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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그림과 詩가 있는 아침] ceremony/이수진· 주전자/에쿠니 가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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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

주전자/에쿠니 가오리

1

주전자를 보고 있었지

집이란 불가사의함 속에서

아빠가 있고 엄마가 있어

평화롭고 햇살은 따스하고

행복하다 해도 좋은데

그저

주전자를 보고 있었어

텅 빈 몸으로

집이란 불가사의함 속에서

2

내가 주전자를 보고 있었다는 것을

당신은 아는 줄 알았어

창밖에 하얀 눈 오는 날 난로 위의 주전자 보는 것을 좋아했지요. 주전자의 작은 코에서 따뜻한 수증기가 퐁퐁 솟아오르면 방 안 공기가 음악처럼 촉촉해져요. 창에는 물기운이 어룽댑니다. 손가락으로 쓰고 싶은 글자들을 쓸 수 있지요. 엄마, 기적, 선물, 사랑해, 눈사람, 시…. 좋아하는 단어를 하나씩 적어 가는 동안 세월도 한 페이지씩 늘어났겠지요. 어린 시절은 마법처럼 사라지고 난로 위의 주전자도 볼 수 없게 됐지요. 아세요? 연인들은 가장 사소한 순간을 기억해 주길 바란다는 것을. 주전자를 보고 있는 그 순간에도 마음 안에선 당신을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그걸 모르는 순간 난로도 주전자도 신기루처럼 사라진다는 것을.

곽재구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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