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낸 손해배상청구 소송 1심에서 승소하며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이 인정된 8일 서울 종로구 옛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눈사람이 놓여져 있다. [뉴시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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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중앙지법이 지난 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일본 정부는 원고들에 각 1억원씩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인정한 첫 판결이다.
주권과 보편적 인권이 충돌한 이번 소송에서 법원은 인권의 손을 들었다. 최대 쟁점인 '국가면제(또는 주권면제)'를 배제한 것이다. 국가면제는 쉽게 말해 어떤 나라도 다른 나라의 재판정에 서지 않는다는 국제법 원칙이다. 한국 법원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재판할 수 있느냐의 문제로, 일종의 ‘소송의 문턱’에 해당하는 판단이었다.
이와 관련 법원은 8일 “위안부 문제는 일본제국에 의한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국제 강행규범(Jus cogens)을 위반한 것”이라면서 “예외적으로 일본 정부에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1심 판단을 요약하면 이렇다. ▶위안부 문제는 ‘조약법에 관한 빈 협약(빈 협약ㆍ1969년)’상 강행규범에 해당하며, ▶이에 따라 국가면제 입장에 손을 들어준 국제사법재판소(ICJ)의 2012년 ‘이탈리아 대 독일’ 판례를 적용할 수 없고 ▶1965년 한ㆍ일 청구권 협약과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로도 원고들의 피해가 구제되지 않았기 때문에 청구권도 살아있다.
하지만 일본 정부는 여전히 이 국가면제의 원칙을 들어 이번 판결을 인정할 수 없다며 반발하고 있다. 재판권 자체를 인정할 수 없으니 항소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국내 전문가 등의 조언을 종합해 국제법적 관점에서 이번 판결의 의미와 남은 문제를 살펴봤다.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 앞. [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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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강행규범이란=1심 법원은 “국가면제 이론은 주권국가를 존중하기 위한 것이지, 국제 강행규범을 위반해 타국의 개인에게 큰 손해를 입힌 국가가 배ㆍ보상을 회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은 아니다”고 했다.
재판부가 근거로 든 강행규범은 절대규범이라고도 하며, 빈 협약 제53조에 규정돼 있다. 구문상 “국제 공동사회가 수락하거나 인정하는” 최상위 규범으로, “일탈이 허용되지 않는 규범”이다. 보통은 노예제도나 인종차별, 고문금지 등 국제관습법으로도 인정할 수 없는 행위들을 말한다고 한다. 1심 법원도 노예제를 강행규범의 예시로 들었는데, ‘위안부=현대판 노예제’라는 인식으로 보면 강행규범을 어긴 일본에 대한 재판도 가능하다는 판단이다.
보편적 인권이란 강행규범이 주권면제라는 국제 관습법의 상위에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다만 강행규범에 어떤 행위가 들어갈 수 있는지에 관한 똑 떨어진 국제 합의는 없다는 데 향후 공방이 발생할 여지도 있다. 빈 협약 도입 당시 영국, 프랑스 등 강대국들이 해당 규정을 반대해 세부 조항을 만들지 못했다고 한다. 여기에 재판에서 다루는 건 1940년대 일본 정부의 행위여서, 60년대 후반에 만들어진 빈 협약을 소급해 적용할 수 있느냐의 문제도 남아있다.
②과거 판례선 국가면제 인정=ICJ와 유럽인권재판소 등은 유사한 사례에서 국가면제 쪽에 손을 들어줬다. 이탈리아 법원이 나치의 강제노역 피해자가 독일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배소를 승소 판결한 것과 관련해, ICJ는 2012년 “독일의 국가면제 권한이 인정된다”는 취지로 판시했다. 집 안(본안판단)을 보기 전에 문턱(소송 요건)을 못 넘었다는 취지였다. 일본 정부는 이 판례를 근거삼아 “한국이 국제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③ 국제형사재판소(ICC), 성노예 반인도범죄로 규정=그런데 국제법의 최근 트렌드는 “국가가 쉽사리 개인의 청구권을 소멸시킬 수 없다”는 쪽으로 흐르고 있다. 특히 인권문제에서 그렇다. 국가끼리 ‘일괄타결협정(lump sum agreement)’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면, 정부의 논의에 끼어들 수 없었던 개개인의 권리가 묵살된다는 지적에 따라서다.
성폭행·성노예를 전쟁범죄로 처벌할 수 있는 규정도 생겼다. ‘ICC의 로마규정(1998년 도입)’에 따라 지난해 처음으로 콩고민주공화국의 전 반군 지도자가 아동병사 성노예 사건으로 유죄 판결을 받았다. 다만 이 경우는 국가가 아닌 개인에 해당하는 판례였다.
지난해 5월 종로구 주한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에 빗물이 맺혀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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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日정부 자산 압류 '2라운드' 남아=1심 법원의 판단은 결국 피해자들의 실질적인 권리 구제에 방점을 맞췄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강제징용 사건처럼 자산 압류 단계로 접어들면, 이번엔 일본 정부의 자산이 타깃이 된다는 점에서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한편 법원은 일본 정부의 책임을 인정하는 근거로 ‘국제범죄의 세부규정과 관련한 유엔의 국제법위원회 협약 초안(2001년)’도 들었다. 법원은 국가에 대한 책임도 물을 수 있다는 취지로 인용했지만, 초안에는 ‘이용 가능한 모든 국내 구제가 완료되지 않았다면 책임 추궁을 할 수 없다(제44조)’는 규정도 있다. 한국 정부가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구제 노력을 최대한으로 했는지를 놓고 논란이 제기될 소지도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이유정 기자 uu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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