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업권 놓고 프랑스와 막판까지 신경전
FT "존슨-마크롱 통화 후 분위기 반전"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가 24일(현지시간) 유럽연합(EU)과 브렉시트 이후 미래관계에 대한 합의에 도달했다고 발표하며 양손 엄지를 들어 올렸다.[신화통신=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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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과 유럽연합(EU)이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 탈퇴) 조건에 합의했다. 결별을 일주일 앞둔 24일(현지시간) 무역조건 등을 포함한 미래관계 협상이 타결된 것이다. 2016년 영국이 국민투표를 통해 브렉시트를 결정한 지 4년만, 1973년 유럽경제공동체(EEC)에 가입한 이후 47년 만에 '합의 이혼'을 한 것이다.
영국 정부는 “영국은 다시 재정과 국경, 법, 통상, 수역의 통제권을 회복했다”며 EU 탈퇴의 의미를 부여했다. 이어 “EU와 무관세와 무쿼터에 기반한 협정에 서명했고 이는 양자 간에 맺은 가장 큰 협정”이라고 밝혔다.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도 소셜미디어에 “우리는 우리의 법과 운명에 대한 통제권을 되찾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또 “유럽 전체를 위한 좋은 거래”라면서 “우리는 유럽의 친구이자 동맹, 지지자, 최고의 시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 집행위원장은 “공정하고 균형 잡힌 합의를 이뤘다”면서 “길고 구불구불한 길이었지만, 우리는 그 끝에서 좋은 합의를 했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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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관세·무쿼터 교역 유지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EU집행위원장이 24일(현지시간) 브뤼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영국과의 브렉시트 협상 타결 소식을 알리고 있다.[신화통신=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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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은 수출입 상품에 대한 세금을 부과하지 않고 거래량에 제한을 두지 않는, 무관세 무쿼터에 기반한 자유무역협정에 합의했다. 합의 없는 탈퇴, 이른바 ‘노 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 우려됐던 생필품과 의약품 가격 급등 등은 막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영국 BBC 방송은 “2019년 기준 양자 간 교역 규모는 6680억 파운드(약 1003조원)에 달한다”며 “합의에 이르지 않았으면 비용이 급격히 증가했을 것”이라고 전했다.
자유무역협정은 교역뿐 아니라 투자, 경쟁, 국가보조금, 조세 투명성, 해상, 도로 교통, 에너지, 지속가능성, 어업, 데이터 보호 등을 아우른다. 다만 이번 합의에서 금융 부문의 구체적 내용이나 외교 정책, 대외 안보, 방위 협력은 다루지 않았다.
협의가 오랜 시간 지속해 온 만큼 대부분의 분야에서 양자 간의 합의는 어느 정도 진전돼 있었다. 마지막까지 진통을 겪은 분야는 어업권이었다. 존슨 총리가 협상 타결 소식을 알리는 기자회견에 물고기 무늬의 넥타이를 매고 나타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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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업권 놓고 프랑스와 막판까지 신경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지난 17일 열린 화상 회의 도중 엄지를 들어보이고 있다.[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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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은 영국 배타적경계수역(EEZ) 내에서 조업하는 EU 회원국 어선의 쿼터를 향후 5년 6개월 동안 기존 대비 25% 감축하기로 합의했다. 당초 영국은 80% 감축을 원했고 EU는 영국 어선과 동등한 대우를 요구했다. 하지만 파국의 위기 앞에서 서로 한발씩 물러난 셈이다.
양측이 어업권을 놓고 끝까지 신경전을 벌인 건 경제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 상징성 때문이었다. 영국 내 브렉시트 지지자들은 EEZ 통제를 국경에 대한 주권 확보의 상징으로 여겼다. 보리스 존슨 총리는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가 국민투표를 제안할 당시부터 브렉시트 지지자였다. 영국 정부는 ‘노 딜’ 브렉시트가 현실화할 경우에 대비해 자국 해역에 초계함 4척을 대기시키는 등 물리력 행사 가능성까지 시사했다.
막판까지 영국과 대치한 건 프랑스다. 전통적인 애증 관계인 데다 프랑스 북부지방 어업 종사자들의 생계가 달려있어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강경한 태도를 취해왔기 때문이다. 실제 마크롱 대통령은 “나쁜 합의를 하느니 합의를 하지 않는 게 낫다”고 말해왔다. 영국과 EU 27개국의 협상이 아닌 영국과 프랑스의 협상이라는 말이 나온 건 이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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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위기 바꾼 존슨-마크롱 통화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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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측의 간극은 존슨 총리가 먼저 마크롱 대통령에게 전화를 건 21일을 기점으로 좁혀지기 시작했다. 변종 코로나19 확산에 세계 각국이 영국발 입국을 차단하는 등 고립이 심화하면서 분위기 전환을 위한 협상 타결이 절실했기 때문이다. 마크롱 대통령 역시 전례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영국을 외면하기는 부담스런 상황이었다.
존슨 총리는 합의에 노력하겠다는 뜻을 밝히며 한발짝 물러섰고, 마크롱 대통령도 영국으로의 화물 수송 재개를 돕겠다고 화답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 통화 이후 분위기가 바뀌어 어업 협상에 진전이 있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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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통 끝 47년만의 '합의 이혼'
브렉시트는 처음 영국 데이비드 캐머런 전 총리가 국민투표 제안으로 가시화했다. 국민이 'EU 잔류'를 택할 거라는 캐머런 총리의 예상과 달리 2016년 6월 투표 결과 탈퇴 52%, 잔류 48%로 브렉시트 진영이 승리했다. 이후 캐머런 총리는 사퇴하고 테리사 메이 총리가 취임해 EU와 브렉시트 협상을 벌였지만 합의를 이루지 못하고 물러났다.
이후 협상의 키를 잡은 존슨 현 총리가 올해 1월 말 브렉시트를 단행, 법적으로 EU를 떠났다. 다만 양측은 올해 말까지 유예기간을 두고 '결별 조건'이 담긴 미래 관계 협상을 벌여왔다.
이번 협상안은 영국 의회, EU 회원국과 유럽의회가 각각 승인하면 효력이 발생한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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