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부터 2010년까지 10년마다 경향신문의 같은 날 보도를 살펴보는 코너입니다. 매일 업데이트합니다.
■‘정치인을 막아라’ 전두환 정권의 풍토쇄신법
대통령 직속 기구가 정치인을 심판해 정치활동을 금지한다? 지금 시점에서는 받아들여지기 힘들지만 한때 이런 내용이 규정된 법이 존재했습니다. 바로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입니다.
40년 전 오늘(1980년 11월3일) 경향신문에는 <구정치인 규제 명단 10일께 공고 88년 6월까지 정치활동 금지>라는 제목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전두환 정권 출범 후 임시 입법기구인 국가보위입법회의가 재석의원 75명 중 66명의 찬성과 8명의 반대, 1명의 기권으로 특별조치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법 1조는 “정치적 또는 사회적 부패나 혼란에 현저한 책임이 있는 자에 대한 정치활동을 규제함으로써 정치풍토를 쇄신하고 도의정치를 구현해 민주정치의 발전에 기여한다”면서 법의 목적을 설명합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민주화운동 등 전두환 정권에 반대하는 정치인을 정치권에서 배제하고 정권을 유지하기 위한 근거로 이 법이 활용됐습니다.
1985년 3월6일 정치풍토 쇄신을 위한 특별조치법에 의한 정치활동 금지가 해제돼 포옹하며 기뻐하는 김영삼씨와 김대중씨(오른쪽부터). 경향신문 자료사진. |
특별조치법의 구체적인 내용은 대통령 직속으로 정치쇄신위원회를 설치하고, 위원회가 부적절하다고 판정한 정치인은 정치활동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위원회의 위원장과 위원을 대통령이 임명하고, 위원회 판정도 대통령의 확인으로 확정됐습니다. 대통령이 위원회 판정이 잘못됐다고 생각하면 재심판을 명할 수 있기 때문에 특정 정치인의 정치활동을 금지할지 여부는 사실상 대통령 뜻에 달린 셈이었습니다.
위원회의 심사 대상은 국회의원, 각 정당의 간부들을 포함해 ‘정치·사회적 부패나 혼란에 책임이 있다고 인정되는 자’로 매우 광범위했습니다. 정치활동을 하고 싶은 사람은 사유서와 참고자료를 첨부해 위원회에 심판을 청구하고, 위원회가 적격·부적격을 판단하는 방식었습니다.
위원회에서 부적격 판정을 받은 사람은 1988년까지 대통령·국회의원·지방자치단체장·지방의회 의원 등 공직선거 출마는 물론 정당 또는 정치적 사회단체에 가입하거나 정치적 집회에서의 발언, 특정 정당이나 사회단체 또는 타인의 정치활동을 지지·반대하는 행위가 모두 금지됐습니다. 피선거권, 정치활동의 자유 등 헌법상 보장되는 정치적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입니다. 일단 판정이 내려지면 불복할 수 없고, 위원회 결정을 어긴 채 정치활동을 하면 형사처벌까지 받을 수 있었습니다.
1980년 10월27일 5공화국 헌법 공포식 모습. 경향신문 자료사진. |
특별조치법에 의해 500여명의 정치활동이 금지됐습니다. 김영삼·김대중·김종필씨 등 ‘3김’을 비롯한 다수의 정치인이 정계에서 강제로 추방됐습니다. 전두환 정권은 몇 차례 ‘해금조치’를 통해 상당수 사람들을 규제에서 풀어줬지만 ‘3김’에 대해서만큼은 1985년까지 규제를 유지했습니다. 이들을 중심으로 조직된 단체들이 활동을 하자 당시 검찰은 정치활동 금지 대상이 아니더라도 금지 대상인 이들과 함께 활동하면 특별조치법 위반 혐의의 공범으로 적극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기도 했습니다.
이 법은 시간이 흐른 뒤 ‘악법’으로 평가받게 됩니다. 나중에 한 입법회의 의원은 신군부의 압박 속에서 법 제정에 찬성할 수밖에 없었다고 언론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습니다. 1987년 민주항쟁과 직선제 개헌을 거쳐 13대 국회의원 선거 결과 여소야대가 된 이후인 1988년에야 특별조치법은 폐지됐습니다.
이혜리 기자 lhr@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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