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삐 걸을 사람은 걸어라. 말리지 않는다. 걷기 싫으면 놀아라. 안 내쫓는다. 그러나 남의 발목은 잡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 왜 앞으로 가려는 사람을 옆으로 돌려놓는가?”
“눈앞에 닥친 문제만 개선하는 점진적인 방법으로는 앞으로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우리가 경쟁해야 할 초일류기업들은 결코 잠자는 법이 없는 토끼이기 때문이다.”
“리더는 알아야 하고, 행동해야 하며, 시킬 줄 알아야 하고 가르칠 수 있어야 하며, 사람과 일을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숱한 어록들은 시간이 흘러도 변하거나 지워지지 않는 ‘거역할 수 없는 명제’처럼 다가온다. 그건 그 말들이 가진 실제적 기능의 효과 때문이고 말 속에 순도 높은 알맹이의 위력이 살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내뱉은 ‘말, 말, 말’은 씨가 되고 열매가 됐다. 회장에 취임하고 10조 원이던 회사를 400조원으로 끌어올린 비결의 힘이 ‘그의 말’에서 나왔다는 것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가 몇이나 될까.
그의 말은 그래서 ‘현재’로 수렴되지 않고 늘 ‘미래’로 나아갔다. 그것도 1, 2년 후가 아니라 10년, 20년 후의 미래였다.
1987년 삼성 회장 취임할 무렵, 진공관 텔레비전 시절에 반도체를 이야기했고 휴대전화가 상용되기 전부터 휴대전화는 1인당 1대 소유 시대가 올 것이라고 천명했고 아날로그 시대에는 결코 100년 기술의 일본을 따라잡을 수 없지만 디지털로는 앞서간다고 말해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들었다. 더 의아한 건 모두 그의 말대로 이뤄졌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평생 삼성에 몸담으면서 경영자가 갖춰야 할 5가지 덕목을 제시했다. 알고(知), 행하고(行), 사람을 쓰고(用), 가르치고(訓), 평가(評)하는 것이다.
이 5가지 덕목에 쓰인 그의 말은 삼성의 모든 경영전략과 개혁과 도전, 발전계획을 완성한 근본이자 통찰이었다.
이 회장의 말 중 사람들이 가장 많이 기억하는 문장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꾸라’는 말이다. 삼성 임직원을 향해 던진 이 말은 어느 날 갑자기 던진 ‘명령’으로 기억되지만, 사실이 아니다.
그는 회장 취임 이후 어느 한마디도 충동적으로 말한 적이 없다. ‘갑자기’ 던지기는커녕, 생각하고 또 생각한 끝에 ‘작정’한 다음 말을 하는 스타일이었다. 놀라운 점은 준비된 원고 없이 심사숙고한 내용에 의지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삼성의 기업경영은 1993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 1993년은 삼성전자에서 재직 중이던 40대 일본인 디자이너가 작성한 ‘후쿠다 보고서’가 이 회장을 자극해 신경영을 촉발한 계기가 됐다. 다 알려졌다시피, 보고서를 읽어본 이 회장은 이류에 안주하는 임원들에게 불같이 화를 냈다.
후쿠다 보고서는 삼성의 문제를 ‘디자이너 게이샤론’이라고 표현했다. 게이샤는 기생이라는 말로 삼성의 경영진은 디자이너에게 작은 요구까지 모두 맞춰주길 원한다는 것이다. 이런 경영진에 응하는 삼성 디자이너를 ‘매춘부적’이라고 혹평했다. 후쿠다 보고서는 “상품 전략서도 기획서도 없고 디자인 결정 방법이 과학적이지 않다”고도 했다.
신경영 선언은 이 보고서로부터 시작돼 ‘마누라 자식론’으로 완성됐다. 당시 대규모 생산량을 유지할 수 있는 영업에만 열중하는 기업 운영 방식에 질적 변화를 주문한 것이다.
1995년 ‘불량제품 화형식’도 품질 향상에 대한 삼성의 강한 의지를 증명한 사례였다. 이 장면을 기억하는 일본의 카타야마 히로시 와세다대 교수는 2013년 ‘삼성 신경영 20주년 기념 국제학술대회’에서 “삼성의 품질경영은 스피드, 타이밍은 물론 완벽을 추구하고 인재를 중시해 시너지를 지향한다”며 “프로액티브(사전대책강구)·리액티브(후속조치)의 융합형 방식이 삼성의 질 경영 성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했다.
그 모든 줄기와 꽃의 번영을 가능하게 한 뿌리는 역시 그의 말이다. 이 회장 취임 25주년 기념식에서 강조한 ‘그의 말’은 여전히 유효하며 거역할 수 없는 비전으로 남아있다. “위대한 내일을 향해 새로운 도전을 시작해야 한다”
◇이건희의 말=민윤기 엮음. 스타북스 펴냄. 272쪽/1만4000원.
김고금평 기자 danny@mt.co.kr
<저작권자 ⓒ '돈이 보이는 리얼타임 뉴스' 머니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