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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8 (월)

[한은형의 애정만세] 나는 아침에 종종 ‘쾰른 콘서트'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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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피아니스트에게 닥친 시련이

다시없을 즉흥곡으로 태어났다

‘쾰른’이란 단어는 오랫동안 나와 관계없는 단어였다. 별다른 느낌을 주지 못했던 거다. ‘쾰른’은 내게 ‘제습제’나 ‘부직포’보다는 나을지 몰라도 ‘두부’나 ‘베개’ 같은 몽글몽글한 감정들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쾰른 대성당에 대한 인상적인 장면이 나오는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을 알고 있고, 쾰른에 다녀온 사람이 쾰른 대성당이 양각된 마그넷과 그곳 장인이 만든 목공예품을 선물로 주고, 뭔가 문화적인 일들을 하려는 사람들이 맨 처음 판을 벌이는 도시가 쾰른이라는 말을 들었음에도 말이다.

모두 ≪쾰른 콘서트≫가 내 삶으로 들어오기 전의 일이다. 요즘의 나는 아침을 먹을 때 종종 키스 재럿의 피아노 솔로 앨범인 ≪쾰른 콘서트≫를 듣는다. 이건 아침을 위한 음악이기 때문이다. 조용한 듯하다가도 갑자기 날뛰는 앨범이라 그런지 밤에는 도저히 들을 수 없다. 밤은 아무래도 이완의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쾰른 콘서트≫를 들으면서 기분이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나를 바라보는 게 좋다. 마음이 끓어오르는가 하면 한편으로는 조용해지고, 그랬다가 단단해지고, 날카로워지기도 하는데 또 온기가 돌기도 하고… 이런 감정의 변화가 음악을 듣는 내내 밀물과 썰물처럼 교차된다는 게 신기하다.

조선일보

키스 재럿의 즉흥 연주를 담은 앨범 '쾰른 콘서트'는 그의 기구한 운명을 알게 될 때 더 극적인 느낌을 준다. 그는 제대로 먹은 것도 없는 상태로 허리 통증을 앓으며 연주를 했다./ECM


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니 ≪쾰른 콘서트≫에 대한 이야기들이 흐르기 시작했다는 것도 신비롭다. ECM의 창립자이자 프로듀서인 만프레드 아이허는 당시 마일스 데이비스의 사이드맨으로 유럽 투어 중이던 키스 재럿에게 피아노 솔로를 녹음하자고 제안한다. 그렇게 나온 게 ≪Facing You≫로 그의 첫 솔로 앨범이다. 둘은 독일 전역을 돌며 솔로 콘서트를 해보자고 모의하고, 1972년부터 1973년까지 18곳을 돌며 연주를 한다. 만프레드 아이허와 키스 재럿은 만프레드 아이허의 낡은 르노로 스위스, 독일, 오스트리아 등지를 다니는데 이건 좋기도 하면서 안 좋기도 한 일이었다.

둘은 내내 붙어 다니면서 이야기를 나누고, 음악을 들었다. 밤에는 새로운 도시의 새로운 식당에 가서 새로운 음식을 먹고 음악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고, 다음날 만프레드의 르노 안에서 어젯밤 이야기했던 그 음악을 카세트테이프로 듣는 식이었다. 둘의 이야기와 기운은 서로에게 스며들었을 테고, 서로의 웃음소리를 닮아 갔을 것이다. 다음날 긴 자동차 여행 끝에 도착한 새로운 도시에서 키스 재럿이 하는 그 즉흥연주에 둘이 나누었던 음식과 대화와 이야기와 음악이 묻어 있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쾰른 콘서트≫를 듣는 것이다.

이제는 ‘안 좋기도 한 일’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다. 장거리의 자동차 여행은 좋은 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키스 재럿은 피아노를 워낙 특이한 자세로 치는 데다 원래도 있었던 허리 통증이 장거리 자동차 여행으로 인해 악화되었던 것이다. 키스 재럿의 앨범을 들어오면 기묘한 신음소리가 나는데, 엄살인지 흥인지 알 수 없는 소리를 지르다가 아픔도 잊을 만큼 본인의 연주에 심취해 탄성이랄까 환호에 가까운 소리를 내고, 또 다시 신음을 흘리는데… 나는 즉흥연주 사이사이에 흘러나오는 그의 이 보이스에 더 반응하게 된다. 저 사람이 지금 얼마나 복잡한 감정을 겪으며 피아노를 치고(그것도 실시간으로 작곡하며) 있는지, 그러면서 저 고통을 잊게 하는 환희는 얼마나 뾰족하면서도 뭉클한 감정이었을지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쾰른에 도착한 밤, 키스 재럿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저녁에 먹은 식사도 입에 맞지 않았고, 몸도 안 좋았다. 이때가 1월 23일이라는 것, 그리고 독일의 쾰른이라는 것에 주목해야 한다. 독일 북부의 여름은 마른 낙엽이 굴러다닐 정도로 어느 곳의 여름과도 다른 창의적인(?) 여름이라고 할 수 있는데, 쾰른도 북쪽이고, 심지어 1월이다. 독일의 1월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나는 여러 번 들어보았다. 독일에서 현대음악을 공부하고 온 K에게 왜 박사까지 하지 않았냐고 물었을 때 K가 했던 대답은 이랬다. “독일에서 네 번 겨울을 났는데, 또 겨울을 날 자신이 없었어요.” 독일에서 여름을 삼 개월 지냈던 나는, 발이 시리고 목이 시려서 자꾸 움츠러들었던 나는 “아아아아아…”라는 장탄식으로 모든 것을 대신했다. 분명히 발도 시리고 목도 시리고 손도 시렸을 독일 북부의 겨울에, 허리도 안 좋고 몸도 안 좋고, 먹은 것도 제대로 없는 키스 재럿이 도착했던 것이다.

조선일보

키스 재럿의 가련한 운명을, 나는 재즈비평가 남무성이 쓰고 그린 책 ‘재즈잇업’에서 읽었다. /서해문집


그의 가련한(?) 운명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는다. 피아노도 그가 주문했던 피아노가 아니었다. “만프레드, 이 피아노는 레인지가 좁아서 고음부분에 문제가 있어. 오늘은 중저음만을 사용한 연주를 할 수밖에 없을 거 같네.”라고 키스는 말했다고 한다(재즈비평가 남무성이 쓰고 그린 책 ‘재즈잇업’에서 읽었다). 그리고 어디에서 읽었는지, 맞는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피아노는 페달도 잘 작동하지 않았다. 이런 여러 가지로 제한되고 안 좋은 조건에서 그는 연주를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1975년 1월 24일 쾰른에서의 일이다.

이렇게 나오게 된 ≪쾰른 콘서트≫는 다시없을 명반이 되었다. 그래서 음악을 거의 듣지 않는 나의 집에도 있게 되었다. 1980년대에 재즈 카페를 했었다는 C는 음악에 무심한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지만 그래도 이 앨범만은 들어보라며 거의 십년 전에 선물했던 것인데, 이 앨범은 나의 집 어딘가에서 오래도 잠들어 있다 우연히 내 삶에 들어오게 되었다.

우연히 이 앨범을 집어 들었고, 앨범을 열었고, CD플레이어에 밀어 넣었다. 그리고 이 음악을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하던 시기에 썼던 어느 책에 슬쩍 ‘쾰른 콘서트’를 등장시켰다. 그 문장을 한 단어만 변주해서 다시 써보기로 한다. “나는 나의 이 무계획에 의지한 일상이 키스 재럿이 연주하는 즉흥곡 같은 것이 될 수 있다고도 믿는다. 매일같이 연주하다 보면 ≪쾰른 콘서트≫ 같은 명반도 나오는 거겠지.”라고.

[한은형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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