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kg가량 빠진 것은 의문이나, 아동학대로 보기 어려움'. 3차 학대 신고를 받고 출동한 아동보호전문기관(이하 아보전)이 정인이 양부와 소아과에 가서 받은 의사 소견이다. 경찰과 아보전 등은 의사 소견과 양부의 말을 믿고 정인이를 분리 조치를 하지 않았다. 결국 정인이는 20여일 뒤인 지난해 10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지난해 5월 7일 아동학대 신고를 받은 경찰은 준호(가명)를 학대우려 아동 A등급으로 지정했다. 13일에는 아보전이 주거지를 방문해 계모와 친부, 준호를 조사했다. 이후 경찰은 계모와 친부에게 체벌 사실까지 시인 받았다. 하지만 준호는 그 집에 계속 남았다. 6월 1일 아홉 살 준호는 여행용 가방에서 숨졌다.
사회 안전망이 정인이와 준호를 지키지 못했다. 정인이와 준호, 모두 아동보호 시스템에 문제가 감지됐지만 골든타임을 놓쳤다. 몇 겹으로 만든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오히려 시스템 안에서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까지 보였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출동한 경찰이나 아보전 담당자가 현장을 파악할 전문성이나 평가도구가 부실하다"며 "전문가 의견이 현장에 반영될 수 있고, 적극적으로 조치할 수 있는 권한과 촘촘한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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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 10건 중 8건 집에서 발생하지만, 분리조치 '12%'...정인이도 집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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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9년 아동학대 사례로 접수된 사건은 3만45건으로 전년보다 22.2%나 늘었다. 2015년과 비교 하면 4년 사이 2.6배나 아동학대 사례가 급증했다.
아동학대의 75.6%는 부모(계부모, 양부모 포함)로 인해 발생한다. 발생 장소는 ‘가정 내’가 79.5%에 달한다. 집에서 부모에게 학대당하는 사례가 2019년 한 해에만 2만3000여건에 달했다는 의미다.
하지만 학대 아동이 가정에서 분리되는 사례는 12.2%에 불과하다. 대부분 아동(83.9%)은 원래 가정에서 계속 생활하며 3.3%는 임시 분리 조치 됐다가 가정으로 복귀한다. 국내 아동보호 시스템이 분리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인이' 사건도 양부모와 정인이를 분리할 기회가 3번이나 있었다. 그러나 즉각적인 분리 조치는 이뤄지지 않았다. 1, 2차 조사에서 아보전은 즉각 조치가 필요없는 낮은 위험도 평가를 줬다.
3차 신고에서는 분리 조치를 검토했으나 양부모가 격한 반응을 보이자 방향을 틀었다. 경찰과 아보전은 현장 회의를 통해 아보전이 다른 병원에 데려가 진료를 받고, 향후 관리하기로 했다. 아보전은 정인이의 양부와 소아과에 갔고, 해당 소아과는 ‘아동학대로 보기 어렵다’는 의학적 소견을 밝혔다.
정인이가 사망하고, 부실 수사가 문제가 되자 서울경찰청 점검단을 꾸려 사건을 다시 살펴봤다. 점검단은 피해아동 분리에 소극적으로 판단했고, 아보전과 협업에 미흡한 점이 있었다고 결론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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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학대율 11.4%, 가정에서 또 매 맞는 아이들..."원가정 건강한지 살펴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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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이와 준호 사건은 아동학대 시스템이 작동했음에도 결국 아이가 죽음에 이르렀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즉각 분리 조치되지 않고, 원가정에서 그대로 지내다가 재학대로 사망했다.
아동을 재학대 사례는 2019년 기준 3431건으로 재학대율은 11.4%에 이른다. 재학대하는 10명 중 9명은 부모다. 제대로 된 확인없이 가정으로 돌려보내 매 맞는 아이를 또 만드는 셈이다.
일부에서는 맹목적인 ‘원가정 보호원칙’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현행법에서 원가정 보호원칙은 ‘아동을 가정에서 분리해 보호할 경우 신속히 가정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지난해 국회에서는 적극적인 아동 분리를 위해 원가정 보호 원칙을 수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현행법상 경찰이 현장에서 아동을 분리할 수 있는 규정은 응급조치(72시간)뿐으로 학대 현장이 아니고, 급박하지 않으면 사실상 분리를 할 수 없다는 게 현장의 목소리다.
정부는 '1년 2번에 신고 시 아동을 즉각 분리'할 수 있는 법안을 만들었고, 오는 3월 시행할 예정이다. 보통 법안은 공포 후 6개월 뒤 시행이지만 ‘즉각 분리’ 부분은 시급성을 감안해 3개월 뒤 시행할 수 있게 해달라고 국회에 요청했다.
정익중 이화여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원가정이니까 무조건 보호해야 한다’ 이런 생각이 잘못된 것이지 원칙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며 "무조건 분리보다는 원가정이 건강한지 확인하는 절차를 강화하고, 부모들의 교육을 강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남이 기자 kimnami@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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