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룹 트와이스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JYP엔터테인먼트 제공·AFP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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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그룹 트와이스의 곡 ‘필 스페셜(feel special)’은 어쩌다가 미국의 ‘안티 트럼프 송가’가 됐을까. 시작은 지난 6일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초접전지 중 하나였던 조지아주에서 조 바이든 후보가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뒤 한 미국 누리꾼이 제작한 ‘축하 영상’이었다. 트위터에서 3일 만에 270만여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된 이 영상에 흐른 배경 음악이 바로 ‘필 스페셜’이다.
이후 이 곡은 바이든의 승리를 축하하고 트럼프에 대한 반대를 상징하는 ‘송가(anthem)’로 거듭났다. 바이든 지지자가 차 안에서 ‘필 스페셜’을 열창하며 트럼프 지지자와 격한 설전을 벌이는 영상, 팝 가수 레이디 가가가 ‘필 스페셜’에 맞춰 춤을 추는 것처럼 합성된 영상 등이 연달아 인기를 얻었고 ‘필 스페셜’ 유튜브 뮤직비디오에도 “트럼프가 이 곡을 싫어합니다” “이 곡은 이제 미국의 새로운 국가가 됐다” 등의 미국 대선과 관련된 댓글이 연달아 올라왔다.
미국 대선과 트와이스, ‘우연한 만남’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K팝은 ‘정치’의 이름으로 자주 소환돼 왔다. 미국 K팝 팬덤은 온라인상에서 극우 음모집단 큐어넌에 맞서 싸우는가 하면, 트럼프 유세장에 ‘노쇼’하는 단체 행동을 벌이는 등 적극적 정치 참여로 수차례 화제가 됐다. 미국에서만의 일은 아니다. 지난달 태국 반정부 시위에서는 그룹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가 울려퍼졌다. 1020 세대가 주축이 된 시위대는 소녀시대뿐 아니라 트와이스, NCT127 등 인기 K팝 가수들의 대표곡 메들리를 부르며 어깨를 겯었다. 시위대를 이루는 청년 다수가 K팝 팬이기에 가능한 현상이다.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초접전지 중 하나였던 조지아주에서 조 바이든 후보가 짜릿한 역전승을 거둔 뒤 한 미국 누리꾼이 제작한 ‘축하 영상’. 트위터에서 3일 만에 270만여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화제가 된 이 영상에 흐른 배경 음악이 바로 ‘필 스페셜’이다. 트위터 캡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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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K팝 팬덤이 약속이라도 한 듯 정치적 행동에 나서는 이유가 뭘까. 다양한 분석이 있다. K팝 팬은 자유주의적 경향이 있고,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돼 있으며, 집단 행동에 익숙하다 등등. 이 모든 분석들은 다시 하나의 질문으로 모인다. K팝의 ‘무엇’이 팬들을 정치적 행동으로 이끄는가?
사실 K팝에는 정치와 관련된 것이 ‘아무 것’도 없다. K팝은 그 태생부터 의도적으로 정치적 이슈와 거리두기를 하는 표백 상태를 유지해왔다. K팝을 ‘정치적 행동’의 아이콘으로 만든 건, 세계 대중문화계 변방에서 주류로 올라선 그 과정 자체에 있다. K팝은 산업의 의도와는 아무런 상관 없이 세계의 팬덤을 ‘각성’시키는 비주류·다양성·소수자들의 아이콘이 됐다.
지난 6월 그룹 방탄소년단은 이같의 위상에 부응하듯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미국 인권 단체에 100만달러(한화 약 12억원)를 기부했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의 정치적 올바름은 업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까지는 나아가지 못했다. 소속사 빅히트엔터테인먼트는 ‘포스트 방탄소년단’을 뽑는 오디션 프로그램 엠넷 <아이랜드>를 통해 잔혹한 연습생 인권 침해의 현장을 태연하게 전시했다. 비판이 들끓었지만 소속사의 후속 조치는 없었다.
지난 여름 방송된 빅히트엔터테인먼트와 엠넷 합작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 <I-LAND(아이랜드)>에는 노골적인 승자독식과 약육강식의 논리가 미성년자인 연습생들을 지배한다. 엠넷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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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팝 산업 내부에는 노동·성 착취, 인권 침해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재하지만, 그 해결은 그저 불가능한 것으로 치부된다.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올바름’이 아니라 가십’ 취급 받고 그저 흩어진다. 최근 MBN 예능 <미쓰백>에서 노출 강요, 무임금 노동 등 업계의 병폐를 알린 걸그룹 출신들의 고발은 “명예 훼손으로 고소하겠다”는 소속사의 으름장에 부딪혀 유야무야 잊혔다.
전 세계로 넓어진 무대, 확장된 팬덤은 앞으로도 끊임 없이 K팝을 ‘약자를 위한 정치’로 소환할 것이다. 약자를 짓누르고 착취하는 산업 내부의 문제가 더 이상 묵과될 수 없는 때가 다가오고 있다는 이야기다. 자, 이제 K팝은 무엇을 할 것인가. ‘필 스페셜’의 재조명에 흥겨워할 시간이 없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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