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초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거론한대에는 분명 ‘정치의 착오’가 있었다고 본다. 전직 대통령 사면에 대한 정치적, 법률적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크게 두 가지 정치착오 때문에 초래된 일이다.
이 대표는 사면 제1의 명분으로 국민통합을 내걸었다. 문재인 정부에 못마땅해하는 반대진영에게 사면카드가 먹힐지 모르지만, 상당수 국민들은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으로 국민통합의 요구를 받으면 어리둥절 할 것이다.
정치권 못지않게 양분된 국민들에게 어쩌면 통합보다는 갈등이 재점화될 수도 있다. 집권여당의 대표가 내밀 국민통합 카드는 사면건의보다는 야당과 협치를 하고 대통령에게 중도?보수 진영의 국민들을 위한 정책을 구사할 수 있는 통합정부를 건의하는게 훨씬 현실적이다.
이낙연 대표의 사면론에는 국민통합의 명분 외에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 조짐에 대한 우려와 정치적 판단착오가 밑바닥에 깔려있다. 문재인 정부의 레임덕에 대한 과잉염려가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건의 구상으로까지 와버린 것이다.
명실공히 임기 말 한국 대통령의 레임덕은 지지율 급락과 미래권력의 출현이라는 두 가지가 동시에 충족되어야 한다. 지금 문재인 대통령에 대한 지지율 하락은 분명하지만 정부정책의 유연성과 개혁추진의 확고함이 균형을 갖추어가면 언제든지 반등할 성질의 것이다.
설사 문재인 대통령의 지지율 하락이 반전의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어도 곧장 권력 레임덕이 오는 것은 아니다.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레임덕의 필요조건은 미래권력의 등장에 있다. 특히 야권 중심의 미래권력이 보다 강력하지만, 현재 야권발 미래권력의 미형성은 아직 레임덕 현상에 도달하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집권여당의 대표가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의 사면을 건의할 때는 전혀 아니다.
이낙연 대표의 사면 건의 구상은 국민통합과 레임덕에 대한 ‘정치의 착오’에서 비롯된 것으로 부적절했지만, 특별사면의 신중론 차원에서 볼 때도 합당하지 않다. 헌법상 권력분립의 원리에 비추어보건대, 사면권이 사법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해서는 안된다. 대통령의 특별사면에 있어서 절차상 존재하지 않지만 대법원의 의견을 청취·고려가 필요한 대목이다. 대통령의 특별사면권은 인간적, 정치적 요소를 고려하고, 어떠한 사전적 통제도 할 수 없는 권한이기에 헌법적, 정치적 자제가 요청된다. 사면하더라도 국가이익과 국민화합의 차원에서 행사되어야 하고, 정치적으로 남용되거나 당리당략적 차원에서 행사되어서는 아니될 것이다.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요구의 유혹과 집착은 국민의힘 등 야권에게도 자기절제의 정치적 자제가 있어야 한다. 국민의힘의 경우 당체질을 변화시키고 이념적 스펙트럼의 유연화 및 중성화를 추구하며 중도진영의 인사영입까지 꾀하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대의와 이익을 위해서라도 야권 또한 사면요구에 신중하여야 할 것이다. 여든 야든 이명박·박근혜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 건의, 요구는 쉽게 만질 정치카드가 아니다.
집권여당에게는 국민통합 측면에서, 야권에는 당체질 변화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면논의는 정치공학 또는 당리당략보다는 향후 국민통합의 공론화 과정에서 도출될 정치과제이다.
이낙연 대표의 신년 초 사면건의 발언은 정치적 자충수까지는 아니어도 분명 큰 정치착오였다. 대선 후보로 거론되는 이대표에게 얼마 남지 않은 집권당 대표직은 자신의 정치와 더불어민주당의 정치력 강화를 위하여 매우 긴요하게 활용할 필요가 있다. 한국대통령의 레임덕은 궁극적으로 국민이 원하는 정부구성과 인사의 실패에서 비롯되었기에, 차기 대권을 노리는 이낙연 대표가 직언을 하고 차제에 ‘국민참여형 통합정부론’을 본인의 제1공약으로 준비할만하다.
촛불혁명은 진보만의 승리라기보다 전국적 범위의 국민주도형 정치결단이었다. 당시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공약으로 통합정부론은 매우 시의적절하고 탁월했으나 현재까지 미완의 숙제로 남아있기 때문에 이낙연 대표에게 정권재창출의 캐치프레이즈로 충분하다 하겠다.
박상철 경기대학교 정치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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