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스 굴욕’ 유가, 슬럼프 극복? 새해에도 가시밭길.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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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이 우려를 이겼다.”
최근 국제 유가 상승을 두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붙인 제목이다. 내년 1월로 예정된 원유 증산으로 유가가 떨어질 것이란 우려에도 영국과 미국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팬데믹의 종식에 대한 '희망'이 유가의 꾸준한 상승을 견인하고 있다.
지난 10일 브렌트유 내년 2월 선물이 장중 배럴당 50달러를 넘어서며 9개월만에 처음으로 50달러 고지를 넘었다. 미국 서부텍사스유(WTI)도 배럴당 46달러 안팎에서 거래를 이어가고 있다.
국제 원유 시장에 2020년은 악몽의 해였다. 지난 4월20일 국제 유가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다. 미국 서부텍사스유(WTI) 선물(先物)이 배럴당 -37.63달러로 곤두박질쳤다. 약 4만원 가량의 돈을 붙여줘야 1배럴의 석유를 팔 수 있는 셈이었다.
코로나19로 이동이 제한되면서 원유 수요가 급감하고 저장시설은 포화 상태에 빠져 시장이 공포에 휩싸인 결과였다. 영국 런던 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도 지난 4월에 배럴당 19달러로 최저가를 기록했다.
미국 텍사스주 미들랜드 소재 WTI 유전 현장. 로이터=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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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럴당 50달러는 그간 국제 원유 시장의 흐름을 판단할 가늠자로 여겨졌다. 하지만 고지 탈환까지의 여정은 멀고 멀었다. WTI는 마이너스의 충격을 딛고 한달여만인 지난 5월 배럴당 30달러 선을 회복했다. 이후 WTI와 브렌트유는 배럴당 30 달러 후반~40달러 중반 선에서 안정세를 보이다 브렌트유는 최근 50달러 고지를 밟았다.
국제 유가를 배럴당 40달러의 안정세로 이끈 주역은 중국이다. 전세계 국가중 올해 유일하게 플러스 성장이 예상되는 중국에서 원유 수요가 늘면서 국제 유가는 안정을 찾아가기 시작했다. 여기에 코로나19 백신의 상용화 가능성이 커지면서 이동과 여행에 대한 희망이 싹트며 상승 동력이 붙고 있는 것이다. 국제 유가 전문가인 비요나르 톤하우겐은 FT에 “백신의 패스트 트랙으로 인해 원유 수요 증가에 대한 희망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원유가 주춤하는 사이, 증시에 이어 구리 등 국제 원자재 시장도 뜨겁다. 그래픽=김영희 02@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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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자들도 다시 원유 시장을 주목하고 있다. 대신증권이 14일 낸 국제 유가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주 기준 투기 자금의 순매수 포지션이 27만5000건으로 지난 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실제 원유 수요자가 아닌 투자 목적의 자금인 ‘비상업(non commercial) 순매수 포지션’ 거래 건수가 코로나19 본격 확산 이후 최고치를 찍은 것이다. 원유 시장에 투자 목적의 돈이 유입되기 시작했다는 의미다.
원유 전문 트레이더인 레베카 베빈은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백신이 나오면서 투자자들이 다시 원유에 몰리고 있다”고 말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푼 유동성이 증시와 원자재 시장을 달군 데 이어 원유 시장까지 데우고 있는 것이다.
상승을 위한 배럴당 50달러 고지에 근접했지만 문제는 백신 이외엔 마땅한 추가 호재가 없다는 데 있다. 미국의 원유 수요는 여전히 바닥 수준이다. 미국판 추석 대이동 시기인 지난달 말 추수감사절에도 휘발유 수요는 과거 20년 동기 대비 최저 수준이었다.
지난달 24일 조 바이든(왼쪽)이 기후변화 대응 특사로 존 케리 전 국무장관을 지명하고 있다. A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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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히려 우려는 커진다. 실수요 회복은 아직인데 공급량 증가는 눈 앞에 다가와 있기 때문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와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의 협의체인 OPEC+는 다음 달부터 원유 공급량을 일일 50만 배럴 늘리기로 합의한 상태다. 게다가 내년 1월 20일 공식 출범하는 조 바이든 행정부의 주요 정책 기조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신재생 에너지다. 원유 등 화석연료 산업은 위축이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재확산이 전 세계적으로 이어지는 가운데 (원유 시장)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FT) “국제 원유 시장의 완전한 회복은 아직 자신할 수 없다”(WSJ)는 분석이 지배적인 까닭이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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