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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길의 가을귀]'진실 착각 효과'에 빠진 프로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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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 로 야구 전문기자 '인사이드 게임'

데이터 야구 시대에도 잘못된 지식 맹신·재생산 반복

메이저리그 잘못된 결정 원인 분석·해법 찾기

'진실 착각 효과' 야구뿐 아니라 현대 사회에도 교훈

아시아경제

[이미지출처=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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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야구에서 데이터는 기본 바탕이다. 잘못된 습관을 고치고 상대를 분석하는 지표로 사용된다. 세이버메트릭스, 스탯캐스트 등이 접목되면서 중요성은 더 커지고 있다. 승수, 평균자책점, 타율 같은 기본 스탯의 단점을 보완해 혼란과 오류를 최소화한다. 그동안 잘못 인용돼온 야구 속설까지 분석해 무분별한 집착에서 벗어나게 한다.


미국 메이저리그는 방대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스탯 혁명이 일어난 진원지다. 더는 직감이나 어림짐작이 의사 결정 과정을 지배하지 않는다. 지금도 구단들은 더 많은 데이터를 갈구한다.


키스 로는 토론토 블루제이스 단장의 특별 보좌관으로 근무하며 스탯 분석을 총괄하다 야구 전문기자가 됐다. 그는 첫 번째 저서 '스마트 베이스볼'에서 기존 스탯을 참고하되 맹신해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스탯의 발전과 앞으로 보여줄 진보는 야구를 몇 년 더 바꿔놓을 수 있다"고 예견했다. "재능을 발굴하는 스카우트나 실제 경기를 뛰는 선수,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선수를 뽑는 기자 등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형태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발전할 여지를 크게 본 건 여전히 모든 판단이 데이터에 기반해 합리적으로 이뤄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평범한 야구팬의 눈에도 어처구니없어 보이는 결정이 적잖게 벌어지곤 한다. 막대한 돈으로 자유 계약 선수(FA) 계약을 맺는가 하면, 승부를 가를 결정적인 장면에서 잘못된 선수를 기용한다. 근거 없는 야구 속설에 기대는 경우도 태반이다. 다음 타자의 보호 효과를 뜻하는 '라인업 프로텍션(lineup protection)'이 대표적인 예다.


다음 타순에 강한 타자가 배치되면 앞 타자가 득을 본다는 개념이다. 상대 투수가 위기상황에서 강타자와 만나지 않기 위해 앞 타자와 정면 승부함으로써 치기 좋은 공을 던질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올해 프로야구 최고 타자 멜 로하스 주니어 앞 타순에 배치된 조용호, 황재균 등이 치기 좋은 공을 더 자주 만났을 거라는 논리다. 반대로 강타자 뒤에 약한 타자가 배치되면 상대 투수는 강타자를 피해 갈 거라고 한다.


라인업 프로텍션은 25년 전부터 다양한 통계 연구와 숱한 반대 증거로 부정돼왔다. 그러나 야구계에서는 여전히 사실처럼 받아들인다. 야구 분석 웹사이트 베이스볼 프로스펙터스에서 2006년 발간한 야구 통계 분석 에세이 '베이스볼 비트윈 더 넘버스'에는 라인업 프로텍션이 허구임을 입증하는 글이 많이 실려 있다. 다수의 메이저리그 관계자는 그것을 읽고도 라인업 프로텍션 개념이 복음인 양 전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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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드 게임'은 로의 두 번째 저서다. 메이저리그에서 이뤄지는 중대한 결정 대다수가 지금도 직관적으로 벌어지고 있음을 지적한다. 인지심리학과 행동경제학 이론으로 잘못된 결정이 이뤄지는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저자는 라인업 프로텍션을 신봉하는 사례로 유명 감독과 선수들을 언급한다. 조 매든 LA 에인절스 감독은 2008~2014년 템파베이 레이스 감독으로 일하며 두 차례 아메리칸리그 올해의 감독에 선정됐다. 2015년에는 시카고 컵스 지휘봉을 잡고 내셔널리그 올해의 감독상을 받았다. 이듬해 컵스를 108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으로 이끌었다. 그는 수준급 타자 카일 슈와버의 타순을 5번에서 2번으로 옮기며 "더 나은 보호 효과를 부릴 자격이 있다"고 말했다.


은퇴 뒤 명예의 전당 입성이 예상되는 디트로이트 타이거즈의 간판스타 미겔 카브레라는 2019년 부진의 이유로 많은 나이(36세)와 성치 않은 몸 대신 빈약한 타순 보호를 꼽았다. "예전에는 프린스 필더가 내 다음에 쳤죠. 지금은 내 뒤 타순이 누구인지 아시죠? 엄청난 차이에요."


라인업 프로텍션은 국내 프로야구에서도 지배적인 통념으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많은 감독이 라인업을 바꾸며 '보호' 또는 '우산' 효과에 대해 언급한다. 몇몇 감독은 라인업을 구성하는 근거가 보호 효과에 대한 신념으로 추론되기도 한다. 왜 이런 근거 없는 신화가 존속하는 걸까. '인사이드 게임'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선수, 코치, 스카우트, 그밖에 그라운드 위에서든 밖에서든 프로야구계 서열의 맨 밑바닥부터 올라온 모든 사람들에게 대를 이어 교리처럼 주입돼온 격언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진실이라고 믿기 때문에 진실이 된다. 한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말하고, 또 그 두 사람이 다른 두 사람씩에게 말하다 보면 모두에게 전파된다. 야구계는 한 다리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들이고 다양성도 그리 크지 않은 획일화한 집단이기에 진실이 공개돼 있고 찾기가 쉬운 시대에도 거짓말이 반복 재생산된다."


허위라는 것이 밝혀지고 쓸모가 없어진 한참 뒤에도 그 거짓을 고집하는 현상이 바로 '진실 착각 효과'다. 야구에서는 그 대가가 크지 않을 수 있다. 타순을 잘못 짜거나 한 시즌 동안 점수를 몇 점 못 내는 정도일 게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구단들은 금융 투자자들처럼 아주 작은 전술적 이득이라도 추구해야 하는 조직이다. 한 시즌 중 5점만 더 얻어도 플레이오프 진출에 필요한 1승을 추가할 수 있다. 1승의 의미가 남다른 포스트시즌에서는 시리즈의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가 될 수도 있다. 거짓 정보와 소셜미디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이종길 기자 leemea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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