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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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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축 걱정 지운 놀라운 건축술…'비암사 극락보전' 보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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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전란으로 사찰 경제 위축…건립 규모 축소

측면 주 칸에 충량 마련해 팔작집으로 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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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시의 유일한 조선 사찰인 '비암사 극락보전(碑巖寺 極樂寶殿·세종시 유형문화재 제1호)'이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한 달간 각계 의견을 수렴하고 문화재위원회 심의를 거쳐 지정 여부를 확정한다고 24일 전했다.


전의면 다방리에 있는 '비암사 극락보전'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통상 조선 불전은 측면이 세 칸이다. 이보다 한 칸이 적은 건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영향으로 추정된다. 사찰이 경제적 어려움에 직면해 규모가 축소된 것이다. 이 불전은 예불공간도 협소하다. 안둘렛간을 감싸는 기둥을 뒤로 물리고 후불벽(後佛壁)을 세워 공간을 확보하는 정면 세 칸, 측면 세 칸의 방식이 그대로 적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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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적합한 조합에도 팔작집(네 귀에 모두 추녀를 달아 지은 집)으로 완성된 건 어칸 전면 기둥과 내부 고주 사이를 대들보로 가로지르고, 좌우 협칸에 충량을 각각 세 본씩 설치했기 때문이다. 충량은 한쪽은 대들보에 걸리고 반대쪽은 외곽기둥에 걸리는 대들보와 직각을 이루는 보다. 보통 건물에서는 한 본만 둔다. '비암사 극락보전'은 측면 주 칸이 긴 편이다. 충량을 보조로 설치해 추녀에 걸리는 하중을 감당하게 했다.


처마 끝의 무게를 받치기 위해 기둥머리에 짜 맞추는 공포는 내외 3출목으로 구성했다. 조선 중기에는 내부 출목(出目)이 외부보다 늘어나는 경향이 있었다. 측면 두 칸의 팔작집의 경우는 더 그랬다. 하지만 이 건축물은 내외 출목을 똑같이 짜 올렸다. 문화재청 측은 "고창 선운사 대웅전, 김천 직지사 대웅전 등에서 볼 수 있는 형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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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 상부와 지붕 사이에 층층이 쌓아 올려 공포를 꾸미는 부재인 첨차는 크기가 대·중·소인 것을 모두 사용했다. 첨차를 배열한 방식과 내외부의 살미 모양 등에서 조선 중기 다포(공포가 여러 개인 양식) 건축물의 특징이 잘 나타난다. 문화재청 측은 "건물 조성 시기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찾을 수 없었으나 17세기 중엽 지방 사찰 불전의 시대 특성과 지역색을 잘 간직하고 있다"고 했다.


이 건축물을 품은 비암사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통일신라 도선 국사가 창건했다고 전한다. 삼국시대 유물인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국보 제106호) 등이 출토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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