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살 때부터 바느질 배워…우아하고 섬세한 우리 멋 표현
국내 자수 위기 때 박물관·사찰 찾아 궁중 자수 등 연구
"전통자수문화 세계화…숙련기술인 우대, 문화·기술 강국 가능"
김나미 명장 |
(부산=연합뉴스) 조정호 기자 = "오색실을 바늘귀에 꿰어 한 올 한 올 땀땀이 떠서 하나의 조형을 맞춰 조화롭게 완성하는 것이 자수예술입니다."
팔순을 넘긴 김나미(81) 명장은 한국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숙련기술인으로서 자부심이 대단했다.
부산 남구에 있는 연구실에서 만난 김 명장은 한복을 차려입고 바늘과 오색 비단실로 자수를 놓고 있었다.
작업대 위에는 비단과 5가지 색실(청, 적, 황, 백, 흑) 등 각종 소품이 단정하게 정리돼 있었다.
김 명장은 자수를 '캔버스 대신 비단, 물감 대신 색실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김나미 명장 용보 |
"자수는 우리 전통문화를 가장 잘 나타내고 한국의 멋과 아름다움을 상징하는 예술작품입니다."
그는 "고대에서 이어져 내려온 창작 작업이고 우리 민족의 섬세함과 우아함이 잘 표현돼 있다"며 자수 예찬론을 폈다.
그의 손끝으로 만들어지는 자수를 보면 마치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 땀 한 땀 정성을 들여 정교하고 아름답게 표현한 손재주가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섬세한 솜씨로 민족 정서를 새기는 모습에서 60년의 연륜이 묻어났다.
김 명장은 "자수 예술처럼 숙련 기술은 많은 시간이 필요하고 노력과 끈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며 장인정신으로 한 우물만 파면서 걸어온 길을 되돌아봤다.
그는 어머니의 섬세한 바느질 솜씨와 그림과 조각, 대금, 국궁 등에 뛰어난 아버지가 가진 예술성을 물려받았다.
"7살 때 꽃, 나비, 곤충, 새들을 접하며 만물과 대화를 하던 시절 엄마가 바느질하다가 잘라낸 예쁜 비단 조각을 모아 재첩이나 조개껍데기에 옷을 입혀 만든 노리개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김나미 명장 |
김 명장은 학창 시절 전통 문양과 색감을 재현한 자수를 만들 정도로 문화예술에 소질을 보였다.
디자이너를 꿈꾼 김 명장은 자수의 길을 걷게 된 것은 고교 은사의 권유였다.
"밤을 새워 수를 놓을 정도로 즐거운 마음으로 자수를 했습니다."
김 명장은 1977년 지병을 앓던 남편이 생을 마감했을 때 눈앞이 캄캄했다고 한다.
어린 두 자녀를 지키기 위해 밤낮으로 생계형 바느질을 하며 자수에 몰입했다.
1970년대 홍콩 자수가 국내 시장을 잠식하면서 전통 자수가 사양길에 접어들 때 그는 오히려 조선 시대 자수 역사를 공부했다.
박물관과 사찰을 찾아 다양한 문화재를 살펴보고 고서적을 탐독하며 한국 전통 자수를 연구했다.
김나미 명장 봉황보 |
최고 자수 기술인 궁중 자수에서 나오는 색감을 재현하는 등 자신만의 자수 세계를 개척했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1983년 한국 전통 자수 100여 점을 선보이는 전시회를 할 수 있었고 자수 주문이 쇄도하는 계기가 했다.
하지만 몸을 아끼지 않아 과로와 스트레스, 영양실조가 생겼고 결국 쓰러져 7일 만에 의식을 되찾는 아찔한 순간도 있었다.
그는 위기에도 바늘과 실을 놓지 않고 작품 활동을 계속했다.
1986년 전국공예품경진대회에 출품해 부산시장상을 받았고, 일본 전시회, 한중 합작 전시회 등에 참여해 한국 전통 자수문화를 선보였다.
김 명장은 부산지역 대학과 자신의 연구소에서 자수 강의를 하는 등 우리 전통 자수 문화를 전수하는 데 힘을 쏟았다.
그는 제자 앞에서 훌륭한 스승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1999년 대한민국 명장에 도전해 최고 숙련기술인으로 인정받았다.
2000년에는 국무총리상을 받았고, 2008년 부산MBC 문화예술대상을 받는 영예를 안았다.
대한민국 명장 이후 3년 동안 준비해서 2002년 부산박물관에서 자수 작품 100점을 3개월 동안 전시하는 특별 기획전을 열었다.
한국의 멋과 아름다움전, 일본 오사카 개인 초대전, 유럽 5개국 전시회, 작가 입문 60주년 기념 전시회(바늘&실의 대화) 등 다양한 전시회를 마련했다.
자수 삼층장(십장생과 만물) |
많은 전시회를 하는 동안 어린 딸은 어느새 성장해 경성대 외래교수로 현대미술과 접목한 섬유공예를 가르치고 있다.
그는 욕심을 하나씩 비워 가야 할 나이지만 작은 바람을 가슴속에 담고 있다.
바로 한국 전통 자수문화의 세계화다.
김 명장은 한국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젊은이들을 양성해야 한다며 국가 차원의 제도적 뒷받침을 역설했다.
"아직 전통 자수 소품을 연구하고 판매하는 데 어려움이 많습니다. 공항이나 백화점 등에 전통 자수를 전시·판매하는 특별한 공간이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김 명장은 세계 문화 기술 강국이 되기 위해서는 숙련기술인에 대한 인식과 대우가 달라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후배 기술인에게 "절대 좌절하지 말고 꿈을 실현할 수 있다는 열정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cch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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