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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27 (토)

나무도 `거리두기` 하는거 몰랐죠? 코로나시대 최고 피난처는 동네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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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공우석 경희대 지리학과 교수(63·사진)에 따르면 나무가 코로나19 시대에 인간에게 건네는 교훈이 하나 있다. 나뭇가지가 서로 닿지 않게 자라는, 키 큰 나무들의 수관 기피(樹冠忌避·crown shyness) 현상이다.

"바람이 불어 가지끼리 마찰하면 성장하지 못하니까 나무들이 손상을 피하려는 현상이에요. 자신과 후손을 위해 다른 식물을 밀어내는 화합물을 만들어 소통하는 것으로도 봅니다. 그러니까 나무는 사람들보다 앞서 스스로 '거리 두기'를 해왔던 거예요. 코로나19 시대에 사람도 그래야죠."

올해만 나무의 의미를 모색하는 책 3권을 출간한 생태지리학자 공우석 교수를 서울 회기동 연구실에서 만났다. "다작(多作)이라 부실할까 걱정도 됐지만 시민들을 숲으로 흩어지도록 돕는 일이 필요하다고 봤다"는 공 교수는 고산지대 바늘잎나무(침엽수) 연구에 평생을 헌신한 권위자다.

신작 '바늘잎나무 숲을 거닐며'는 백두산부터 한라산, 마라도까지 분포하는 한국 자생종 바늘잎나무를 사유하며 쓴 글이다. 코로나19뿐 아니라 기후변화, 미세먼지, 조류독감, 구제역이 난무하는 혼란한 인류세에 나무와 인간의 관계를 조망하는 에세이 80여 편은 한 문장으로 요약된다. "가까운 숲에 오래 머무르자." 이것이 공 교수가 내린 결론이다.

"늦잠 자는 애들을 깨워 두세 시간 달려가봐야 초주검이 돼서 돌아오잖아요. 기름 낭비, 돈 낭비, 시간 낭비예요. 정상에 올라야 산행이라 여기지만 가까운 숲보다 인간과 자연에 건강한 여행지는 없습니다. 집 근처 숲에서 바늘잎나무부터 먼저 만끽해보세요. 그게 코로나19 시대의 등산입니다."

바늘잎나무는 '침엽수'의 우리말이다. 공 교수는 활엽수를 넓은잎나무, 상록침엽수를 늘푸른바늘잎나무, 교목(喬木)을 큰키나무, 관목(灌木)은 키작은나무라고 부른다. 국내 바늘잎나무는 28여 종인데 3분의 1가량은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지정한 적색 위기종이다.

"빙하기에 극지방에서 추위를 피해 한국에 온 유존종이 기후변화 탓에 몰살될 위기예요. 기온이 상승하자 산꼭대기로 올려간 녀석들인데, 산 위에서 섬처럼 살다 고사에 임박한 겁니다. 기온이 오르면 광합성이 활발해지는데 아직 땅이 녹지 않았으면 나무가 스트레스를 받아 고사합니다. 설악산 눈잣나무, 지리산 눈향나무, 한라산 구상나무 등이 대표적이죠. 말 없는 약자에게 더 눈길이 가요."

공 교수가 나무에 반한 기점은 고교 시절의 한라산 여행이었다. 전주 출신인 그는 친구와 10박11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백록담 물로 씻었고, 그 물로 밥까지 해 먹었단다.

"모순의 여행이었죠. 그때 본 나무들이 평생의 업이 될 줄 몰랐으니까요. 하지만 또 그곳에서 어린 저는 자연의 가해자였습니다. 자연을 이해하는 눈이 없으면 누구라도 원인 제공자가 될 수 있는 거죠. 그걸 알리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공 교수 명함에는 설악산의 귀때기청봉(해발 1578m) 전경이 배경으로 담겨 있다. 설악산 최고 봉우리라고 으스대다가 설악산 대·중·소청봉 삼형제에게 '귀싸대기'를 맞아 붙은 이름이라는 설도 있지만, 귀가 떨어져나갈 정도로 바람이 매섭다고 해서 붙었다는 설도 있단다. 공 교수는 왜 그 고생을 하며 산 중턱에서 평생 숲을 연구했을까.

"김밥 안주에 막걸리 마시는 등산이 우리 모습이지만, 누군가는 먼저 숲에 가서 그들을 자연으로 안내하는 길라잡이가 돼야 하니까요. 학생들과 답사를 가면 나무 한 그루씩 껴안고 나무가 무슨 얘기를 하는지 들어보라고 합니다. 그 소리를 듣다가 평생이 흘렀네요."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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