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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04 (토)

“좋은 집 공급” 말하더니, 건설사에 임대 빌라 지으라는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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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부, 아파트 용지 공급할 때

다가구 임대 건설 실적 등 평가

“다세대 임대 늘리려 민간 팔 비틀어

주거 개선은 공공이 해야할 역할”

중앙일보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오른쪽 둘째)이 26일 서울 플라자호텔에서 열린 해외건설기업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국토부는 이날 올해 해외건설 수주액이 300억 달러를 넘겼다고 밝혔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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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부터 공공택지에서 건설사가 민간분양 아파트 용지를 공급받으려면 다세대·다가구 매입임대 주택 건설 실적이 있어야 유리하다. 국토교통부가 땅 공급 방식을 추첨제에서 평가제로 바꾸면서 ‘매입임대 및 공공전세주택 참여 실적’을 보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이 실적이 우수한 민간업체에 우선 공급권을 주거나 가점을 주겠다는 방침이다. 국토부는 이런 내용이 담긴 ‘공동주택용지 공급제도’ 개선 방안을 26일 발표했다.

정부가 조성해 공급하는 공공택지 내 민간분양 건설용지는 1984년부터 추첨제로 배정했다. 정부가 36년 만에 이 방식을 바꾸려는 것은 ‘벌떼 입찰’ 탓이다. 한 건설회사가 페이퍼컴퍼니 같은 50개의 다른 회사를 동원해 추첨 확률을 높이는 편법을 쓰는 식이다. 3기 신도시 본격 공급을 앞두고 국토부가 이를 개선하려고 나선 것이다.

정부는 내년부터 민간분양 아파트용지를 3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평가제로 뽑을 방침이다. ▶공공임대주택건설 의무화 유형 ▶공모 리츠를 통한 국민과 이익공유형 ▶설계공모전을 통한 특화설계 유형이다. 민간분양 아파트 용지의 40%는 기존대로 추첨제를 유지하고 60%를 평가제로 운영한다.

취지는 좋고 개선은 필요하나, 평가제 운용 방법이 공개되자 우려의 목소리가 쏟아진다. 정부가 평가제에서 주택 품질과 관련한 각종 지표와 더불어 ‘공공기여’를 강조하면서다. 민간 분양 아파트를 짓는 땅을 공급받으면 임대주택을 의무적으로 지어야 하거나, 다세대·다가구 매입 임대주택 건설 실적 등을 평가하는 조건을 붙였다. “국토부가 토지개발독점권을 휘두르며 정권의 목표인 공공임대주택 건설과 관련된 사회적 비용을 민간에 넘기고 있다”(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지적이 당장 나온다.

공공임대주택건설 의무화 유형의 경우 지금까지 민간분양 아파트에 없었던 공공임대주택 의무건설비율이 10% 내외로 부과된다. 민간 건설사가 소셜믹스를 얼마나 잘 계획했는지가 중요한 평가지표다.

현재 공공주택 특별법에 따라 공공택지를 조성할 때 전체 공급량의 최소 35%를 공공임대로 짓게 돼 있다. 이에 따라 3기 신도시의 경우 공급량의 60%가량이 공공임대 및 공공분양 몫이고, 나머지가 민간분양으로 공급된다. 그런데 이 민간분양 몫에도 임대주택을 더 짓게 하는 방침이 나온 것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공공이 주도해 짓는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품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에 따라 민간 건설사가 양질의 주택을 지으면 이를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매입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허윤경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민간에서 지은 임대주택을 LH가 사간다 해도 건설사 입장에서는 10%만큼 일반 분양을 못하니 민간분양 택지비 단가가 올라가게 되는 것”이라며 “건설사들이 많은 이윤을 취하고 있으니 공공기여를 더 하라는 것이 정부의 기본 인식”이라고 말했다.

다세대·다가구 매입임대 및 전세 주택 건설 실적을 엮은 것도 논란이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대형 건설사가 다세대·다가구 시장에 들어가지 않았던 이유는 결국 사업성이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국 양질의 다가구·다세대 임대주택 공급 명목으로 중견 및 대형 건설사의 팔 비틀기를 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중견·대형 건설사가 참여하면 양질의 다세대·다가구 임대주택을 공급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아파트 선호 현상은 인프라의 질적 차이에서 발생한다. 김준형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다세대·다가구가 있는 동네의 주거환경을 개선해야 하는 것이 더 우선이고, 이는 건설사가 아니라 공공이 투자해야 할 몫”이라고 말했다.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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