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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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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넘게 풍산홍씨가에 전래된 '기사계첩 및 함' 국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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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1

국보 제334호 '기사계첩 및 함' 중 기로사연도.(문화재청 제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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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뉴스1) 이기림 기자 = 문화재청(청장 정재숙)은 왕실 하사품이 완전하게 갖춰진 채 300년 넘게 풍산홍씨 후손가에 전래된 '기사계첩 및 함'을 국보로 지정했다고 22일 밝혔다.

국보 제334호 '기사계첩 및 함'은 1719년(숙종 45년) 59세가 된 숙종이 태조 이성계의 선례를 따라 기로소에 들어간 것을 기념해 제작한 계첩으로, 18세기 전반을 대표하는 궁중회화다.

행사는 1719년에 실시됐으나 계첩은 초상화를 그리는데 시간이 걸려 1720년(숙종 46년)에 완성됐다. '기사계첩'은 기로신들에 나눠줄 11첩과 기로소에 보관할 1첩을 포함해 총 12첩이 제작됐다. 현재까지 박물관과 개인 소장 5건 정도가 전하고 있다.

문화재청에서 2017년도부터 실시한 보물 가치 재평가 작업에 따라 국립중앙박물관 소장본의 기사계첩이 2019년 국보 제325호로 지정됐으며, 이번 건이 두 번째 국보 지정이다.

이번에 지정된 '기사계첩'은 기로신 중의 한 명인 좌참찬 임방(1640∼1724)이 쓴 계첩의 서문과 경희궁 경현당 사연 때 숙종이 지은 어제, 대제학 김유(1653∼1719)의 발문, 각 행사의 참여자 명단, 행사 장면을 그린 기록화, 기로신 11명의 명단과 이들의 초상화, 축시, 계첩을 제작한 실무자 명단으로 구성돼 현재까지 알려진 다른 '기사계첩'과 구성이 유사하다.

그러나 다른 사례에서는 볼 수 없는 '만퇴당장'(만퇴당 소장), '전가보장'(가문에 전해 소중히 간직함)이라는 글씨가 수록돼 이 계첩이 1719년 당시 행사에 참여한 기로신 중의 한 명이었던 홍만조(1645~1725)에게 하사돼 풍산홍씨 후손가에 대대로 전승돼 온 경위와 내력을 말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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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334호 '기사계첩 및 함' 화첩, 내함, 호갑, 외궤.(문화재청 제공)©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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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계첩은 300년이 넘은 오랜 세월에도 불구하고 훼손되지 않은 채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다. 그 이유는 내함, 호갑(싸개), 외궤로 이루어진 삼중의 보호장치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화첩을 먼저 내함에 넣고 호갑을 두른 후 외궤에 넣는 방식으로, 조선 왕실에서 민가에 내려준 물품의 차림새를 복원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이는 왕실 하사품으로서 일괄로 갖추어진 매우 희소한 사례일 뿐만 아니라 제작수준도 높아 화첩의 완전성을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숙종의 기로소 입소라는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고, 후에 고종이 기로소에 입소할 때 모범이 되었다는 점, 제작시기와 제작자가 분명하게 밝혀져 있어 학술적으로 중요하며, 기로신들의 친필 글씨와 더불어 그림이 높은 완성도와 화격을 갖추고 있어 현존하는 궁중회화를 대표할 만한 예술성도 갖췄다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

또한 계첩과 동시기에 만들어진 함(내함, 호갑, 외궤) 역시 당시 왕실공예품 제작 기술에 대해서도 귀중한 정보를 알려주므로 함께 국보로 함께 지정해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고 밝혔다.
lgirim@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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