 애환이 손에 잡힐 듯 생생하게 담긴 글을 존경합니다. 9년 차 편의점 주인장의 위트와 유머가 넘치는 글을 보고 붓을 꺾어야 하나 했을 만큼 절망과 감동을 동시에 맛본 뒤 ‘아무튼, 주말’에 모셨습니다.

분노의 글이 많이 읽히는 건 그만큼 현실 권력에 대한 원망이 많다는 뜻일 테지요. 우직한 소의 해, 신축년엔 화해와 용서를 구하는 글들이 더 많이 읽히기를 소망합니다.

[김윤덕 주말뉴스부장]

- Copyrights ⓒ 조선일보 & chosun.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