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6 (화)

“동호회 요청에 배드민턴장 지어"…쪽지예산 세금 2520억 샜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중앙일보

2020년 11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예산안 등 조정소위가 열렸을 당시 예결 소위 회의실 앞에서 한 참석자가 이른바 쪽지 예산을 들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국회에는 ‘쪽지예산’이라는 용어가 있다. 정부 예산안에 반영되지 않은 지역 현안 사업 예산을 국회의원이 예산 심의 과정 막판에 끼워 넣는 행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예산 정국이 끝난 뒤 국회의원이 현수막을 통해 ‘000 사업 00억원 확보’와 같이 홍보하는 지역 시설 건립 등이 대표적 사례다.

감사원이 26일 공개한 ‘국고보조금 편성 및 관리실태’ 감사 결과에는 이같은 쪽지 예산의 폐해가 담겨 있었다. 감사 결과 모호한 현행 국비 지원 규정을 우회해 부당 지원된 국비만 20개 사업에서 2520억원(2021년~2024년)에 달했다. 배드민턴과 축구 동호회의 민원을 받은 국회의원이 수십억에서 수억대의 국비를 타낸 경우도 있었다. 검증 없이 막판에 끼워 넣는 돈이라, 해당 사업의 실제 예산 집행률은 평균 4.73%에 불과해 정상적인 사업 진행도 어려운 실정이었다.

정부는 2004년부터 지방 분권을 촉진하려 국비를 지원하는 국고보조사업과 지방 자체 재원으로 진행하는 지방이양사업을 구분해왔다. 2020년과 2023년에는 문예회관 및 체육진흥시설 건립 사업 등도 국고보조금 대상에서 제외했다. 하지만 규정과 현실은 달랐다. 기획재정부도 “예산 합의를 위해선 불가피하다”며 국회의 증액 요구를 거절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중앙일보

감사원이 26일 국회의원들의 쪽지예산 문제를 지적한 국고보조금 관련 감사 결과를 발표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감사원에 따르면 국고보조금이 부당 지급된 20여개 사업 중 13개는 지자체가 국회의원실을 통해 숙원 사업의 예산 증액을 요구한 사례였다. 올해 국비 1000억원이 편성된 강원도 오페라 하우스 건립이 대표적이다. 예산 편성을 반대하던 기재부는 지난해 12월 강원도에 “예산 편성을 위해선 문화콘텐트 창작 및 제작 기업에 대한 입주 공간을 마련하라”고 요청했고, 강원도청 측이 구두로 “알겠다”고 하자 예산을 증액해줬다. 하지만 감사가 진행된 지난 6월까지 관련 시설 건립 계획은 없는 상태다.

충남 천안시에 건립이 추진 중인 천안 봉주르 배드민턴장 조성사업은 지역 동호회 민원을 이유로 올해 90억원의 국비가 편성됐다. 지난해 10월 배드민턴 협회장의 지인이 국회의원실에 사업 자료를 전달했고, 이후 예산이 증액됐다. 올해 7억 5000만원의 국비가 편성된 관악구 낙성지구 생활축구장 조성사업도 지역 축구연합회의 민원 제기로 예산이 편성된 사례다.

국회의원의 쪽지 예산 편성을 지자체가 뒤늦게 파악해 부랴부랴 사업 계획을 준비하는 경우도 즐비했다. 올해 국비 90억원이 편성된 평택 용죽지구 체육센터 건립사업과 국비 9억원이 편성된 충남 아산시 한들물빛도시 청소년 체육시설 설치사업은 관련 지자체 관계자들이 언론 보도와 정당 현수막을 통해 예산 편성 사실을 확인하고 사업 계획을 마련했다. 감사 결과 두 사업 모두 사업 부지 확보나 지방재정투자 심사 통과 여부를 장담 못 해 사업 추진이 불투명한 상태다.

감사원은 이같은 쪽지 예산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로 현행 보조금법 시행령의 모호한 규정을 들었다. 현 보조금 관련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문화관광자원 개발 조성’ 사업은 국비 지원 대상이 아니다. 하지만 비슷한 뜻인 ‘관광자원 개발’은 국비 지원이 가능하게 되어있고, 체육진흥시설 지원사업도 국비 지원 대상에서 제외됐으나, 기초생활체육 저변 확산 지원사업은 제외 대상이 아니라, 국회의원이 예산 증액의 근거로 활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사원은 기재부에 지방이양사업의 세부 내용이 보조금법 시행령에 명확히 구분될 수 있게 정비하라고 통보했다.

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중앙일보 / '페이스북' 친구추가

넌 뉴스를 찾아봐? 난 뉴스가 찾아와!

ⓒ중앙일보(https://www.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