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시절 유승민 전 의원의 모습(좌), 부산 용두산 공원에서 기념 사진을 찍은 중학생 유승민과 아버지 유수호 전 의원.(우)[사진=유승민 전 의원측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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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에 있는 대륜중·경북고를 나왔다. 야구부가 유명한 경북고를 다니면서 그는 야구광이 됐다. 고3 수험생이었던 1975년 경북고가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결승전에 진출하자 주저 없이 학교를 빼먹고 경기를 보러 갔을 정도다. 가장 좋아하는 구단은 삼성 라이온즈다. 훗날 삼성 라이온즈 출신 류중일 감독, 양준혁 선수와 친분을 맺는다.
‘경제학' 세상 구하는 학문이란 믿음
1976년 대입 예비고사에서 전국 3등을 하고 서울대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세상을 바꾸는 학문은 경제학이라고 믿었다. 아버지는 판사, 형은 변호사로 집안 식구들이 다 법대 출신이라 법대에 가기 싫은 마음도 컸다고 했다. 1979년 그는 군대에 입대해 수도경비사령부(현 수도방위사령부) 33경비단에 배속됐다.
수도경비사령부 근무 시절. 군복 입은 사람이 유 전 의원.[사진=유승민 전 의원측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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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을 졸업한 후 1982년 국책연구소 한국개발연구원(KDI)에 연구원으로 취업했다. KDI 경제학자들이 국가 경제 정책을 만드는 것에 감명받아 1983년 미국 유학을 떠났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4년간의 유학 생활을 끝낸 유 전 의원은 귀국해 선임연구위원으로 KDI에 복귀했다.
이곳에서 재벌 정책을 깊이 연구했다. 문어발식 규제를 할 게 아니라, 레드라인을 정하고 그 선을 넘는 재벌 권력에 대해 철퇴를 가하자는 게 그의 지론이다.
이회창과 만나다
1997년 외환위기(IMF)가 터지자 그는 '경제위기 극복과 구조조정을 위한 종합 대책' 보고서를 작성하는 업무를 맡았다. 1998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한국에 방문해 원탁회의를 열었을 때 유 전 의원도 대사관의 초청으로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그는 한국의 재벌 정책에 대한 소신을 밝혀 화제가 됐다.
1998년 11월 21일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주재한 원탁간담회에 초청 받은 유승민 전 의원(맨 오른쪽 두번째)의 모습.[사진=유승민 전 의원 측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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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김대중 정부가 추진하던 빅딜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의 저서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에 따르면 이런 태도 때문에 청와대로 불려가 쓴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KDI에선 외부 토론회를 나갈 때 사전 허락을 받는 지침이 갑자기 생기기도 했다. 압박을 받던 중에 유 전 의원은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로부터 경제 현황을 설명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때 만남이 인연이 돼 그는 1999년 정치권에 입문했다.
2000년 2월 14일 이회창 한나라당 총재로부터 여의도연구소장 임명장을 받는 유승민 전 의원의 모습[사진=유승민 전 의원측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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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총재는 유 전 의원에게 한나라당 정책연구소인 여의도연구소(현 여의도연구원)를 맡겼다. 정치 연설을 쓰는 건 물론 대북·복지·노동·교육·젠더 정책에 관해 토론하고 대안을 내놓는 고된 훈련을 거쳤다. 그러나 2002년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이 총재가 패배하자 그도 잠시 여의도를 떠났지만, 이듬해 1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한나라당 비례대표로 초선 의원이 돼 다시 여의도로 돌아왔다.
朴의 비서실장 "할 말은 하겠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는 2005년 1월 처음 인연을 맺었다.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전 대통령이 그에게 비서실장직을 제안했다. 그는 "할 말은 하겠다"는 조건으로 이를 수락했다. 원조 친박이었던 셈이다. 같은 해 10월 당 지도부는 비례대표 생활을 1년밖에 하지 않은 그에게 대구 동구을 재보궐 선거에 출마하라고 권유했다.
신임 당직자들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박근혜대표가 당직자와 손을 잡고 있다.좌로부터 유승민비서실장,박대표,김무성사무총장,전여옥대변인.[사진=매경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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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에서 이겨 지역구 의원이 된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박근혜 캠프에 합류했다. 정책메시지단장을 맡았지만 박 전 대통령 측과 번번이 다른 입장을 보였다. 특히 감세 정책에선 생각의 차이가 컸다. 박 전 대통령 측과 서서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탈박·비박으로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출마하며 정치인 유승민의 홀로서기가 시작된다. '용감한 개혁'이란 화두를 던진 그는 전당대회에서 2위를 차지해 최고위원이 됐다. 다만 디도스 공격 사태 등에 책임을 지고 당 지도부가 10개월 만에 총사퇴했다. 이후 박근혜 비대위 체제가 들어섰다. 비대위가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꾸는 걸 그는 반대했다. 이때부터 탈박·비박으로 분류됐다.
박 전 대통령과의 갈등은 그가 2015년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된 후 정점을 찍었다. 의회주의자인 그는 여당 현역 의원 3명이 대통령의 정무 특보가 되자 "삼권분립에 어긋난다"고 했다. 같은 해 4월 이뤄진 국회 원내대표 연설에서도 유 전 의원은 박근혜 정부의 '증세 없는 복지' 정책에 대해 허구라고 정면 비판했다.
배신자 낙인과 공천 배제
사달은 공무원 연금개혁을 이루기 위해 야당의 국회법 개정 요구를 수용하면서 났다. 박 전 대통령은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했다. 나아가 2015년 6월 25일 국무회의에서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국민이 심판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유 전 의원은 거센 사퇴 압박을 받았다.
2015년 7월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8일 국회 정론관에서 사퇴 기자회견하고 있다.[사진=이충우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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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전 대통령 지지도가 높은 대구에선 배신자로 낙인 찍혔다. 압박이 가해진지 13일 만에 그는 원내대표직을 내려놨다. 당시 기자회견에서 유 전 의원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천명한 우리 헌법 1조 1항의 지엄한 가치를 지키고 싶었다"고 토로했다.
20대 총선을 코앞에 둔 2016년 그는 끝내 공천을 받지 못했다. 그와 친분이 있는 비박계 인사들도 줄줄이 공천에서 배제됐다. 결국, 그는 새누리당을 탈당하고 무소속으로 출마했다. 당시 그는 "이건 민주주의가 아닌 부끄럽고 시대착오적인 정치보복"이라고 지적했다. 끝내 선거에서 이겨 그는 20대 국회의원이 됐다.
이후 차기 대권 주자로 떠올랐다. 반대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은 참패를 당해 원내 제1당의 지위마저 뺏겼다. 의석수 1개가 아쉬운 상황에 놓이자 당은 결국 2016년 6월 그의 복당을 허용했다.
바른정당 창당과 대선 출마
4개월 뒤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다. 특검 수사가 진행됐고 국회에선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발의됐다. 유 전 의원과 비박계는 탄핵안에 찬성표를 던졌다. 2016년 12월 9일 탄핵안은 찬성 234표로 국회 문턱을 넘었다. 새누리당 친박 의원들은 이를 두고 비박계와 결별을 선언했다.
2017년 1월 24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바른정당 창당대회.김무성, 유승민 의원 등이 국정농단 등에 대한 사죄의 의미로 무릎을 꿇고 있다. [사진=이충우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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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전 의원과 김무성 전 의원을 필두로 한 비박계 29명은 결국 집단 탈당해 '바른정당'이란 새로운 당을 만들었다. 보수 정당이 총선과 무관하게 갈라선 건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새누리당은 이후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이 바뀐다.
2017년 3월 유 전 의원은 바른정당의 19대 대통령 선거 후보로 공식 선출됐다. 하지만 선거를 코 앞에 두고 바른정당 의원 13명이 좌파 집권 저지를 명분으로 탈당해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를 지지하고 나섰다. 정치적 치명상을 입은 유 전 의원은 "힘들고 외롭다"면서도 "개혁 보수 역할을 끝까지 하겠다"며 선거를 완주했다. 그 결과 득표율 6.76%를 받아 4위로 낙선했다.
바른정당은 이후 보수 통합파와 자강파 간의 극심한 갈등을 빚었다. 결국, 통합파 상당수가 자유한국당으로 돌아가 바른정당은 의원수가 9명까지 줄어든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바른정당 유승민 대표가 2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확대운영회의에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통합해 만드는 신당의 이름을 "미래당"으로 결정한 뒤 당명을 들어 보이고 있다. 2018.2.2 [바른정당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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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전 의원도 리더십에 타격을 입었다. 그러자 그는 중도보수가 함께 가야 한다며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손을 잡았다.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은 2018년 2월 '바른미래당'으로 합쳐졌다. 하지만 당내 중도와 보수 성향 의원들은 잘 융합되지 못했다. 지지율 정체가 계속되고 손학규 대표와 의원들이 극한 대립하자 바른미래당은 2년 여 만에 다시 쪼개졌다.
다시 한번 대선 도전
유 전 의원을 비롯한 바른정당 출신 의원들은 2020년 1월 '새로운보수당'을 창당했다. 그러나 21대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새로운보수당은 보수 통합이란 명분 아래 자유한국당과 하나가 된다. 두 개 보수 정당이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으로 합쳐진 것이다. 다양한 형태로 제3 지대 구축을 시도했으나 소수 정당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단 평가가 나왔다. 합당 과정에서 유 전 의원은 21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유승민 전 의원이 18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앞 태흥빌딩 "희망 22" 사무실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이번 기자간담회는 지난 2월9일 총선 불출마를 위한 기자회견 이후 9개월여 만에 열렸다. [사진=김호영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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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 전 의원은 최근 21대 총선 이후 7개월간 이어진 잠행을 끝내고 여의도로 복귀했다. 그는 지난 16일 국회 인근에 대선 준비를 위한 캠프인 '희망22' 사무실을 새로 열었다. 이틀 뒤 이어진 기자간담회에서 그는 2022년 대권 재도전을 공식화했다. 정치권에서 나오는 내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차출론에 대해선 "한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일축했다.
유 전 의원 앞에 놓인 최대 과제는 보수 지지층의 마음 얻기다. 박 전 대통령과 대립한 그에게 등을 돌린 영남권 표심을 잡지 못하면 지지율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란 분석이다.
그를 돕는 사람들은 누구
대권 재도전을 선언한 만큼 그의 측근에게도 관심이 모인다. 현역 중에선 새로운보수당 출신 김웅·유의동·하태경 의원 등과 가깝다. 김희국·류성걸·조해진 의원은 친유계 인사란 이유로 20대 총선을 앞두고 공천 배제를 당한 바 있다. 세 의원은 이후 21대 총선에서 승리해 국회로 돌아왔다.
유 전 의원의 지역구였던 대구 동구을 현역인 강대식 의원도 대표적인 친유계 인사다. 신원식 의원 역시 바른정당 창당 작업에 참여했고 19대 대선 당시 유승민 캠프에서 안보특위 위원장을 지냈다. 유경준 의원은 유 전 의원과 서울대 경제학과 동문이다. 두 사람은 KDI에서 함께 근무하기도 해 개인적인 친분이 깊다.
원외 인사로는 지상욱 여의도연구원장, 오신환·정병국·구상찬·이종훈·민현주·진수희·김성동 전 의원, 이준석 전 최고위원, 권성주 전 바른미래당 혁신위원등이 친유계로 분류된다. 이들은 바른정당·바른미래당·새로운보수당으로 이어진 유 전 의원의 정치 행보를 모두 함께했다. 김세연·홍철호 전 의원도 바른정당에 참여한 바 있다.
어록
1. "돈 쓰는 데는 귀신이고 돈 버는 데는 무능하다면, 그 나라의 앞날은 파탄 뿐" (2021년 3월 3일,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글에서 가덕도신공항특별법 통과에 대해 비판하며)
2. "경제가 성장하면 저출산,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기 수월해진다" (2021년 3월 3일,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글에서 다음 대통령은 경제 살리는 대통령이 돼야 한다고 밝히며)
3. "가덕도 신공항이 국비로 건설된다면 대구·경북신공항도 당연히 전액 국비로 건설돼야 한다" (2021년 2월 23일,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 페이스북 글에서 가덕도신공항특별법을 제정했듯이 대구·경북신공항 특별법 제정을 촉구한다며)
4. "세금으로 하는 매표행위" (2021년 2월 20일,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글에서 코로나19 상황이 진정되면 '국민위로금' 지급을 검토하겠다는 정부를 비판하며)
5. "대통령이 먼저 맞아야 불신 없앨 수 있다" (2021년 2월 19일,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글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대통령이 1순위로 맞아야 한다고 주장하며)
6. "대통령의 머리 속에 시장은 없고 공공만 있다" (2021년 2월 17일,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글에서 대통령이 1분기 공공부문에서 90만개 이상의 일자리를 만들 것을 지시한 것을 겨냥)
7. "북한방송을 보는 착각에 빠질 정도로 심한 문비어천가" (2021년 1월 19일,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글에서 전일 있었던 대통령 회견의 이낙연 대표와 이재명 지사가 아부경쟁을 펼쳤다며)
8. "文, 세월호 선장과 무엇이 다른가" (2021년 1월 2일,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글에서 요양병원과 구치소의 생명과 인권 문제가 일어나고 있음에도 정부가 코호트 격리만 고집한다며 빗대어 비판하며)
9. "왜 대통령은 저런 거짓말을 태연하게 할까" (2020년 12월 24일,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글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코로나19 백신 준비를 잘하고 있다고 말한 것에 대해 거짓이라고 비판하며 )
10. "우리는 지금 지킬앤하이드 뮤지컬을 보고 있는 건가" (2020년 12월 7일,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글에서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을 둘러싼 혼란상을 의식한 메시지 문 대통령의 '민주주의와 개혁을 위한 마지막 진통'라는 말에 대해 비판)
11. "여가부 해체가 정답" (2020년 11월 6일, 유승민 전 국민의힘 의원, 페이스북 글에서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문 의혹으로 치러질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를 언급하며)
12. "역사와 주권은 타협할 수 없지만, 경제와 안보를 위해서는 협력해야 할 이웃이 일본" (2019년 7월 14일, 유승민 바른미래당 의원, 페이스북 글에서 문 대통령은 일 총리를 만나 외교를 해결하라며)
13. "군복무를 18개월로 단축하는 것은 국방예산, 부사관 충원 등 여러가지 사안으로 볼 때 사실상 불가능"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박근혜 당선인의 군 복무 기간 단축 공약 백지화를 주장하며)
14 "종북신부들을 척결하는 자정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나야 한다" (2013년 11월 24일,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 성명서를 통해 박창신 신부의 "한미 군사훈련 때문에 연평도 포격이 발생했다"는 취지의 말을 비판하며)
15 "동남권 신공항 사업을 임기 말에 백지화, 있을 수 없는 일" (2011년 3월 29일, 유승민 한나라당 의원, 대구경북 국회의원들의 밀양 신공항 유치 요구 위한 긴급대책회의 중)
[이희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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