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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명 칼럼] 쓸게 너무 많은 文정부 신하 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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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전체 사서는 제왕의 역사를 기록하는 본기(本紀), 왕을 제외한 인물들을 소개하는 열전(列傳)이 중심이다. 주로 읽히는 것은 일화 위주로 쓰여져 재미가 있는 열전이다. 삼국사기 열전에서 가장 크게 다루는 인물은 김유신이다. 보통 열전 1권당 10명 안팎의 인물을 소개하는데 김유신은 혼자만 상중하 3권을 차지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 4년을 기전체로 엮는다 했을때 열전 후보군중 누가 최다 분량을 가져갈 것인가. 지금까지는 추미애 법무부장관이 아닐까 한다. 조국 전 법무가 어슷비슷할 것이고 김현미 전 국토부장관도 꽤 큰 분량이 필요하다. 앞서 말했듯 열전은 에피소드, 즉 일화 중심인데 이들이 생산한 일화는 너무 많아서 굵직한 것만 담는다해도 삼국사기 기준으로 1인당 3권은 할애해야 할 것같다. 셋 모두 김유신 급이다.

삼국사기 '개소문' 편은 연개소문의 성격을 '흉잔부도(凶殘不道)', 즉 흉포하고 잔인하며 도리를 모르는 인간으로 규정한뒤 '말에 오르내릴 적에는 항상 귀인이나 무장을 땅에 엎드리게 하여 발판으로 삼았다'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흉잔부도의 캐릭터가 이 한 장면에 그려지지 않는가. 출세한 사람들은 본인의 열전을 구성할 일화들을 늘 염두해야 한다. 본인은 기억도 못하는 장면 하나로 대대손손 기억되는 일이 많다. 아니 대부분이 그렇다. 사람들은 역사속인물에 대해 딱 한가지 이미지를 허락할 뿐이다.

문재인 정부의 신하들은 일화의 중요성을 잘 모르는 듯하다. 예컨대 김현미씨는 국토장관에서 물러나기 직전에 '빵투아네트'란 별명을 얻고 말았다. 그 전의 별명 '24전24패'에 비할수 없이 강한 이미지 규정력를 가진 이 별명은 그녀가 "아파트가 빵이라면 제가 밤을 새서라도 만들겠는데···"라고 말했기 때문에 붙여졌다. 아뿔싸. 김씨는 '빵'의 무궁무진한 이미지 확장성, 빵이 아파트와 결부되었을때 일어날 '핵융합반응'을 간과했던 것이다.

사서 편집자가 욕심낼 만한 '열전용' 일화는 서울중앙지검에서도 있었다. 신문 보도에 따르면 중앙지검 1,2,3,4차장 등이 이성윤 중앙지검장을 찾아가 사퇴를 건의했다고 한다. 이후 김욱준 1차장검사가 따로 사표를 제출하며 동반사퇴를 요구하자 이 지검장이 "나는 할 일이 많다···사표는 수리하겠다"고 말했다는 요지의 보도다. 이 일화는 김현미 전 국토의 빵 발언처럼 확정된 사실은 아니다. 이성윤 지검장에게 조언하는데 만약 이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면빨리 바로잡기 바란다. '나는 할 일이 많다'는 음미할수록 감칠맛이 느껴지는 말이다. 이 정부를 위해, 반(反)윤석열 전선에서 더 열심히 싸우겠다는 얘기일까? 아니면 '별의별 욕먹어가며 여기까지 왔는데 서울중앙지검장으로 끝낼수는 없다'는 말일까. 바로잡지 않으면 이 말은 '이성윤 열전'의 표제어가 될 것이다. '욕망 검사' 이미지. 내가 이 지검장이라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막겠다.

고기영 전 법무부차관은 윤석열 검찰총장 징계위원회를 코앞에 두고 사표를 냈다. 내가 고 전 차관 부친이나 형이었다면 '네가 집안을 구했다'고 크게 칭찬했을 것이다. 사표 안 냈으면 추미애 법무를 대리해 징계위원장으로 참석했을 것이고 역사책에 이름 석자가 선명히 찍혔을 것이다. 정여립 모반사건 수사 책임자였던 송강 정철은 취조 과정에서 선비들을 많이 죽이는 바람에 지금도 '독(毒)철' 혹은 '간(姦)철'이라는 별명이 따라다닌다. 선조가 시켜서 한것이지만 개인의 선택에는 책임이 따른다. 고 전 차관은 '일화'의 중요성을 아는 사람이다. 아마 역사책을 열심히 읽었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 열전의 히어로라 할 추미애 법무는 결정적 장면을 지목하기가 쉽지 않다. 일화가 없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고르기가 어려운 것이다. 오늘의 추미애가 어제의 추미애를 항상 뛰어넘는다. 일신우일신. 계속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조국 전 법무는 무수한 일화가 있지만 표제어는 정해졌다. '조만대장경'. 그의 모순되고 자기분열적인 일화들은 '과거의 자신과 싸운 사람'으로 간단히 요약된다.

1812년 괴테와 베토벤이 같이 산책을 하다가 오스트리아 황녀 일행을 만났다. 괴테는 모자를 벗어든채 옆으로 길을 비켰고 베토벤은 본척만척 직진했다. 이 일화는 베토벤이 제3자에게 말한 것이 괴테가 죽고 나서야 세상에 알려졌다. 왜곡 과장의 가능성이 있지만 200년째 베토벤에게는 반항아, 괴테에게는 비굴한 이미지를 갖게 하는 거의 유일한 근거다. 파우스트를 읽는 사람은 거의 없고 이 에피소드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밀란 쿤데라 소설 '불멸'에나오는 이야기다.

다시 한번 말하는데 문정부 사람들은 일화에 신경써야 한다. 후대 사람들은 단 한 장면, 단 하나의 별명으로 그들을 기억할 것이다. 오명, 악명으로 남는게 두렵다면 지금부터라도 빌미를 주지 말아야 한다. SNS시대다. 도처에 '김부식'이고 매일매일 불멸의 열전이 쓰여진다.

[노원명 오피니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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