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동안 이어진 재판, 내년 1월 선고 예정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가 11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일본 정부 상대 손해배상 청구 소송 마지막 변론기일에 증인으로 출석한 뒤 법정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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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시간이 기다려 줍니까, 해가 기다려 줍니까. 나이 90 넘도록 이렇게 판사님 앞에서 호소해야 합니까. 책임지세요.”
11일 소송의 당사자로 재판에 참여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92) 할머니는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15부(민성철 부장판사)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결국 눈물을 흘리며 힘겹게 소리치는 이 할머니를 변호인이 달래어 부축해 나갔다.
이 할머니는 자신이 어린 나이에 대만의 위안소에서 겪은 고통을 상세하게 진술했다. 처음 위안소에 간 날, 군인은 그에게 칼을 휘둘렀다. 군인 방에 들어가라는 명령을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잘못했다고 빌었다는 이 할머니는 당시 “엄마”를 크게 외쳤던 소리가 힘들 때면 아직도 들려와 자신을 괴롭힌다고 했다.
위안소에 먼저 와있던 언니들이 밥을 입으로 씹어 먹이고, 약도 녹여서 먹여주어 다시 눈을 떴다는 게 이 할머니의 진술이다. 그는 ‘가장 힘든 일이 무엇이었냐’는 질문에 “군인 방에 들어가는 것”이라며 “방에 들어가면 어찌합니까. 그보다 더 힘든 게 뭐 있겠습니까”라고 답했다.
“저는 위안부가 아닙니다. 이용수입니다.” 이 할머니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4년 전 이 소송을 시작했죠? 그런데도 판사님이 지금까지 하신 게 뭐가 있습니까”라며 역정을 냈다. 또 “저는 믿었습니다. 그랬는데 4년 동안 한 게 뭐가 있습니까. 왜 못 해줍니까. 해결해 줘야 할 거 아닙니까”라고 소리쳤다.
이 할머니의 마지막 말은 “나는 위안부가 아니다”였다. 16살에 조선의 아이로 위안소에 끌려갔다가 지금은 대한민국의 노인으로 이 자리에 있다고 호소한 이 할머니는 “나는 위안부가 아닙니다”라고 재차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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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동안 이어진 재판, 세상 떠난 피해자 6명
2016년 이 할머니를 비롯한 20명의 ‘위안부’ 피해자와 유족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1인당 2억원을 배상하라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소장 송달을 거부하면서 3년 동안 재판이 공전했다. 지난해 법원은 소송 상대방이 서류를 받았다는 사실 확인이 어려운 경우 법원 게시판이나 관보 등에 내용을 실어 당사자에게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절차를 통해 다시 재판을 시작했다. 일본 정부는 이후에도 출석 요구에 일절 응하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6명이 세상을 떠났고, 네분은 공동상속인이 재판을 이어나가기로 했지만 두 분의 할머니는 상속인이 있는지 확인 불가능한 상황이다.
일본은 ‘국가면제’ 원칙을 주장하고 있다. 주권국가는 스스로 원치 않는 한 다른 나라의 법원에서 재판받지 않을 특권을 누리므로 재판이 각하돼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원고 측 대리인은 최후진술에서 “국가면제는 만고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사건의 성격에 따라 다르게 적용해야 한다”며 “위안부 제도의 성격, 인권침해 내용과 정도, 위법의 정도를 심리해 국가면제 법리 적용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대리인은 20세기 최악의 인권침해 사건으로 나치 전범과 ‘위안부’ 사건을 꼽았다. 그는 “나치 전범은 법원의 판단으로 인권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지만 위안부 사건은 아직도 책임을 묻지 못하고 있다”며 “이 재판이 국제질서 속에서 외면됐던 한 인간으로서의 인권을 보장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판결 선고는 오는 2021년 1월 13일 오후 2시에 열릴 예정이다.
이가영 기자 lee.gayou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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