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29 (금)

이슈 우리들의 문화재 이야기

풍납토성 축조의 비밀은 '나무기둥'이었다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경향신문]

경향신문

풍납토성은 초축이후 몇차례 증축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맨 밑의 석렬은 초축시기의 성벽을 뜻하고 성벽 위에 목재시설이 존재한 뒤 그 시설을 폐기한 다음 증축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중축을 위해 나무기둥과 낙엽, 석렬 등을 사용했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제공


풍납토성 축조의 키는 나무기둥이었나. 2017년부터 풍납토성(사적 11호) 서성벽을 발굴해온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는 토루 별로 성벽을 쌓아올리기 위해 박아놓은 나무기둥을 확인했다고 1일 밝혔다.

연구소측은 서성벽의 축조 방법을 확인하기 위해 처음으로 시행한 이번 평면조사에서 토루 하단부터 켜켜이 박아 흙을 쌓아 올린 것으로 추정되는 나무기둥들을 찾아냈다. 토루는 풍납토성의 몸체를 이루는 흙더미를 일컫는다. 풍납토성은 중심골조에 해당하는 1토루를 쌓아올린 후 수차례 토루를 덧대어 2~3토루를 쌓아올리는 방식으로 축조했다. 성벽을 쌓을 때는 흙을 켜켜이 다져 쌓아 올리는 판축기법과 다른 흙을 교차로 쌓아올리는 성토기법 등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경향신문

1토루와 2토루에서 나무기둥이 보인다. 토성을 쌓기 위해 나무 기둥을 박아놓았음을 알 수 있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제공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조사구역의 가장 밑인 1토루 내에서는 성토를 위한 나무기둥을 88~162㎝ 간격으로 총 6단을 박아 시설한 것이 확인됐다. 1토루 뿐만 아니라 2~3토루 사이에도 역시 토성을 쌓아 올리기 위한 나무기둥이 시설되었다. 이보람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는 “이를 통해 성벽 축조 방법과 공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2~3토루 사이에 박아놓은 나무 기둥이 한때 이 층에 만들어놓은 시설물을 폐기하고 증축할 때 재사용한 것인지 정확하지는 않다.

이번 조사에서는 처음 성벽을 축조한 이후 증축한 명확한 증거도 발견됐다. 초축면(1~2토루)과 증축면(3토루) 사이에서 발견된 석렬(강돌을 깔아 시설한 것)이 그 증거이다. 즉 초축면인 1·2토루 축조 이후 성 안쪽 벽을 보강하기 위한 석렬을 깔고 성벽을 일정기간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 이후 증축을 위해 3토루를 석렬 위로 쌓아 올렸던 흔적도 고스란히 확인됐다.

경향신문

한성백제의 최초 도읍지인 풍납토성의 위용. 폭 40~50m, 높이 11m, 둘레 3.5km 이상의 대규모 토성 이다.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제공


이보람 학예연구사는 “풍납토성은 폭 40~50m, 높이 11m, 둘레 3.5㎞ 이상의 대규모 토성이고, 몇 차례의 증축이 있었던 것으로 판단된다”면서 “이번 조사에서 초축면과 증축면의 경계를 명확히 밝혀낼 수 있었다”고 전했다. 그러나 초축과 증축 시기가 언제인지는 아직 특정할 수는 없다. 권택장 국립강화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관은 “이번 조사는 풍납토성 축조에 사용된 나무기둥의 발견으로 그동안 논란이 되어 왔던 풍납토성의 축조방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는데 의의가 있다”고 전했다.

이기환 선임기자 lkh@kyunghyang.com

▶ 인터랙티브:자낳세에 묻다
▶ 경향신문 바로가기
▶ 경향신문 구독신청하기

©경향신문(www.khan.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