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래드퍼드는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가 독일군 7A 포로수용소로 끌려갔다. 그리고 거기서 목격한 일을 소재로 논문 ‘포로수용소의 경제적 조직’을 썼다.
노동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거래와 가치 창출이 아주 활발하게 일어나는 시장이 저절로 생겨나 포로들의 후생을 증진한 것이다.
일부 병사들이 전문 트레이더가 돼 여러 나라 병사들이 선호와 유인에 따라 물품을 거래하면서 세계 경제의 축소판이 만들어졌다.
“잘 작동하는 시장에서는 각 개인이 단지 자기 잇속만을 위해 행동하더라도 결국에는 공익을 촉진한다”는 애덤 스미스의 ‘보이지 않는 손’, 그리고 “모든 사람의 후생이 향상되는” 빌프레트 파레토의 ‘파레토 효율’이 적용된 사례였다.
중세 시대 상파뉴 지방에서 열린 박람회에서 상파뉴 백작은 ‘시장 조성자’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 잘 알고 수행했다. 올바른 부류의 시장 참여자들을 불러들이고 잘못된 부류를 몰아내고 규칙을 수립하고 위반자들을 처벌했다.
그런 역할의 대가로 그는 각 거래의 작은 일부를 챙김으로써 어머어마한 부를 일궜다. 시장 조사자의 역할이 특별히 중요한 시장을 지금은 ‘플랫폼’이라 부른다.
최근 50년간 경제학자들은 현실을 측정하고 예측하는 일을 넘어 시장을 설계하는 일로 역할을 넓히고 있다. 우리가 에어비앤비에서 방을 예약하고 넷플릭스로 영화를 보는 모든 경제적 행위가 ‘기술 발전’ 때문이라고 말하지만, 저자는 위대한 경제학자들의 창조적 ‘이론’이 더 근본적인 요인이라고 설명한다.
2차 세계 대전 이후부터 2000년대 초반까지 발표된 가장 중요한 경제학 논문들에 담긴 획기적 착상들이 현실 묘사를 넘어 현실에 적극 개입하고 시장을 설계해 실험하고 우리 삶과 세상을 근본적으로 바꿔 놓았다고 저자들은 ‘입증’한다.
책은 시장이 어떻게 탄생하고 설계되며 효율적인 거래방식을 가능하게 하는 건 무엇인지에 대한 모든 관계를 짚어본다.
에컬로프의 ‘개살구 이론’은 ‘정보 비대칭’ 문제를 논증한다. 에컬로프에 따르면 구매자와 판매자 간 정보 격차가 시장을 붕괴로 내몬다. 중고차 시장에서 구매자는 판매자보다 아는 것이 적어 참살구(괜찮은 차)와 개살구(부실한 차)를 분간할 수 없어 결국 모든 차에 개살구 가격이 매겨져 시장이 효율을 달성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 시장은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에컬로프가 놓은 토대 위에 구축된 마이클 스펜스의 ‘신호 보내기’ 모형은 시장을 살리는 방법을 설명한다.
그 덕분에 우리는 폭력 조직들이 왜 조직원들에게 영구적인 표시를 남기려고 고집하는지, 골드만삭스와 매킨지는 왜 하버드 철학 전공자를 채용하는지 이해할 수 있다. 판매자가 해결해야 할 숙제는 자신의 신호가 믿을 만함을 분명히 전달하는 것이다.
자유시장 옹호자들의 주장처럼 시장이 모든 일에 유익할까. 19세기 초에 부상한 생명보험 산업, 시장 설계자 앨빈 로스가 논문 ‘신장 교환’으로 신장 이식 세계를 혁명한 일 등은 효과적인 수단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독성 폐기물을 가난한 나라에 수출하는 일 같은 ‘시장 마찰’의 관점에선 고민해야 할 부분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저자는 “시장을 바라보는 상충하는 두 가지 세계관이 존재하는데, 시장혐오주의와 시장근본주의다 그것”이라며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극단적 이분법이 아니라, ‘시장에 사용당할 것인가, 시장을 사용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일이다”고 강조한다.
◇시장의 속성=레이 피스먼, 티머시 설리번 지음. 김홍식 옮김. 부키 펴냄. 352쪽/2만원.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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