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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은 코로나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다 [책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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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경향신문

우한일기
팡팡 지음·조유리 옮김
문학동네 | 444쪽 | 1만6500원

“도시는 폐쇄되었으며, 우한의 시민들은 곳곳에서 버림받았다. 그리고 나 역시 이 도시에 갇혀버렸다.”(1월25일, 봉쇄 3일차)

2020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코로나19의 비극이 처음 시작된 곳은 중국 우한이었다. 한때 이 신종 바이러스의 이름이 ‘우한 폐렴’으로 불리며 전 세계가 거리를 뒀던 곳, 자국민을 실어나르기 위한 각국 전세기가 부지런히 오가며 결국 76일간 완전히 봉쇄되어버린 인구 1000만명의 대도시. <우한일기>는 그 봉쇄된 도시 한가운데서 한 작가가 목격한 참상을 써내려간 60일간의 생존 기록이다.

중국 최고 권위의 루쉰문학상을 수상한 소설가 팡팡(65)은 코로나19로 도시가 봉쇄된 사흘째부터 멈춰버린 도시의 풍경과 자신의 일상을 중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웨이보’에 기록하기 시작한다. 유년 시절부터 노년에 이르기까지 이 도시에서 60년을 살아온 작가는 이 신종 전염병의 돌연한 창궐과 확산, 이를 은폐하려는 권력층과 그로 인해 촉발된 재앙과 같은 비극을 낱낱이 써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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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31일 코로나19로 봉쇄된 중국 후베이성 우한의 한 공동묘지 앞에서 마스크를 쓴 남성이 영정을 들고 서 있다(위 사진). 지난해 2월6일 중국 의료진이 우한 코로나19 격리병동에 입원한 환자들의 상태를 살피고 있다(가운데). 지난해 2월7일 우한중앙병원 앞에 코로나19의 위험성을 폭로했다가 당국의 탄압을 받고 결국 이 병으로 숨진 의사 리원량을 애도하는 꽃다발이 놓여 있다. 우한 | AFP·로이터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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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세계를 혼란에 빠뜨린 코로나 비극이 처음 시작된 곳
76일간 봉쇄된 인구 1000만명 도시, 작가가 목격한 생존 기록
은폐·무능 속 촉발된 재앙·비극…책임과 기억을 끝까지 묻다

중국 당국의 은폐와 무능력을 고발하며 우한의 실상을 밝힌 그의 일기를 두고 중국 누리꾼들은 ‘살아 있는 중국의 양심’이라며 환호했지만, 당국의 검열로 팡팡의 웨이보는 차단되고 글은 계속해서 삭제된다. 중국의 안 좋은 모습을 알렸다는 이유로 일부에서 ‘매국노’라는 거센 비판에 시달리고 이후 고발당하기도 했다. 그러나 중국 누리꾼들은 삭제된 그의 일기를 댓글로 이어 올리는 댓글 릴레이를 펼쳤고, 그의 일기는 곧 해외 언론에도 보도되기 시작됐다. <우한일기>는 한국을 비롯해 세계 15개국에 판권이 팔렸지만 정작 중국에서는 출판되지 못했다.

“‘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는다.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人不傳人 可控可防).’ 이 여덟 글자가 도시를 피와 눈물로 적셨다.” 2019년 12월 말부터 우한 화난수산시장에서 사스(SARS)와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의문의 폐렴 환자들이 대거 발생했다. 그러나 이 바이러스의 사람 간 전염, 이로 인한 의료진 사망이 알려진 것은 중난산 원사의 폭로가 나온 2020년 1월20일의 일이었다. 중국 정부가 은폐에 급급할 때 이 전염병의 위험성을 세상에 알린 의사 리원량은 ‘괴담 유포’ 혐의로 당국에 끌려가 반성문을 쓰는 등 탄압을 받았다. 중국 당국은 코로나19 확산을 통제하는 대신 위험성을 알리려는 사람들을 통제했다. 결국 초기 20여일간 바이러스는 걷잡을 수 없이 퍼져나갔고, 입원을 기다리다 숨지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부모가 확진자로 격리되자 집에 혼자 남은 뇌성마비 아이가 굶어죽고, 매일 수백구의 시신이 장례조차 없이 비닐에 싸인 채 포개져 화물트럭에 실려나갔다. 팡팡은 이런 도시의 참상을 기록하며 무엇이 사태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집요하게 추궁한다. “사람들이 진실을 말하지 못하게 하고 미디어가 진상을 보도하지 못하도록 한 결과를 우리 모두 하나씩 맛보고 있다. 우한이 가장 앞서서 크게 한 입을 베어 물었을 뿐이다.”

그러나 이 모든 비극 속에서도 우한 사람들은 고립 속 하루하루를 버텨나간다. 거리 통행이 제한되자 최소 인원이 움직여 생필품을 공동 구매해 나누고, 서로의 생존을 확인하고 안부를 챙긴다. 감염 공포로 텅 비어버린 거리에서 환경미화원들은 묵묵히 바닥을 쓸고, 작은 가게의 상인들은 “우리가 여기서 버티고 있어야 당신들도 버틸 수 있잖아요”라며 가게 문을 연다. 작가는 그 모습에서 용기를 얻고 온갖 비난에도 글쓰기를 이어나간다. 코로나19의 위험성을 처음 알린 리원량이 결국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사망하자 우한 시민들은 손전등과 휴대전화를 이용해 하늘에 빛을 쏘며 그를 추모한다. “무겁게 가라앉은 어두운 밤하늘에 리원량은 바로 이런 한줄기 빛이었다. (…) 우한 사람들에게 리원량은 자신과 같다. 우리들 중 한 사람이고, 집 안에 갇혀 있는 바로 자기 자신이다.”

저자가 60번째 글을 마친 날 중국 정부는 우한 봉쇄를 해제한다고 선포한다. 그러나 저자는 이 사태의 책임을 끝까지 묻는 일, 기억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것을 포기하는 것은 우한 사람들이 재난뿐 아니라 “망각의 치욕”까지 짊어지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아울러 코로나19 창궐 초기 중국 정부의 안이한 대응과 중국의 방역 경험을 불신하고 경멸한 서구권 국가의 오만이 인류 전체에 막대한 손실을 불렀다고 꼬집는다.

작가의 ‘봉쇄 일기’는 마침표를 찍었지만, 이 전염병과의 전쟁은 해가 바뀌어도 계속되고 있다. 작가는 “적은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다. 우리들 역시 스스로의 적 혹은 공범자”라고 힘주어 말한다. “사람들은 지금에서야 절실하게 깨달았다고 말한다. 매일 말로만 ‘대단하다, 우리나라’라고 떠들어대봤자 아무 의미 없다는 것을. (…) 나아가 상식이 부족하고 객관성과 정확성이 결여된 사회는 말로만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사람을, 심지어 수많은 사람을 죽인다는 사실 말이다. 고난은 언제나 우리 뒤에 있다. 우리가 경계하지 않으면, 그것은 다시 쫓아와 우리를 고통스럽게 잠에서 깨울 것이다.”

선명수 기자 sm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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