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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허연의 책과 지성] `벙어리 황소`라 불렸던 철학자에게 찬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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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중세 스콜라 철학의 완성자이자 성인인 토마스 아퀴나스에게는 별명이 두 개 있다.

하나는 '벙어리 황소'이고 또 하나는 '천사 박사'다.

벙어리 황소라는 별명은 그의 우직함과 커다란 덩치 때문에 생겼다. 아퀴나스는 수도원 책상에 앉을 수 없을 만큼 몸집이 커 책상 일부를 잘라내야 겨우 앉을 수 있었다. 성격마저 바위처럼 과묵하고 온화해서 사람들은 그를 벙어리 황소라고 불렀다.

천사 박사라는 별명이 생긴 것은 한 사건이 원인이 됐다. 아퀴나스는 19세 무렵 엄격하기로 소문난 도미니크 수도회에 입회해 속세를 떠나려고 했다. 이를 반대하던 형들이 수도원행을 단념시키기 위해 어느 날 그가 자던 방에 아름다운 여성을 들여보냈다. 아퀴나스는 유혹에 굴하지 않고 벽난로에서 불타고 있는 숯을 꺼내 들어 여자를 내쫓고 벽에 십자고상을 그렸다. 그러자 두 천사가 나타나 그의 허리에 순결을 상징하는 허리띠를 매어줬다.

과장이 좀 섞였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이 사건 이후 아퀴나스에게는 천사 박사라는 호칭이 주어졌다.

1225년 이탈리아 라치오에서 태어난 아퀴나스는 5세 때부터 수도원 학교에 다니면서 영성에 관심을 뒀다. 이후 수도회를 거쳐 사제서품을 받고 청빈한 신학자의 길에 들어섰다. 그가 장기간에 걸쳐 집대성한 '신학대전'은 기독교 교리서의 중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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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퀴나스는 혼란을 겪고 있던 신학과 철학 간 경계를 정리했다.

그는 두 영역 사이에 모순이 있을 수 없다는 이론을 설파했다. 오히려 서로 보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종교적 교리가 이성과 과학을 초월한다고 해서 그것이 곧 과학에 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게 아퀴나스가 펼친 주장의 핵심이었다.

아퀴나스는 나름대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애썼다. 그는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운동하는 존재이며, 결국 운동이 운동을 낳는다고 믿었다. 그것이 가능하려면 운동을 일으킨 최초 동력(動力)이 반드시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신(神)이라고 주장했다. 이른바 토미즘(Thomism)의 시작이다. 아퀴나스는 신적 세계관을 바탕에 두면서도 인간의 이성과 자율을 존중했다. 그는 선(善)하고 깨어난 인간만이 신을 영접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모든 덕의 근본에는 현명함이 내재되어 있고 모든 죄악에는 반드시 무지가 뿌리내리고 있다. 모르는 것보다 아는 것이 낫고 아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더 낫다. 진실하게 믿지 않으면 그 누구도 완전한 지식에 도달할 수 없다. 잃어버린 선에 대해 괴로워한다는 것은 아직 자기 내면에 선이 남아 있다는 증거다."

신성과 이성을 조화시킨 아퀴나스의 신학은 그가 사후 50년이 지나 성인으로 시성되면서 기독교 사상의 정신적 뿌리가 됐다.

우리는 늘 현실과 초월 사이에서 줄타기를 한다. 그 줄타기는 우리로 하여금 존재의 본질에 관해 사색하게 했고, 그 사색의 결과물이 우리에게 이성을 가져다줬다. 생을 바쳐 정리하고자 했던 아퀴나스의 고뇌가 의미 있는 이유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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