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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몰카 있나 바로 찾아드립니다···‘007가방’ 빌려주는 공무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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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없는 화장실’ 공들이는 지자체

경기 군포, 탐지 장비 무료 대여

서초 구민 “몰카보안관 늘려 달라”

성남은 전국 첫 피해자 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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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지혜 경기도 군포시청 여성가족과 주무관이 한 시민에게 불법촬영 카메라 탐지 장비를 빌려주고 있다. 채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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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기 주변이나 쓰레기통·환풍구 등에 주로 숨겨져 있다고 하니 샅샅이 점검해보세요.” 26일 오전 10시 경기도 군포시 군포2동 행정복지센터. 오지혜 여성가족과 주무관은 이같이 말하며 묵직한 은색 가방을 이근선(63)씨에게 건넸다. 언뜻 보면 ‘007 가방’을 떠올리게 하는 이 가방엔 불법촬영 카메라를 탐지할 수 있는 전자파 탐지기와 렌즈탐지기 등이 담겨있었다. 이씨는 “누구나 들락거릴 수 있는 1층 상가 화장실에 ‘몰카’(몰래카메라)가 있을지 모른다며 주변에서 무서워해서 장비를 빌리러 왔다”고 말했다.

군포시는 지난 13일부터 시민에게 불법촬영 카메라 탐지 장비를 3일간 무료로 빌려주고 있다. 또 지난 6월부터는 전담반 4명을 편성해 관내 129개 공중화장실 등을 대상으로 불법촬영 카메라 설치 여부를 매일 점검하고 있다. 김철홍 군포시청 여성가족과장은 “혼자 사는 여성이 누군가 자신을 찍는 듯한 기분이 든다며 불안해하는 민원 전화가 종종 걸려온다”며 “몰카 탐지기 대여 사업과 몰카 단속 활동은 시민 불안감을 해소하고 범죄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하루 16건 발생하는 불법촬영 범죄, 지자체 대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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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불법촬영 범죄 발생 현황. 그래픽=김은교 kim.eungy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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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청에 따르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지난 4년간 전국에서 불법촬영 범죄가 매년 5800건 안팎으로 발생했다. 하루에 16건씩 관련 범죄가 일어나는 꼴이다. 불법촬영 등 디지털 성범죄가 그칠 줄 모르면서 이를 뿌리뽑기 위해 팔을 걷어붙인 지자체가 늘고 있다. 군포시 외에도 경기도 안산시와 충남 공주·천안시 등이 시민에게 불법촬영 카메라 탐지 장비를 무상으로 대여해주고 있다.

불법촬영 범죄로부터 안전한 화장실을 만들겠다고 나선 지자체도 많다. 화장실이 여성에게 범죄 가능성이 도사리는 위험 장소로 인식된다는 이유에서다. 경기도는 내년부터 공중·민간 화장실 1000여곳에 화장실 칸막이 아래 틈을 막는 ‘안심 스크린’과 ’안심 비상벨’을 설치하기로 했다. 서울 서초구는 올해 ‘몰카보안관’ 사업 3년차를 맞았다. 서초 몰카보안관은 그동안 관내 공중·민간 개방 화장실과 숙박시설 등 8만9701곳을 점검했다. 최근 서초구민 500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몰카보안관의 필요성과 만족도는 72.2%(361명)로 나타났다. 서경란 서초구청 여성보육과장은 “점검 대상 시설을 확대해달라는 주민 요청을 받아들여 내년에는 관내 학원과 민간 건물 등도 점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책 실행 후 여성 삶 나아졌나” 의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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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군포시의 한 여자화장실에 불법촬영 금지를 알리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채혜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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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촬영을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는 유출·삭제 등 문제로 피해자가 홀로 대응하기 어렵다. 이 같은 범죄 특성을 고려해 지자체는 피해자 지원 사업에도 착수했다. 경기도 성남시는 지난 10월 지자체 가운데 처음으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통합지원센터를 열었다. 센터 내 분야별 전문가 7명이 디지털 성 착취 피해자나 불법 촬영·유포·협박 피해자의 심리상담과 법률지원 등을 돕는다. 경기도도 같은 달 디지털 성범죄 피해 지원 관련 전담 조직을 구성했다. 이순늠 경기도 여성가족국장은 “이 전담 조직을 내년 초 ‘경기도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 원스톱지원센터’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보다 체계적인 시스템을 갖춰 효과적으로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다만 지자체가 추진하는 관련 대책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이효린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사무국장은 “지자체 몰카 단속 적발 건수는 대부분 0건으로 알고 있다. 실적이 정책의 실효성을 보여준다”며 “정책 실행 후 실제 여성들의 삶이 안전해졌는가를 반문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사무국장은 “디지털 성범죄의 원인은 불법촬영 카메라가 아니라 사회 구조적 문제라는 걸 인식하고, 실질적으로 여성이 일상에서 침해받고 있는 문제들을 보완해나가는 방향으로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

채혜선·최모란 기자 chae.hyes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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