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제 회피 위해 '부드러운 확장' 제안…"디지털 위안, 달러 대체 의도 아냐" 주장
저우샤오촨 전 인민은행장 |
(상하이=연합뉴스) 차대운 특파원 = 저우샤오촨(周小川) 전 중국 인민은행장이 위안화 국제화 움직임을 경계하는 나라들이 존재한다면서 위안화 국제화 전략을 부드럽게 펴나가야 한다고 제안했다.
14일 펑파이(澎湃)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등에 따르면 저우 전 행장은 전날 상하이금융포럼 기조연설에서 "일부 국가들이 위안화의 국제화를 우려한다"며 "우리가 민감한 문제를 먼저 건드리지 않고 위안화 국제화를 강요하지 않음으로써 대국의 쇼비니즘(공격적 민족주의)으로 여겨지는 일을 피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중국 주변의 이웃국인 한국, 일본, 아세안 10개국만 놓고 봐도 경제 발전 수준과 채무 수준 등에 큰 차이가 난다면서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 업무를 추진하면서 타국의 통화 주권을 흔들어 통화·외환 정책이 작동하지 못하게 하는 일을 삼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강(易綱) 인민은행장의 전임자로 재임 기간 위안화 국제화를 의욕적으로 추진해 '미스터 런민비(人民幣·위안화)'이라는 별명을 얻은 저우 전 행장의 이런 지적은 중국이 최근 중앙은행 발행 법정 디지털 화폐(CBDC) 도입에 속도를 내면서 중국이 달러 패권에 본격적으로 도전하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제기된 가운데 나왔다.
저우 전 행장은 이런 외부의 시선을 의식한 듯 자국의 디지털 화폐 도입이 국내외 이용자의 편리를 위한 것일 뿐 달러화·유로화를 중심으로 구축된 기존의 세계 통화 질서에 도전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그는 "만일 당신이 그것을 쓰고자 한다면 위안화는 무역과 투자 등에 쓰일 수 있다"면서도 "그러나 우리는 (법정 디지털 화폐로) 현존하는 화폐들을 대체하려는 야심이 없다"고 말했다.
중국 법정 디지털화폐(왼쪽)과 실제 지폐(오른쪽) |
저우 전 행장은 중국은 소비자들과 해외 상인들이 점진적으로 디지털 위안화를 받아들이도록 설득할 수 있기를 원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중국의 '디지털 위안'을 적극적으로 지지해온 저우 전 행장의 이날 발언은 중국이 위안화 국제화 전략 속도를 늦추자는 것이 아니라 위안화 국제화를 더욱 효과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타국의 경계심을 낮추자는 '전략적 조언'의 성격이 강한 것으로 평가된다.
중국은 세계 주요국 중 가장 먼저 법정 디지털 화폐를 정식으로 발행해 사용하는 나라가 될 전망이다. 중국은 늦어도 2022년 2월 열리는 베이징 동계올림픽 전까지 디지털 위안을 도입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신냉전으로 불리는 미중 전략 경쟁 속에서 중국은 디지털 위안을 중·장기적으로 국제 무역·결제 업무에서 사용하는 등 나라 밖에 유통해 미국 달러를 바탕으로 한 국제 경제 질서에 근본적인 변화를 꾀하려 한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중국은 내부에서 현금 일부를 대체하는 디지털 위안 사용을 시작하고 나서 이미 자국 경제의 영향권에 깊숙이 들어온 일대일로(一帶一路:육상·해상 실크로드) 협력국에서부터 디지털 위안 사용을 늘려나갈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중국과 경제·인적 교류가 많은 우리나라도 중국 디지털 위안의 잠재적 영향권에 들어 있다.
디지털 위안은 가장 먼저 관광객들의 해외여행 등에 사용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코로나19 대유행 이전까지 중국 관광객이 많은 서울 명동 일대 상점이나 시내 대형 면세점 등에서는 알리페이나 유니온페이 카드 같은 중국 지급 수단이 많이 쓰였는데 향후 이런 국내 상업시설에서 중국인 관광객들에게 쇼핑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디지털 위안 결제 시스템을 운영할 가능성이 있다.
수년 전부터 법정 디지털 화폐 준비에 나선 중국은 올해부터 선전, 슝안(雄安), 쑤저우(蘇州), 청두(成都), 동계 올림픽 개최 예정지 등지에서 폐쇄적으로 내부 실험을 진행하다가 지난 10월 광둥성 선전(深圳)시에서 시민 5만명이 참여한 첫 대규모 공개 시험을 했다.
인민은행은 장쑤성 쑤저우(蘇州)시에서 시민 10만명에게 200위안씩(약 3만3천원), 총 2천만 위안(약 33억원)어치의 법정 디지털 화폐 '디지털 위안화'를 나눠준 가운데 최근 2차 대규모 공개 테스트를 진행 중이다.
cha@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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