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산업이 미래차로의 급격한 패러다임 변화에 직면한 가운데 현대차그룹은 정 회장 취임 후 ‘미래 모빌리티 솔루션 기업’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특히 현대차가 지난달 소프트뱅크그룹과 미국의 로봇 전문 업체 보스턴 다이내믹스 인수 방안을 협의 중이라는 외신 보도가 나오면서 업계 안팎에서는 정 회장의 ‘미래 모빌리티’ 사업 전략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커졌다. 1조원대로 예상되는 이번 거래가 이뤄지면 정 회장의 취임 후 첫 ‘빅딜’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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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잇따라 외부 인사 영입 경쟁력 강화
정 회장은 향후 그룹의 핵심 사업 분야로 도심항공모빌리티(UAM)를 육성하고 있다. 작년 9월 도심항공모빌리티(UAM) 사업부를 신설하고 그동안 눈독을 들였던 미국 항공우주국(NASA) 항공연구총괄본부장 출신 신재원 박사를 사업부 담당 부사장으로 영입하기도 했다. 아울러 최근에는 인공지능(AI) 컴퓨팅 기술 분야의 선도기업인 엔비디아와 커넥티드카 시스템 개발을 위한 협력도 확대하기로 했다.
정 회장은 수소 생태계 구현에도 주력하고 있다. 정 회장은 10월 15일 수소경제위원회 회의를 마친 뒤 “좀 더 경쟁력 있게 다른 국가들보다 빨리 움직여서 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긍정적인 기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그린 뉴딜’을 강조하며 현대차그룹과 정 회장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다. ‘수소차 홍보모델’을 자임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작년 대통령 관용차로 현대차의 수소전기차 넥쏘를 채택했고, 정세균 총리는 최근 넥쏘를 타고 출근하는 영상을 공개했다. 현대차 북미법인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이끄는 새 행정부와 협력해 전기차와 수소차의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는 구상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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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 취임 후 현대·기아자동차는 자사 제품에 장착된 엔진 리콜과 관련한 3조원대 충당금을 3분기 실적에 반영키로 전격 결정하기도 했다. 당장의 실적엔 악영향을 줄 수 있지만 고객보호와 품질경영을 위한 특단의 조치라는 해석이다. 현대·기아차는 이례적으로 실적 발표에 앞서 ‘세타2 엔진’ 결함 리콜에 대한 추가 충당금이 3조4000억원가량 반영될 것이라며 주요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외국인 투자자를 상대로 설명회를 열기도 했다. 현대·기아차 측은 “세타2 GDI 등 일부 엔진에 대한 추가 충당금 설정과 선제적인 고객 보호 조치를 위해 올 3분기 경영 실적에 품질 비용을 반영했다”며 “향후 근본적인 개선책 마련과 프로세스 혁신으로 품질 문제 재발 방지에 주력해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선 회장은 평소 “고객의 신뢰를 최우선으로 고려하라”는 신념을 임직원에게 강조해왔다. 이번 조치는 그런 그의 신념이 반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현대·기아차는 2017년 리콜 시행 때부터 세타2 엔진 장착 차량에 대한 보증이 2030년 정도까지 진행될 것으로 내다봤지만, 업계는 이보다 더 긴 기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4대 그룹 총수 회동 등 활발한 대외 활동
정 회장은 4대 그룹 총수와 회동하고 노조위원장을 만나는 등 활발한 대외할동도 하고 있다. 정 회장은 지난 9월 회동을 가졌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과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등 4대 그룹 총수들과 2개월 만인 11월에 또 회동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날 모임은 최태원 회장이 주선한 것으로, 친목 성격의 모임이지만 미국 대선 결과 등 재계 현안도 논의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노조와도 만났다. 정 회장은 지난 10월 30일 문재인 대통령의 현대차 울산공장 방문 행사 직후 공장 내 영빈관에서 취임 후 처음으로 노조 지부장과 오찬을 하며 담화를 나눴다. 이 자리에는 정 회장과 이상수 민주노총 금속노조 현대차지부장을 비롯해 현대차 하언태 국내생산담당 사장, 이원희 재경담당 사장, 장재훈 국내사업본부장(부사장) 등 총 5명이 참석했다. 오찬에 앞서 현대차 공영운 전략기획담당 사장, 알버트 비어만 연구개발본부장(사장), 송호성 기아자동차 사장까지 함께 참석해 기념촬영을 하기도 했다. 1시간 30분가량 오찬을 하며 발전적 노사 관계에 대한 의견을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사측은 현대차 노조의 긍정적인 ‘변화 바람’을 높이 평가하고 자동차산업 격변기를 맞아 노사가 힘을 모아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의지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노조 역시 생산성과 품질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이 지부장은 올해 1월 취임 때부터 정 회장(당시 수석부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해 왔다. 이번 오찬은 당일 오전 문 대통령이 ‘친환경 미래차 현장 방문’ 행사를 열었던 만큼 그 직후 노사 간 자연스럽게 성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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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차그룹 총수가 정식으로 노조 지부장을 만난 건 2001년 정몽구 명예회장(당시 회장)이 노조 지도부와 만난 이후 무려 19년 만의 일이다. 오찬에서 정 회장은 “노사 관계 안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직원들의 만족이 회사 발전과 일치될 수 있도록 함께 방법을 찾아가자”고 언급했다.
그는 “전기차로 인한 신산업 시대에 산업 격변을 노사가 함께 헤쳐 나가야 한다”며 “변화에 앞서 나갈 수 있도록 합심하기 위해 회장으로서 최대한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또 정 회장은 “노사 간 단체협약은 매우 중요한 사안”이라며 “조합원들의 고용 불안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사가 함께 노력해야 한다”는 말도 꺼냈다.
지난 11월 1일에는 정 회장은 전주월드컵경기장을 찾아 전북현대와 대구FC 간 K리그 최종전 경기를 관람했다. 이날 전북현대는 극적인 우승을 차지했고 ‘라이언킹’ 이동국 선수는 자신의 선수 생활을 마무리 짓는 은퇴식을 했다.
이에 정 회장은 그라운드로 직접 내려와 이 선수를 안고 격려하며 팻말도 하나 전달했다. ‘2021 신형 럭셔리 미니밴’. 차 이름을 공개하지 않은 채 차종만 알려주며 차량 선물 전달식을 연 건 이례적이다. 이 때문에 당시 경기장을 찾은 이들도 이 선수가 받게 될 선물이 과연 어떤 차량일지 관심을 쏟아냈다. 후에 해당 차량은 내년 상반기 출시될 미니밴 ‘스타렉스’ 신형인 것으로 확인됐다. 업계 관계자는 “새 술은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이 있듯이 내년에 선보일 새 차를 선물한다는 건 새롭게 인생 2막을 열고자 하는 이 선수에게 정 회장이 보내는 축복어린 응원인 셈”이라고 전했다. 정 회장은 미국 CNN 방송 광고에 등장하기도 했다. 정 회장이 출연한 1분짜리 캠페인 영상은 지난 10월 17일부터 CNN 방송과 CNN 인터내셔널 등을 통해 전 세계에 전파를 타기도 했다. 정 회장은 회장 취임 이전부터 현대차그룹의 ‘순혈주의’ 전통을 깨고 과감한 인재 영입을 진행해 왔다. 특히 취임 후에도 활발한 영입 활동이 이어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30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방문해 전기·수소차 등 친환경차 생산라인을 돌아본 뒤 미래 공유형 콘셉트 차량인 M.비전S에 탑승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왼쪽)의 설명을 듣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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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회장은 지난달 초 디자인 기반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할 최고창조책임자(CCO)를 신설하고, 담당 임원에 지난 3월 일신상의 이유로 사임했던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을 재영입했다. 취임 후 첫 부사장급 이상 고위 임원 인사였다. 신설된 CCO는 현대차그룹의 브랜드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제반 업무를 수행한다. 일단 유럽 등지로 시장 확대를 앞둔 ‘제네시스’ 브랜드와 현대차의 첫 전기차 전용 ‘아이오닉’, 수소전기트럭 같은 친환경 모빌리티 등의 디자인 관련 커뮤니케이션에 집중할 계획이다. 동커볼케 부사장은 1990년부터 푸조·아우디·람보르기니·세아트·벤틀리 등 고급 차량 분야 책임 디자이너로서 활약한 뒤 2016년 1월 디자인센터장으로 현대차에 전격 영입됐다. 현대차와 기아자동차, 제네시스 브랜드 디자인을 담당하며 4년 넘게 일한 뒤 올해 3월 일신상 이유로 현대차를 사직했다. 유럽 완성차·부품업계에서 30여 년 경력을 쌓은 ‘영업통’ 악셀 마슈카 부사장도 11월에 글로벌 OE영업부문장으로 현대모비스에 합류했다. 현대모비스가 연구개발을 제외한 부문에서 외국인 임원을 영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며, 부여된 직급도 역대 최고 수준(부사장)이다. 지난 30여 년간 볼보, 보쉬, 콘티넨탈, 발레오 등에 몸담고 구매와 영업, 사업개발 등을 총괄했다. 특히 볼보와 르노 상용차 합병, 콘티넨탈과 지멘스 엔진·전장 부문 통합 등에 참여했고 볼보와 길리에서 구매총괄, 발레오에서 영업총괄 등을 역임하면서 정통 영업전략가로 자리매김했다.
제네시스 유럽법인(Genesis Motor Eu rope)에는 재규어·랜드로버 출신 마케팅 전문가를 영입했다. 제네시스 유럽은 17일 도미닉 챔버스(Dominic Chambers) 전 재규어·랜드로버 디지털 마케팅 글로벌 총괄 담당자를 마케팅 총괄 담당자로 선임했다.
그는 마케팅과 커뮤니케이션, 언론홍보(PR)를 담당한다. 디지털 마케팅 분야의 경험을 살려 현지 제네시스 콘텐츠 제작도 담당한다. 챔버스는 25년 경력의 현지 자동차 마케팅 전문가다. 아우디 영국 지역 마케팅 이사를 거쳐 영국의 고급차 브랜드인 재규어·랜드로버 디지털 마케팅 글로벌 책임자로서 온라인·소셜 채널을 위한 콘텐츠를 제작·확산해 왔다. 제네시스는 유럽 공략을 위해 공을 들이고 있다. 지난 4월에는 애스턴 마틴 출신의 엔리케 로렌자나 유럽 최고영업책임자(CSO)를 영입했으며 9월에는 아우디코리아 초대 법인장을 지냈었던 도미니크 보쉬를 제네시스 유럽 경영을 총괄하는 매니징 디렉터로 영입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디자인 기반의 브랜드 커뮤니케이션을 수행할 ‘CCO(Chief Creative Officer)’를 신설하고, 담당 임원에 루크 동커볼케 부사장(사진)을 임명한다고 밝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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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걸·공영운·이광국·지영조… 정의선의 사람들 주목
정의선 시대가 열리면서 소위 ‘정의선의 사람들’이 주목받고 있다. 이들은 2년 전인 2018년 가을 수석부회장 자리에 오른 뒤 주요 임원 인사에서 대거 중용됐다. 그중에서도 정 회장의 신임이 두터운 핵심 임원들은 대체로 젊은 감각을 지녀 기업 지향점에 따른 구조 개편에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정 회장이 수석부회장에 선임됐을 때부터 호흡을 맞춘 김걸 현대차 기획조정실장 사장과 공영운 현대차 전략기획담당 사장, 이광국 현대·기아자동차 중국사업총괄 사장, 지영조 전략기술본부장 사장, 장재훈 현대차 국내사업본부장 겸 제네시스사업부장 부사장 등이 핵심 인물로 꼽히고 있다.
김걸 사장은 계열사 관리 업무를 맡아 왔다. 특히 복잡한 순환 출자 방식의 현대차그룹 지배구조를 개편하는 데에도 김 사장의 역할이 클 것으로 보인다. 공영운 사장은 ‘전략기획통’으로 2005년 11월 현대차에 이사대우로 입사했다. 2009년에 이사, 2010년에 상무를 거쳐 해외정책팀장과 홍보실 부사장을 거친 뒤 2018년 사장으로 올라서는 등 10년 만에 초고속 승진을 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이광국 사장은 마케팅 전문가다. 작년 부사장에서 사장으로 승진해 글로벌 자동차 산업 최대 격전지인 중국에서 현대차 운명을 책임지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현대차 국내사업본부장과 해외정책팀장, 수출지원실장, 영국판매법인장을 거치며 풍부한 사업 경험과 대내외 네트워크를 쌓았다. 지영조 전략기술본부장 사장은 현대차의 미래를 책임지고 있다. 모빌리티와 도심형 비행체 등 현대차의 핵심 미래 기술 개발에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어서다. 미국 브라운대 응용수학 박사 출신으로 맥킨지 등 글로벌 컨설팅 회사를 두루 거쳤고 삼성전자에서 부사장도 역임했다. 현대차는 2017년 지 사장을 영입함과 동시에 미래 사업 투자를 전담하는 전략기술본부를 신설했고 그를 본부장 자리에 앉혔다. 장재훈 부사장은 경영지원본부장 직함을 가진 상태에서 지난해 말 인사 때 국내사업본부장, 그리고 올해 8월부터 제네시스사업부장 등 3가지 중책을 맡았다. 올해 현대차그룹이 실시한 자율 복장 제도와 직급 체계 개편 등을 추진했고, 경영진과 직원들의 소통 무대인 타운홀 미팅도 주도했다.
[서동철 매일경제 산업부 기자]
[본 기사는 매경LUXMEN 제123호 (2020년 12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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