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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이슈 만화와 웹툰

“발로 뛴 만화…청송교도소 대도, 한국 최고 제비도 만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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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만화 재조명 받는 김성모 작가

2002년 연재한 ‘대털’ 다시 패러디

“내 만화는 80~90년대식 극화체

스토리 쓰려 현장 찾아 얘기 들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2002년 만화가 김성모(51) 작가가 일간스포츠에 연재한 ‘대털’에 등장하는 이 문장이 여러 광고는 물론 홍보 영상, 채용 공고문에까지 쓰이고 있다. 시대를 건너뛰어 온라인 시대 ‘밈’(meme·화제가 되는 콘텐트를 인터넷상에서 패러디하며 갖고 노는 현상) 문화와 결합해 날개를 단 것. ‘럭키짱’ ‘용주골’ 등 김 작가의 히트작도 재조명되는 분위기다. 16일 부천 작업실에서 그를 만났다.

중앙일보

김성모 작가는 ’내 작품은 인간의 절망, 좌절 거기서 피어오르는 희망, 도전, 성공, 또 파멸의 이야기“라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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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더 이상의 … ”란 대사는 어떻게 나왔나.

A : “범죄에 이용되는 적외선 굴절기 만드는 방법을 알아냈다. 이걸 설명하려다 ‘어, 이거. 누가 만들 거 아니야’ 싶었다. ‘더 이상은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라고 적고는 마땅히 넣을 그림이 없어 주인공 얼굴을 넣었다.”

Q : 꼼꼼한 취재력으로 유명한데.

A : “‘빨판’이라는 제비족 만화를 그릴 때는 여성 1500명을 농락한 한국 최고 제비를 만났다. 삼정호텔 ‘돈텔마마’라는 클럽에서 만나 ‘문하생으로 들어가 한 번 배워보겠다’고 했다. 온갖 기술을 배웠다. 지금 뛰어도 자신 있다.(웃음) 건달을 취재하고 싶으면 (내가) 건달이 된다. 사채를 소재로 (작품을) 해볼까 하고는 5000만원 빌려서 안 갚아 봤다. 얼마나 위험했겠나. 주로 건달이나 호스티스, 사채업자, 강도 이런 사람들 취재하다 보니 칼도 많이 맞아보고…. 내 외관이 정상 같지만 뼈도 많이 부러지고 날이 추워지면 시리다.”

Q : 범죄자를 취재하면서 감방 영치금도 내줬다고 들었다.

A : “범죄자들은 밖에서 물어보면 귀찮으니까 잘 만나주지 않는다. 그런데 감옥에 들어가면 도망갈 데가 없다. ‘징역 수발해줄 테니 당신의 일대기를 써봐라. 기술도 써봐라’하고 제안하면 ‘신경 써주니 고맙다’면서 성심성의껏 응해준다.”

Q : ‘대털’도 그렇게 취재했나.

A : “보통 ‘대도’라고 하면 조세형을 치는데, 누군가 ‘진짜’는 따로 있다면서 ‘김강룡’을 만나보라고 하더라. 그래서 청송교도소로 찾아갔다. 그가 법원에 제출하려고 과거 행적을 써놓은 것이 있더라. ‘1000만원 줄 테니 주십쇼’하고 갖고 왔다. 거기서 기술을 많이 배웠다. 예전에 아파트 현관문에 우유통을 통해 기계를 넣고 모니터로 보면서 문 여는 범죄가 있었다. 그게 제 만화에서 나오고 1주일 만에 (사건) 기사가 터져서 난리가 났다.”

중앙일보

’더이상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가 등장한 ‘대털’의 장면 . [유튜브 캡처]


매춘을 다룬 작품 ‘용주골’ 작업을 위해 그는 두 달 정도 용주골에서 살기도 했다. “스토리는 작가가 직접 들어야 한다. 사업 망한 사람으로 위장해 숙박업소에서 두 달간 업소 여성, 포주, 건달들과 얘기하며 산 뒤 ‘용주골’을 냈는데 대박이 났다. 최고 히트작이다. 10만부 이상 나갔다.”

Q : 대개 사회 밑바닥에서 올라와 성공하는 남성을 그렸다. 본인의 결핍이 반영된 건가.

A : “내 인생이 그랬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엄마가 도망갔다. 배고파 못 살겠다고. 그해 아버지가 파출소에 잡혀갔다. 돌봐줄 사람도, 먹을 것도 없었다. 동생들과 전략을 짰다. ‘2주는 버텨야 한다.’ 동선을 짜고 수퍼에서 라면을 들고 도망쳤다. 잡힐 걸 안다. 골목의 코너를 돌면서 3개를 건너편에 던진다. 그럼 담 옆에 대기하던 동생들이 그걸 받아 집에 가고 나는 나머지만 갖고 잡힌다. ‘아저씨 잘못했어요’라고 빌고 맞다가 집에 와 끓여 놓은 라면을 먹었다. 내 만화엔 엄마가 안 나온다. 아버지만 나온다.”

Q : 작품 속 주인공들은 아버지를 원망하지 않는다.

A : “아버지는 자식 셋을 혼자 키웠다. 2평짜리 골방에서 4명이 살았는데 아침마다 밥을 해 먹였다. 소풍날이면 어디서 (돈을) 빌렸는지 과자 담은 비닐봉지를 줘서 보내고, 저녁엔 칼국수를 해줬다. ‘절대 기죽지 마라’고 교육했다. 인생에서 아버지에게 배운 게 정말 많다. 어떻게 아버지를 욕하겠나. 아버지 같은 사람을 나는 인생에서 본 적이 없다.”

Q : 80~90년대 스타일 극화체를 고수하는데.

A : “단언컨대 만화를 이끄는 건 극화체다. 극화체는 사람의 체형이나 배경, 스토리를 사실적으로 만든다. 나는 작품에서 인간의 절망, 좌절 그리고 거기서 피어오르는 희망, 도전, 성공, 또 파멸의 이야기를 그린다. 대중은 그런 스토리에 열광한다.”

Q : 그런데도 다른 극화체 작품이 안 나오는 이유는.

A : “다른 작화보다 시간이 두 세배 걸린다. 예전엔 문하생들이 있었지만 요즘 신인 작가들은 1주일에 한 편씩 혼자 마감한다. 문하생 시절 선배들이 만든 것을 보며 똑같이 해보고, 데생도 따라 하고…. 좋은 원고를 보는 것만으로도 실력이 3분의 1은 는다.”

Q : 인생에서 가장 큰 위기는 언제였나.

A : “2018년 ‘트레이싱’ 사건이다. (2018년 네이버 웹툰에 연재한 ‘고교생활기록부’가 일본 만화 ‘슬램덩크’ 작화를 따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김 작가는 인정했다) 쌓아놓은 게 다 무너졌다. 문하생이 그랬다고 고백했는데 어쩌겠나. 지금도 같이 일한다. ‘다시는 그러지 말자’고 하고. 그 이후 매일 연재를 결심했다.”

Q : 연재를 쉬는 게 낫지 않았을까.

A : “독자들에게 나, 양아치 아니다. 진짜 만화가다. 이렇게 열심히 하는 걸 보여주려 했다. 당시 네이버에 ‘고교생활기록부’를, 카카오페이지에 ‘고교권왕’을 연재했는데 한 달에 마감을 40번 했다.”

Q : 인생의 최종 목표는.

A : “천하 제패다. 극화체로 일본의 ‘드래곤볼’이나 ‘슬램덩크’처럼 글로벌 시장에서 우뚝 서는 작품을 내고 싶다. 몰빵을 해서라도….”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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