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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 통합. 전직 대통령 사면을 추진하는 명분이다. 정적을 포용해 분열을 끝내겠다는 것이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최근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 카드'를 꺼내며 이 같은 이유를 내세웠다.
하지만 막상 정치권은 사면 화두를 놓고 새해 벽두부터 갈라졌다. 민주당 내 친문 성향 의원들은 강력히 반발했다. 이 대표는 결국 승부수를 던진 지 이틀 만에 "당사자들의 반성이 중요하다"며 한발 물러섰다. 그러자 이번엔 국민의힘 의원들이 "무책임함에 열불이 난다"고 공세를 폈다.
4월 재보궐선거와 내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사면 이슈는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다. 통합을 위한 사면이 오히려 분열을 부르는 이슈가 된 것일까.
"국민 통합 이뤄야 한다는 충정"
사면이 국민 통합을 위한 카드로 여겨지는 건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영향이 크다. DJ는 1997년 12월 당선인 신분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YS)을 찾아가 구속돼 있던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을 건의했다. DJ는 당시 "갈등의 시대를 마감하고 국민 통합을 위한 밑거름이 되겠다"고 밝혔다. 피해자였던 DJ가 관용의 리더십을 보인 셈이다.
DJ의 사람이었던 이 대표 역시 지난 3일 사면에 대해 "코로나19 위기란 국난을 극복하는 게 급선무다. 급선무를 해결하는 데 국민의 모아진 힘이 필요하다"며 "국민 통합을 이뤄나가야 한다는 제 오랜 충정을 말한 것"이라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3일 국회 의원회관 자신의 사무실에서 비공개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이명박ㆍ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면과 관련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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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 당선 "전쟁 중 적장 쉽게 용서 안돼" 반발
김남국 의원[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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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문 성향 민주당 의원들은 즉각 반발했다. 김남국 의원은 "진심 어린 사과도 없는 사람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느냐"며 "과거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에 대한 사면에서 보듯, 반성 없는 사면은 통합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과 분열의 원인이 됐다"고 반대했다. 김용민 의원도 "친일과 독재 세력이 잠시 힘을 잃었다고 쉽게 용서하면 힘을 길러 다시 민주주의를 파괴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청래 의원 역시 "적폐 청산 작업을 할 때다. 지금도 정치·경제·검찰의 적폐와 대치 전선이 형성돼 있다"며 "전쟁 중엔 적장을 쉽게 용서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김종민 최고위원과 서울시장 후보인 우상호 의원 등도 공개적인 반대 의사를 밝혔다.
정의당도 유감을 나타냈다. 김종철 정의당 대표는 "전혀 옳지도 않고 불의하다"고 비판했다. 범여권이 분열하는 양상이었다. 이 대표는 지난 3일 한발 물러서 당원의 뜻과 당사자들의 반성이 중요하다고 사실상 전제조건을 달았다.
국민의힘에서 "사과 전제? 장난 말라"
국민의힘 내 친이·친박계 의원들은 이 대표의 후퇴에 공세를 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사과가 전제돼야 한다고 또 이상한 얘길 했다"며 "사면으로 장난쳐선 안된다. 이 대표가 그 정도로 말했으면 관철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재오 전 의원[사진=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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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이계 좌장으로 꼽히는 이재오 전 의원은 사면 조건으로 사과를 언급한 것에 대해 "시중 잡범들이나 하는 얘기"라며 "억울한 정치 보복으로 잡혀갔는데 내보내주려면 곱게 내보내지 무슨 소리냐"고 불쾌해했다.
원조 친박인 서병수 의원도 "사면을 흥정거리 삼아 지지율 반등의 지렛대로 삼아보겠다는 집권당 대표의 파렴치함, 대통령의 무책임함, 이 장단에 박자 맞춰 이름 올리기에 여념 없는 유명인사들의 행태를 지켜보니 열불이 난다"고 밝혔다.
보수 분열 노림수란 시각도
야권에선 민주당이 보수 분열을 노리고 사면 화두를 던진 것이란 해석도 나온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이 대표의 사면 제안 이후 사흘이 넘도록 어떤 공식 입장도 내지 않았다. 당내 반발에도 두 전직 대통령에 대한 사과를 강행하며 외연 확장을 모색했는데, 기다렸다는 듯 사면에 찬성하면 중도층 표심을 잃을 수 있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지도부의 신중한 태도에 친이·친박계는 불만을 토로했다. 이재오 전 의원은 지난 1일 SNS에 "여당 대표가 사면을 건의하겠다고 하는데, 야당 대표는 어디서 뭘 하는지. 사과할 때는 빠른데"라며 "참 기가 막힌다. 이대로는 안되겠다"고 적었다.
한 재선 의원은 "민주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사면되면 강성 보수와 중도를 향해 가려는 보수 사이의 분열이 일어날 것이라고 본 것 같다"며 "야권을 분열시키고 여권이 중도층으로 지형을 넓히려고 내세운 이슈인 셈"이라고 말했다.
다만 국민의힘 다수 의원들은 사면 자체엔 찬성하는 입장이다. 한 3선 의원은 "사면이 보수 우파의 균열을 부를 것이란 의견은 근거가 희박하다"고 말했다.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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