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구기동의 오래된 빌라를 고쳐 사는 하재영 작가는 집의 가장 넓은 공간인 거실을 서재 겸 작업실로 쓴다. 저자는 글을 쓸 때 나는 이 집에서 내 자리를 가지고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저자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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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자신만의 방’을 확보하려는 각개전투는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아이들은 방에서 거실로 활동 반경을 넓히고, 재택을 하는 부모는 메뚜기처럼 이 방 저 방을 뛰어다니며 노트북을 열고 닫는다. 쉴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집안일을 감당하는 주부에게는 한 뼘의 공간조차 허용되지 않는, 이 북새통은 역설적으로 집 안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돌아보게 한다.
대구 북성로 양옥부터 서울 신림동, 금호동 등 재개발 지역의 원룸, 다가구주택, 구기동의 오래된 빌라에 이르기까지 자신이 살아온 집의 이야기를 묶은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라이프앤페이지 발행)’의 저자 하재영(41)씨는 ‘나만의 공간’을 찾는 과정에 숨겨져 있는 불편한 진실을 솔직 담백하게 들춰낸다.
작가의 첫 집은 대구 북성로의 상가건물 뒤 양옥이었다. 조부모와 삼촌까지 9명의 대가족이 북적이던 집은 어린 작가에게는 많은 가족들로부터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자란 행복한 집이었다. 하지만 모두에게 행복한 집은 아니었다. 고작 서른의, 맏며느리였던 작가의 엄마는 그곳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대가족의 식사를 차리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하고, 시부모의 병간호와 육아까지 해내야 하는 무급 가사노동의 현장이었다.
책 읽기를 좋아한 엄마가 책을 읽는 공간은 공용 공간인 주방 식탁, 거실 소파였다. 서재가 딸린 그 큰 집에서, 서재는 아빠의 방이었다는 저자의 고백은 그 집만의 일이 아니어서 눈물겹다. “자기만의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기만의 시간을 확보한다는 의미다. 반대로 자기만의 공간이 없다는 것은 자기만의 시간이 언제든 방해 받을 수 있다는 의미다. 엄마의 독서는 수시로 멈춰졌다.”
고향을 떠나 서울에서의 첫 독립 생활을 시작했지만 집이 없었다. 그가 살던 곳은 방이었다. 원룸, 하숙방, 룸메이트가 있는 다가구주택을 전전하며 그는 마음 놓고 울 권리조차 빼앗겼다. 서울 서남부 연쇄살인사건 등 험한 세상살이에 벌벌 떨 때조차 의지할 곳은 작은 자물쇠 하나에 불과했다. 집은 숨기고 싶은 가난과 현실도 자주 드러냈다. 명품 가방, 에곤 실레의 그림, 시가 적힌 종이, 소중한 책, 작은 화분 등은 재개발의 희망조차 사라진 쇠락한 동네의 풍경과 창문 밖으로 오가는 날 것의 소리들을 막아주기엔 역부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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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힘으로 마련한 월셋집에서 그는 집 꾸미기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리고 비로소 안온해졌다. “내가 지낼 공간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시간은 처음으로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 아등바등하는 순간이었다. 절박하게 애쓰지 않으면 나의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그는 현재 구기동의 한 오래된 빌라에 산다. 할아버지의 유품인 시계, 어릴 적 집에 걸려 있던 그림, 엄마가 혼수로 샀던 유리잔과 접시 등으로 꾸몄다. 집에서 가장 넓은 공간을 자신만의 서재로 쓴다. 그가 꿈꿔온 집이다. 돌아보면 간절히 돌아가고 싶은 집도 있고 다시는 돌아가고 싶지 않은 집도 있었지만 저자는 “내가 그곳에 살지 않았다면 지금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강지원 기자 styl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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