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1.16 (토)

이슈 미술의 세계

국민 품에 안긴 추사 세한도, 14년 만에 14m '완전체' 특별공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대 이은 기부 손창근 선생 '국가 기증' 계기

한·중 문인 20인 감상 포함 전체 실물 공개

국립중앙박물관 18점 내년 1월까지 전시

중앙일보

23일 오전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에서 참석자들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를 살펴보고 있다. 국보 180호 세한도는 올 초 소유자 손창근 선생이 국가에 기증하면서 국민 전체의 것이 됐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세한도 두루마리의 전체 크기는 위 사진처럼 가로로 길쭉한 33.5x1469.5cm에 이른다. 원래는 약 70cm 길이지만 청나라 문인 16인과 한국인 4인의 감상 글이 두루마리에 담기면서 이렇게 대작이 됐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내년 1월 31일까지 계속되는 특별전 ‘한겨울 지나 봄 오듯 - 세한(歲寒)·평안(平安)’전을 통해 14년 만에 전체 실물이 공개된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어둠을 뚫고 입장한 전시실의 15m 넘는 한쪽 벽면에 기다란 유리진열대가 놓여 있다. 총 길이 14m 69.5㎝에 이르는 국보 제180호 '세한도'의 나들이다. 추사 김정희(1786∼1856)가 말년에 제주도 유배살이를 하며 벗에게 감사의 마음을 표한 ‘원조’ 그림은 이 가운데 약 70㎝ 길이. 나머지는 모두 세한도를 칭송한 청나라 문인 16인과 한국인 4인의 감상 글로 비단으로 꾸민 두루마리에 담겨 있다. 왕조가 망하고 국호가 바뀌고 전란과 경제 융성을 거치는 동안 여러 손에 물려오다 마침내 ‘국민 전체의 것’이 된 세한도가 이렇듯 ‘완전체’를 드러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기탁돼 있다가 올 초 소유자 손창근(91) 선생이 국가 기증을 결정한 ‘세한도’가 23일 14m가 넘는 전체 실물로 공개됐다. 이날 언론 공개회를 시작으로 내년 1월 31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계속되는 특별전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전을 통해서다. 세한도의 완전체 공개는 지난 2006년 ‘추사 김정희-학예일치의 경지’전 이후 이번이 처음. 1부 ‘세한’에선 세한도를 포함해 추사 관련 작품 15점이, 2부 ‘평안’에선 조선 후기 ‘평안감사향연도’ 3점 등 총 18점의 서화가 공개된다. 박물관 측은 “한겨울 추위인 세한을 함께 견디면 곧 따뜻한 봄날 같은 평안을 되찾게 될 거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전시를 준비한 이수경 학예연구관은 “2005년 용산 이전 이후 네번째 세한도 전시인데 그 전엔 공간 문제로 한차례 외엔 다 펼치지 못했다. 이번엔 작심하고 특수진열장을 마련했다”고 설명했다. 지난달 막을 내린 ‘새 보물 납시었네-신국보보물전’에서 선보였던 8m 넘는 ‘강산무진도’보다 훨씬 긴 진열대다. 두루마리 앞쪽 바깥의 비단 장식 부분까지 펼쳐 청나라 문인 장목(1805~1849)이 쓴 ‘완당세한도(阮堂歲寒圖)’ 제목부터 볼 수 있게 했다.

'세한'은 논어의 '한겨울 추운 날씨가 된 다음에야 소나무와 측백나무가 시들지 않음을 알게 된다'(歲寒然後 知松柏之後凋)'에서 왔다. 문구 자체는 절개와 의리를 말할 때 종종 등장하지만 이를 주제로 한 문인화로서 전해지는 것은 추사의 것이 유일하다. 당시 59세였던 추사는 황량한 유배지에서 자신에게 매년 책을 보내준 제자 이상적(1804-1865)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단출하지만 격조 높은 이 그림에 담았다. 이를 이상적이 중국 사행 때 들고가 청나라 문인들의 글귀를 받은 것을 시작으로 백 수십년간 국적을 막론한 감상평이 덧붙여지면서 지금과 같은 대작이 됐다. 중간중간 공백은 다른 문인들의 글을 받으려고 남겨놨던 공간으로 추정된다.

중앙일보

2020년 1월 미술품 소장가 손창근씨로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 기증된 국보 180호 세한도(歲寒圖). 추사 김정희(1786~1856)의 대표작으로 그가 1844년 제주도에서 귀양살이를 하고 있을 때 그린 것이다. 원래는 가로 69.2㎝, 세로 23㎝ 크기인데 이후 청나라 명사 16명에게서 받은 감상문을 비롯해 근현대의 오세창, 정인보 등의 글이 붙어 총길이 10m 넘는 두루마리 대작으로 변했다.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중앙일보

세한도 부분. [사진 국립중앙박물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시에선 당대 문장가들의 빼어난 필체를 그대로 감상하되 한글 해설문을 곁들여 관객의 이해를 도왔다. 예컨대 위당 정인보(1893~1950)의 글에는 “시절은 도탄에 빠지고 핍박은 갈수록 심해져 후미진 산골짜기로 도피할 것을 꾀하느라 바빠서 시를 지을 겨를이 없었다. 나라가 광복을 찾게 되어 손군과 서울에서 다시 만났을 때 다시 이 그림을 내놓고 서로 마주보면서 감개에 젖었다”는 내용이 있다. 이애령 미술부장은 “위당 선생이 한국전쟁 때 납북되기 전 1949년 남긴 글”이라면서 “여기서 손군은 서예가이자 국회의원을 역임한 손재형(1903-1981) 선생으로 그가 오세창(1864~1953), 이시영(1869~1953) 선생 등에 청해 받은 글을 엮으면서 현재와 같이 비단 장황을 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손재형 선생은 일본인 후지쓰카 지카시(1879-1948)로부터 1944년 태평양전쟁 폭격 직전 세한도를 찾아왔다. 훗날 이를 인수한 이가 개성 출신의 실업가 손세기 선생이다. 그의 아들 손창근 선생은 선친의 고서화를 포함한 컬렉션 304점을 2018년 중앙박물관에 기증하면서 세한도 한점만은 빼놓았을 정도로 애착을 보였다. 마침내 세한도까지 포함해 총 203건 305점을 국가에 기증한 손 선생에 대해 12월 초 서훈 수여가 예정돼 있다.

중앙일보

2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에서 참석자들이 전시장 초입의 영상물 '세한의 시간'을 관람하고 있다. 전시는 오는 24일부터 내년 1월 31일까지 열린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선 세한도를 초고화질 디지털 스캐너로 스캔해 최대 14배 크기로 확대한 세부를 감상할 수 있다. 건조하고 황량한 한겨울 즉 ‘세한’을 표현하기 위해 물기 없는 마른 붓에 진한 먹물을 묻혀 사용한 필법이 생생하게 돋보인다. 이밖에 추사 말년의 묵란화 ‘불이선란도(不二禪蘭圖)’ 등 관련 작품과 영상 5건을 통해 세한도 제작 배경과 전래 과정을 알려준다. 특히 프랑스 영화 제작자 겸 미디어 아트 작가 장 줄리앙 푸스가 제작한 영상 ‘세한의 시간’을 전시장 초입에 배치, 이방인인 그가 제주도 풍경을 빌어 포착한 김정희의 고독과 절망, 성찰의 과정을 엿보게 했다.

중앙일보

23일 서울 용산구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린 특별전 '한겨울 지나 봄 오듯-세한(歲寒)·평안(平安)'에서 참석자들이 2부 '평안' 전시장에서 월야선유도의 대동강에서 열린 밤의 잔치 장면(미디어아트)을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한편, 전시 2부 ‘평안’은 조선 관리들이 선망했던 평안감사 부임순간의 흥겨움을 ‘평안감사향연도’ 3점을 주축으로 살렸다. ‘평안감사향연도’는 김홍도 유파가 그린 것으로 짐작되는 기록화로 부벽루, 연광정, 대동강 등에서 열린 세 번의 잔치를 묘사했다. 전시에선 모션 캡처 등을 활용한 대형 미디어아트도 곁들여 옛 그림을 역동적으로 감상할 수 있게 했다.

민병찬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날 인사말에서 “값을 따질 수 없는 무가지보(無價之寶)를 국민에게 기꺼이 주셔서 모두 감상할 수 있게 해준 손창근 선생과 그 가족에게 깊이 감사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세한도는 쓸쓸한 그림이지만 이어지는 ‘평안’에서 기쁜 마음 갖고 가시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24일부터 사회적거리두기 2단계에 따라 전시는 30분당 50명 입장(인터넷 사전예약 40명) 가능하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중앙일보 '홈페이지' / '페이스북' 친구추가

이슈를 쉽게 정리해주는 '썰리'

ⓒ중앙일보(https://joongang.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