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공사가 발표한 ‘전기요금체계 개편안’의 핵심은 연료비 연동제(연료비 조정 요금제)와 기후환경요금 도입이다. 전기를 생산할 때 주된 연료로 쓰이는 석유ㆍ가스ㆍ석탄 가격 변동분을 3개월 단위로 전기요금에 반영하고, 탈원전ㆍ탈석탄과 신재생 에너지 확대,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비용도 따로 요금(기후환경요금)으로 부과하기로 했다.
시행 시기는 내년 1월부터다. 이날 산업부는 전기위원회를 열고 한전이 지난 16일 임시 이사회 열고 통과시킨 전기요금 개편안을 확정했다.
연료비 따른 전기요금 부과 방식.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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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편안 중 전기요금에 당장 큰 변화를 주는 건 연료비 연동제다. 기준 연료비(직전 1년 평균 가격)와 실적 연료비(직전 3개월 평균 가격)의 차이에 따라 전기요금이 달라진다. 내년 1월 전기요금을 기준으로 한다면 지난해 12월~올해 11월과 올 9~11월 가격 변동분에 따라 내년 1월 전기요금이 결정되는 식이다.
전기요금 개편 방식.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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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환경요금도 신설된다. 그동안은 신재생 등 관련 비용은 전기요금 중 전력량 요금에 뭉뚱그려져 정확히 얼마인지 드러나지 않았다. 이를 기후환경요금이란 새 항목을 만들어 소비자들이 알기 쉽게 고지하겠다는 것이다. 내년 1월 적용되는 기후환경 요금은 kWh당 총 5.3원으로 전체 전기요금의 4.9% 수준이다.
산업부 관계자는 “현행 전기요금체계는 유가 등 원가 변동분을 적시에 요금에 반영하지 못한 데다 2013년 이후 (요금) 조정 없이 운영돼 왔다"며 "기후변화와 관련된 비용도 명확하게 공개돼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어 “연료비 변동분이 주기적으로 전기요금에 반영됨에 따라 가격 신호 기능이 강화되며, 전기요금 조정에 대한 소비자의 예측 가능성을 제고해 합리적인 전기 소비를 유도할 것으로 기대한다”며 "기후환경 관련 비용을 분리 고지해 친환경 에너지 확대에 대한 소비자들의 자발적인 동참 여건을 조성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바뀌는 전기요금 고지서.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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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달부터 달라진 요금 체계에 따른 고지서가 나오지만 당장 요금이 오르지는 않을 전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저유가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서다. 산업부와 한전의 추산에 따르면 한 달 350kWh 전기를 쓰는 4인 가구 기준으로 내년 1월 전기요금은 5만5080원에서 5만4000원으로 1080원 낮아진다.
기후환경요금이 추가되긴 하지만 연료비 인하 효과가 반영됐기 때문이다. 정부는 지난해 석유류 가격 하락분을 고려하면 내년 상반기 총 1조원가량의 전기요금 인하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했다.
문제는 국제 유가가 오를 때다. 코로나19 백신 등장과 그에 따른 경기 회복 기대로 인해 내년 원유를 포함한 원자재 가격 상승이 예고되고 있어서다. 앞으로 국제 유가가 가파르게 상승하면 이전과 달리 전기요금에 상승분이 곧바로 반영되게 된다.
유가 변동분의 급격한 반영에 따른 충격을 완화하기 위한 안전 장치도 마련했다. 정부는 ▶직전 요금 대비 ㎾h당 최대 ±5원 범위에서 한 번에 3원까지만 변경할 수 있고 ▶㎾h당 1원 이내 변동 요인이 있다면 요금을 바꾸지 않으며 ▶단기간 유가가 급격히 상승하는 예외적 상황이 생기면 요금 조정을 유보하는 3가지 소비자 보호 장치를 만들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충격을 일부 완화하는 수준일 뿐 ‘유가 상승→전기요금 인상’ 흐름 자체는 바뀌지 않는다.
지난 7일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정부서울청사에서 관계부처 장관들과 함께 '2050 탄소중립 추진전략' 중 산업부의 정책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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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정부는 전기요금을 개편하면서 주택용 필수사용공제 할인 제도도 없애기로 했다. 월 전력 사용량이 200㎾h 이하인 가구에 월 4000원 전기요금을 깎아주는 제도다. 내년 7월부터 할인액을 4000원에서 2000원으로 50% 축소하고, 2022년 7월부턴 2000원 할인도 아예 없애기로 했다.
전력 사용량이 적은 1인 가구 등의 전기요금이 내년 7월부터 당장 2000원, 2022년부터는 4000원 오른다는 의미다. 저유가 상황이 이어져 가구당 1000원 안팎 연료비 조정분이 깎인다고 가정해도 내년에는 1000원, 2022년에는 3000원가량의 요금을 더 내야 하는 상황이 닥칠 수 있다. 다만 저소득 등 취약계층에 대해선 필수사용공제가 현행대로 유지된다.
정부와 한전은 저소득층 등 전기요금 복지 할인을 받는 가구에 고효율 가전제품 구매비 환급(20%) 혜택을 내년 3월부터 연말까지 주기로 했다. 하지만 매달 꾸준히 내야 하는 전기요금 부담이 올라가는 상황에서 제대로 된 완충 장치라고 보기엔 어려운 상황이다.
근본적 문제는 따로 있다. 기후환경요금이다. 기존 전기요금에서 전력량 요금(전력 사용량에 따라 달라지는 요금)에 모호하게 포함돼 있던 신재생에너지, 탈석탄,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비용 등을 별도 요금으로 독립시켰다. 물론 전기요금으로 합산돼 소비자가 부담한다는 점에서 달라질 게 없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가 선언한 ‘탄소 중립 2050’에 따라 탈원전ㆍ석탄,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에 가속이 붙게 되면 관련 비용은 점차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한전 관계자 역시 “현재까지 전망으로는 신재생에너지 의무 이행 비용,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 비용이 올라갈 것으로 예상된다”면서도 “이를 기후환경요금이 바로 반영할지 여부는 미정으로, 정부에서 검토 중”이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되면 기후환경요금 인상에 따른 전기요금 상승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세금이 아니지만 전기요금은 ‘전기세’라고 불릴 정도로 민감한 사안이다. 게다가 코로나19 3차 확산에 따른 경기 위축이 심한 상황에서 전기요금 ‘기습 개편’에 나선 것은 본격적인 국제 유가 상승기에 접어들기 전 전기요금 체계를 손질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 정부는 2011년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 시행까지 결정했다가 당시 유가 상승 등을 이유로 접었던 전력이 있다.
정부의 ‘기습 작전’에도 전기요금 인상 논란을 피하긴 어려워 보인다. 현 정부 들어 무리한 탈원전 ㆍ석탄 전환, 신재생에너지 확대 정책 추진으로 논란이 번지는 중 전기요금 개편까지 더해졌다. 탈원전 고지서라는 비판 여론을 피할 수 없다. 탈원전 등에 따른 비용 상승분까지 전기요금으로 가계ㆍ기업이 본격적으로 부담하게 될 상황이라서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에너지정책학과 교수는 “전기요금 연료비 연동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대부분이 채택하고 있고, 국내 도시가스ㆍ지역난방요금에 이미 적용되고 있는 만큼 사실 도입이 늦은 감이 있다”며 “기존 전기요금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는데 ‘재생에너지는 비싼 고급 제품’이란 신호가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된다는 의미가 있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우려도 드러냈다. 유 교수는 “앞으로는 연료비 등락에 따른 위험 부담을 판매자(한전)가 아닌 소비자(가계ㆍ기업)가 지게 될 것”이라며 “지금처럼 유가가 낮을 때는 상관없지만 내년 코로나19 회복 상황에 따라 유가가 다시 올라간다면 기업 수익이 나빠지고 가계 부담이 늘어나는 부정적 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세종=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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