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장기화로 재택근무 확산
직장인 절반, 재택근무 스트레스 호소
일각에선 '화상회의 시 성희롱'까지 겪어
한 시민이 휴대폰을 확인하고 있다. 사진은 기사 중 특정 표현과 무관. [이미지출처=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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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경제 허미담 기자] # 올해 상반기 유통업계에 입사한 직장인 김 모(28)씨는 최근 직장 상사의 카카오톡(카톡) 업무 지시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 김씨는 "재택근무로 전환하면서 직장 상사의 물음에 바로바로 답하지 않으면 상사가 '다른 일 하고 있었냐'고 의심부터 한다"면서 "상사가 언제 나를 부를지 몰라 화장실 갈 때도 카톡을 확인한다"고 하소연했다. 또 김씨는 "상사의 과도한 업무 지시 때문에 점심에 밥도 챙겨 먹지 못한다"고 토로했다. 김씨는 현재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하면서 재택근무를 시행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직장인들은 재택근무로 인해 출·퇴근 과정에서 겪어야 할 스트레스와 여럿이서 모여 먹는 점심이 '혼밥'(혼자 밥을 먹는 상황)으로 바뀌면서 장점도 많다고 입을 모은다.
다만 온라인 근무 환경이다보니 일부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시도 때도 없는 상사의 온라인 업무 지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점심을 먹다가도 카톡 지시에 답을 해야 하고, 화장실에 가서도 상사 카톡에 답변을 해야 한다. 이렇다 보니 직장인들은 "차라리 출근해서 일을 하는 게 좋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비대면 근무 환경으로 인해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토로다.
전문가는 온라인 근무 환경은 상대방의 감정 등을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 일방적인 업무 지시로 이어져 사실상 상사의 갑질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재택근무로 인해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직장인은 적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직장인 530명을 상대로 '온라인 갑질 경험'을 조사한 결과, 재택근무 경험자 중 47.7%가 "재택근무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업무시간 외 업무지시가 늘어남(19.8%)'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세부 내용을 보면 업무 시간 등 출·퇴근의 경계가 모호했다. ▲정규 업무시간이 지켜지지 않음(17.2%) ▲업무보고(또는 업무지시)가 어려움(27.1%) ▲업무효율 저하(16.8%) 등의 이유가 뒤를 이었다.
직장인들의 불만 내용을 종합하면 상사들은 부서 직원들이 실질적으로 근무를 하는지 등에 대해 제대로 파악할 수 없어, 끊임 없이 업무 지시를 내려 이로 인해 업무 효율성이 저하되는 것은 물론 일종의 갑질로 받아들이는 악순환이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직장인들은 아예 퇴근 개념이 사라진 것 같다고 토로했다. 회사원 구 모(30)씨는 "퇴근 후 직장 상사에게 '간단한 업무니까 처리해달라'고 업무 지시가 올 때가 종종 있다"면서 "그럴 때마다 억울하긴 하지만 코로나 상황에서 일자리 구하기도 힘든데, 괜히 상사에게 대들었다가 보복당할까 봐 군말 없이 처리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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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각에서는 주거지와 근무지 간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일과 사생활의 경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격주 재택근무를 하는 직장인 최 모(25)씨는 "재택근무를 하면서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고 편한 환경에서 일할 수 있게 돼서 좋다. 하지만 직장 상사가 무언가 물어보면 빨리빨리 대답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겼다"며 "빨리 대답하지 않으면 내가 일을 안 하는 거로 오해할까 봐 두렵다"고 토로했다.
이어 "점심시간이나 퇴근 후 휴게시간에도 상사의 카톡이 언제 올지 몰라 항상 긴장 상태"라며 "재택근무를 하고 나서 오히려 업무 강도가 더 세진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이렇다 보니 직장인들은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했다. '카톡 금지법'이란 업무 시간 외에 업무지시를 금지하는 것을 말한다.
잡코리아가 직장인 717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직장인 중 85.5%는 퇴근 후 메신저로 업무 지시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상사(68.4%), 동기 등 동료(17.1%), 협력사 및 고객사(12.2%)에 업무 지시를 받은 것으로 조사됐다.
또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이 필요한지 묻는 질문에 직장인의 87.7%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팀장 및 관리자 직급 직장인(90.8%)과 팀원급 직장인(87.1%) 또한 퇴근 후 카톡 금지법이 필요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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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업계에서 일하는 직장인 윤 모(27)씨는 "재택근무를 시행한 후 성과가 낮아졌다고 지적을 많이 한다. 그러다 보니 압박감에 못 이겨 주말에도 집에서 일할 수밖에 없다"면서 "또 결과물이 좋지 않으면 인격적 모독까지 서슴지 않아 스트레스"라고 말했다.
이어 "차라리 얼굴 보고 지적당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면서 "메신저로 대화하니까 이 사람의 기분이 어떤지도 모르겠고, 장난인지 진담인지도 잘 구분하지 못하겠다. 직장 스트레스 때문에 밤에 잠도 잘 못 잔다. 급한 일이 있으면 차라리 전화로 하는 게 더 나을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특히 일부 직장인은 화상회의나 온라인 채팅 등을 통해 성희롱당한 적이 있다고 토로했다. 앞서 살펴본 인크루트의 조사에서 응답자의 12.2%가 '화상회의 시 외모·복장·태도 지적'을, 2.0%가 '화상회의 시 성희롱'을 겪었다고 답했다.
전문가는 상대방의 표정을 볼 수 없는 비대면 상황에서는 상사 갑질이 일어날 개연성이 더 크다고 분석했다. 또한, 갑질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자신의 행위가 갑질인지를 제대로 모를 수도 있다고 지적해 재택근무 환경에서 비롯한 일부 상사들의 이른바 메신저 갑질은 지속할 것으로 보인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집단 내 괴롭힘이라는 것은 어떤 조직에서든 발생할 수 있다"면서 "재택근무가 늘다 보니 당연히 (그 괴롭힘은) 온라인상으로 넘어가게 된다"고 분석했다. 이어 "온라인상에서는 피해자의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하기 때문에 폭언이나 괴롭힘 등 갑질 행동에 대한 책임감도 줄어들게 되고 공격성, 폭력성의 수위가 더 높아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허미담 기자 damdam@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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