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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조실록이 지라시? 너무 튀다 뒤탈난 ‘철인왕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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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청률 12%, 상승세에도 속앓이

신정왕후를 미신 중독자로 묘사

철종에게 칼 겨누는 의금부 등장

역사 왜곡 논란, 종친회도 반발

일부선 “코믹 팩션에 지나친 잣대”

중앙일보

tvN 주말드라마 '철인왕후'. 철종, 철인왕후 등 실존 인물을 실제와 다르게 묘사해 역사왜곡이 일고 있다. [사진 CJ E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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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N 주말드라마 ‘철인왕후’는 ‘역사 왜곡’ 꼬리표로 속앓이 중이다. 8.0%로 출발한 시청률이 8회 12.3%(닐슨코리아 조사결과)까지 상승했지만 웃지 못하는 이유다.

‘철인왕후’는 ‘허세남 셰프의 영혼이 시공간을 뛰어넘어 조선 시대 왕후에게 깃든다’는 설정으로 제작한 만큼 실제 역사와는 다르게 전개될 것이란 예상은 가능했다. 하지만 극 초반 철인왕후(신혜선)가 『조선왕조실록』을 ‘지라시’라고 표현하고, 신정왕후가 미신에 빠진 인물로 등장하면서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이 일었다.

이에 제작진은 급히 극에서 중요한 축을 이루는 안동김씨와 풍양조씨 집안을 각각 안송김씨, 풍안조씨 등으로 수정하며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2일 방송에서 왕의 직속 기관인 의금부가 철종에게 칼을 겨누는 장면이 나오자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선 ‘조선의 권력 기구에 대한 이해나 고증이 부족하다’라거나 ‘몰입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한 방송 관계자는 “사극이 어려운 점은 재밌는 대본이나 탄탄한 연기력만으로 평가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라며 “‘철인왕후’가 이런 점을 다소 간과한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일각에선 코믹 팩션인 ‘철인왕후’에 지나치게 진지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온다. 사극은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픽션인 만큼 작가의 재해석을 일정 정도는 인정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실제 역사에 허구의 이야기를 집어넣는 사극은 언제나 흥미와 역사 왜곡 사이에서 줄타기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철인왕후’는 어디서 매듭이 꼬인 것일까. ‘철인왕후’와 역대 흥행 사극과의 비교를 통해 알아봤다.

①실제 흐름을 거스르지 말 것=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실제 역사 인물과 배경을 가져다 쓴다면 역사기록의 흐름을 바꿔선 안 된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선 건국 과정을 다룬 ‘육룡이 나르샤(SBS)’를 예로 들었다.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던 ‘육룡이 나르샤’는 검사 땅새, 고려의 권력자 이인겸·길태미를 비롯해 비밀조직 ‘무명’까지 가상의 인물과 조직을 대거 등장시켰지만 역사 왜곡 논란은 휘말리지 않았다.

정 평론가는 “‘육룡이 나르샤’는 비록 허구 인물이 등장하지만, 이성계나 정도전의 캐릭터는 사서 기록 그대로이며, 각종 권력기구의 역할이나 조선 건국 과정에 대한 고증도 꼼꼼하게 했다”며 “그 기초 위에 가상의 인물들을 등장시켰기에 ‘기록되지 않은 주변부 인물들도 역사의 변동에 기여한다’는 작품 메시지가 설득력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②완벽하게 창작할 것=아예 반대의 선택지를 골랐어야 한다는 조언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드라마 작가는 “‘철인왕후’는 코믹 판타지 사극인 만큼 철종 시대라는 실제 배경보다는 가상의 배경을 썼더라면 논란도 피하고 재미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그는 ‘해를 품은 달(MBC)’을 예로 들었다. 최고 시청률 42.2%를 기록했던 ‘해를 품은 달’은 조선 시대 가상의 왕 이훤과 무녀 월의 사랑을 다룬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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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 [사진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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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조선 시대의 복식과 예법, 궁중 암투 등을 가져다 쓰면서도 역사에 얽매이지 않고 왕과 무녀의 로맨스를 풀어나갔다”며 “‘철인왕후’도 대한민국 남자의 영혼이 조선 왕후에게 들어간다는 판타지 설정을 하면서 굳이 철종과 철인왕후, 신정왕후 같은 실존 인물을 가져다 쓰면서 스스로의 확장성을 제한했다”고 말했다. 고려말 몽골 간섭기를 다룬 ‘기황후(MBC)’도 방영 전 패륜을 일삼은 충혜왕이 용기와 결단력을 갖춘 왕으로 나온다는 지적이 일자 가상의 인물 왕유로 바꿨다. 정덕현 평론가는 “작품이 하려는 이야기가 정통, 허구를 살짝 얹은 퓨전, 완전한 허구 중 어느 형식이 어울리는지 잘 선택했어야 했는데 ‘철인왕후’는 애매한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③‘선’을 넘지 말 것=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철인왕후’는 코믹 판타지라는 장르인 만큼 심각한 역사 왜곡을 했다고 보기는 어렵다”면서도 “다만 대중이 민감해하는 코드를 건드린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의 ‘동북공정’ 이후 한국에선 대중문화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에 매우 민감해졌다”며 “웃음 소재로 한국이 자랑하는 문화유산인 조선왕조실록을 ‘지라시’로 표현한 것은 신중하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또한 비교적 기록이 명확히 남아있는 근래의 인물과 사건을 마음대로 비틀어버린 것도 논란을 만든 요인”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선덕여왕(MBC)’처럼 먼 과거를 다룬 사극의 경우엔 김춘추가 호색꾼처럼 묘사되는 등 인물에 대한 재해석이 보다 관대하게 수용되기도 했다. 반면 조선 후기나 구한말의 경우는 재해석이나 비틀기가 여전히 예민한 영역이라는 것이다.

한편 ‘철인왕후’에서 미신에 집착해 음모를 꾸미는 캐릭터로 묘사된 신정왕후의 집안 풍양조씨 종친회에선 “실존 인물에 대한 모욕인 만큼 큰 유감이다.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밝힌 상태다. 또 ‘철인왕후’의 제작사는 “2화에서 언급된 조선왕조실록 관련 대사는 해당 표현이 부적절했음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다시보기 서비스에서는 문제 된 장면을 삭제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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