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반인도적 범죄로 1억원씩 배상"…국내서 재판할 권리 인정
피해자 측 "인권 존중 확인한 선구적 판결"…유사 소송 이어질 듯
정부 "법원 판단 존중"…판결에 따른 한일관계 악영향은 고민
묵묵히 자리 지키는 소녀상 |
(서울·도쿄=연합뉴스) 김동현 황재하 기자 이세원 특파원 =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일본 정부의 배상 책임을 처음 인정한 국내 법원 판결이 8일 나왔다.
수십 년간 억울한 고통을 배상받지 못한 피해 할머니들의 권리를 확인한 판결이다. 반인도적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외국 정부도 국내 재판을 피해갈 수 없다고 한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로 이미 골이 깊은 한일관계는 새해부터 더 큰 위기에 직면하게 됐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4부(김정곤 부장판사)는 이날 고(故) 배춘희 할머니 등 위안부 피해자 12명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들에게 1인당 1억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위안부 피해자들은 그간 일본 정부를 상대로 한국 법원에 여러 건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냈는데 판결이 선고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원고들이 2013년 8월 일본 정부에 1인당 1억원의 배상금을 요구하는 조정 신청을 법원에 낸 지 약 7년 5개월 만이다.
입장 밝히는 이나영 정의기억연대 이사장 |
국가면제는 '한 국가의 법원이 다른 국가를 소송 당사자로 삼아 재판할 수 없다'는 것으로 국제사회에서 널리 통용된 원칙이다.
그러나 재판부는 이 사안이 국가 차원의 반인도적 범죄 행위라는 점에서 한국 법원에서 재판할 권리가 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일본 제국에 의해 계획적·조직적으로 광범위하게 자행된 반인도적 범죄행위"라며 "국가의 주권적 행위라고 해도 국가면제를 적용할 수 없고, 예외적으로 대한민국 법원에 피고에 대한 재판권이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위안부 배상 판결…일본 외무성 남관표 주일대사 불러 |
피해자 측은 인권을 존중한 판결이라며 환영했다.
정의기억연대는 법원 앞 기자회견에서 "피해자들의 절박한 호소에 귀 기울인 대한민국 법원 판결을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국제인권법의 인권존중 원칙을 앞장서 확인한 선구적인 판결"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일본 정부는 선고 직후 남관표 주일본 한국대사를 외무성으로 불러 강하게 항의하는 등 즉각 반발했다.
일본은 한일 사이의 청구권 문제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위안부 문제의 경우 2015년 한일 외교장관 합의에서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입장이라 이 같은 반응은 예견된 것이다.
가토 가쓰노부(加藤勝信) 일본 관방장관은 정례기자회견에서 "이런 판결이 나온 것은 매우 유감"이라며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일본 정부가 항소하지 않고 판결이 확정될 경우, 법원이 국내 일본 정부 자산의 강제집행을 시도하면서 한일갈등이 최고조에 이를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영삼 외교부 대변인이 2021년 1월 5일 정부서울청사 외교부 브리핑룸에서 이란의 유조선 억류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한국 정부는 판결을 존중하면서도 한일관계 악화를 막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외교부는 이날 대변인 논평에서 "정부는 법원의 판단을 존중하며,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와 존엄을 회복하기 위하여 우리 정부가 할 수 있는 노력을 다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동 판결이 외교관계에 미치는 영향을 면밀히 검토해 한일 양국 간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협력이 계속될 수 있도록 제반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부 노력에도 갈등 해소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강제징용 배상 판결은 일본 기업이 피고여서 우회로를 찾으려는 양국 정부의 노력이 있었지만, 위안부 판결은 피고가 일본 정부여서 논의의 첫발을 떼기조차 어려울 수 있다.
판결 자체를 부정하는 일본 입장과 사법부 판결은 존중해야 한다는 한국의 입장은 양립 자체가 쉽지 않아 보인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한일관계를 풀어나가기가 더 어려워졌다"고 했고, 이원덕 국민대 교수는 "한국 정부는 삼권분립을 존중할 수밖에 없어 곤란할 입장에 빠지게 됐다"고 말했다.
blueke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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